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빈 前 현대아산 전무(現 창이컨설팅 대표) |
금강산 관광이 멈춰선 지 4년 반을 넘어섰다. 지난 시절 금강산에서 동고동락했던 '금강산 사람들'이 다섯 번째 추운 겨울을 나고 있다. 금강산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이들의 깊어진 한숨에 마음이 불편하다.
몇 해 전만 해도 금강산은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품게 했던 곳이다. 통일을 일군다는 사명감으로 어떤 불편도 감수하며 모두의 염원을 담아 열심히 일했지만, 지금 금강산에는 그들의 자리가 없다.
1998년 11월 18일 금강산행 첫 배가 동해항을 출발했다. 분단 반 세기의 벽을 허물고 882명의 관광객이 금강산에 첫발을 내디뎠던 가슴 벅찬 감동의 순간, 이미 그곳에는 '금강산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한 발 앞서 금강산 땅을 밟았다. 4만5000평 고성 앞바다를 메워 부두를 만들고 방파제를 쌓았다. 도로를 닦고 발전소를 세웠으며, 등짐을 지고 산에 올라 노정도 정비했다. 이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금강산 문이 열렸고, 이때부터 남북 화해와 협력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했다.
금강산 길을 통해 다양한 남북교류가 줄을 이었다. 10년간 195만명의 관광객이 금강산을 찾았고, 학자·학생·종교인·예술인·노동자·농민 등 각계의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남북 화합의 장을 펼쳤다.
금강산의 경험은 고스란히 남북경협으로 확장됐다. 2003년 불을 밝힌 개성공단은 현재 123개 기업이 5만여 북측 근로자와 함께 연간 5억 달러를 생산하며 성공적인 상생협력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
금강산은 남북 이산가족들의 50년 통한을 치유한 곳이기도 했다. 이산가족들이 15차례나 금강산에서 만나 감격의 눈물을 훔쳤고,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를 건립해 다음 세상으로 상봉을 미뤄야 했던 이산가족들에게 작은 희망의 불씨를 안겨주었다.
이 모든 것이 '금강산 사람들'의 손끝에서 시작됐다. 이들이 있었기에 낯설기만 했던 북녘 사람들과 어우러질 수 있었고, 이들의 노력으로 꽁꽁 닫았던 마음을 열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이들에 의해 우리는 '신뢰'라는 소중한 자산을 얻었다.
신뢰의 힘은 위대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첨예한 정치·군사적 소용돌이 속에서도 금강산 길은 항상 열려 있었고, 남과 북은 중대한 고비마다 이곳을 통해 해법을 찾았다. 얽히고설킨 남북관계로 신뢰 회복이 절실한 지금도 금강산의 값진 경험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숨 가쁘게 달려온 10년, '금강산 사람들'은 5년째 생사의 기로에 내몰려 있다. 이들뿐이겠는가? 폐허가 된 금강산 길목의 고성군 주민들, 기약 없이 북의 가족을 기다리는 고령의 이산가족들, 모두가 절박한 심정으로 금강산을 바라보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어 보인다. 일단 남북이 머리를 맞대고 대화만 시작한다면 분명히 좋은 해법을 찾으리라 확신한다. 금강산 관광이 남북간 신뢰 회복의 실마리가 되어 올해는 반드시 '금강산 사람들' 모두가 제자리를 찾아 희망을 다시 꿈꿀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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