물론 장씨는 의도적으로 신용유의자(옛 신용불량자)가 될 마음은 없지만, 정부와 금융당국이 구상하는 금융정책을 따져보니 '성실하게 빚을 상환하는 게 어리석은 짓인가'라는 생각도 든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가운데 지나치게 채무불이행자를 위한 선심성 정책만 내놓는 것 아니냐는 불만과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자칫 채무불이행 내지 빚을 권하는 사회로 왜곡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16일 금융당국과 금융권 등에 따르면 지난 15일 금융위원회는 국민행복기금 재원 조성 방법과 세부 이행계획에 따른 지원 규모 및 대상 등을 골자로 인수위에 업무보고를 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 인수위와 금융당국이 구상하는 금융정책 등은 오직 채무불이행자의 채무 감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문제는 채무불이행자 내지 신용유의자, 저소득자 등이 아닌 빚을 성실상환할 의지가 있는 다중채무자에 대한 정책적인 배려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장씨 역시 "가끔 월급으로 충당이 안 될 경우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받아서라도 연체를 하지 않고 있다"며 "성실상환자를 위한 정책적인 지원이 더 확대된다면 애당초 채무불이행자 발생을 줄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반면 대출금 상환은 당연한 의무이므로 성실상환자에 대한 혜택이나 지원을 논의하는 것이 모순이라는 견해도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빚을 갚는 게 당연한데 연체 없이 상환한다고 정책적으로 배려를 해주는 것도 애매한 일"이라고 말했다.
물론 성실상환자를 위한 혜택이 전혀 없진 않다. 대표적인 게 금리인하요구권으로 연소득, 직위, 거래실적 변동, 자산 증가, 부채 감소, 신용등급 상승 등의 변화가 있을 때 대출금리 인하가 가능하다.
은행별로 금리인하 혜택을 주기도 한다. 국민은행은 새희망홀씨 대출자 중 성실상환자를 대상으로 3개월마다 0.2%포인트 금리를 인하한다. 우리은행도 새희망홀씨 및 우리희망드림 소액대출 고객 중 성실상환자에 대해선 일정 기간마다 금리를 인하해준다.
하나은행은 '장기분할상환 프로그램'을 통해 성실상환자 우대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며, 외환은행 역시 성실상환자에게 매분기 0.15%포인트, 최대 2.4%포인트까지 금리를 감면하는 상품을 출시했다.
다만 정부의 정책적인 배려와 지원이 더 확대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상빈 한양대 파이낸스경영학과 교수는 "가계부채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정부는 이번이 마지막이란 식으로 대책을 내놓는데 결국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며 "다중채무자이지만 성실상환자들에 대한 정책적 배려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새 정부와 금융당국이 마련하고 있는 대책도 응급조치를 위해선 불가피한 게 사실"이라며 "정책 이행에 앞서 도덕적 해이가 확산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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