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이건희 회장이 미래를 삼성을 통해서만 봤다면 삼성 역시 미래를 이건희라는 잣대를 통해서만 봤다. 그 잣대가 너무 커져서 한국 사회 전체의 가릴 정도가 됐다.
삼성전자는 결코 혁신자가 될 수 없는 조직이다. 이건희 체제란 결국 진화자의 길이었다. 속도에 의한 추격자 전략이 재가동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복귀하자마자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방문했다. 세상 어떤 스마트폰보다 강력한 스마트폰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이건희 회장이 부재했던 2008년부터 2010년까진 삼성전자가 애플한테 밀리면서 휴대전화 시장점유율이 추락하던 시기였다. 삼성은 그간 해법을 찾지 못해서 우왕좌왕했다.
결국 역전의 발판이 된 갤럭시S는 2010년 6월에 발표됐다. 사실상 이건희 회장이 복귀하고 처음 내놓은 작품인 셈이었다.
오너 중심의 일사불란한 속도전에 능한 삼성전자의 장기가 나타난 것이다. 거꾸로 그런 속도는 제왕적 오너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뜻도 됐다.
실제로 갤럭시S는 불과 6개월만에 개발됐다. 옴니아와 갤럭시A 같은 앞선 실패작들을 추스릴 시간조차 없었으며, 사실상 아이폰4가 발매되기 전에 완성돼야 한다는 점 때문에 촌각을 다투는 속도전이 돼버렸다. 대신 삼성전자는 갤럭시S 개발에 전사적 역량을 쏟아부을 수 있었다.
이건 이건희식 반도체 혁신 전략이 고스란히 휴대전화에도 적용된 결과였다. 이건희식 반도체 혁신 전략은 결국 대규모 투자와 속도전을 거듭하는 방식이다. 목표는 정해져 있다. 경로를 개척하거나 모색할 이유가 없다. 전형적인 추격자인 셈이다.
삼성전자가 처음에 스마트폰 대응에서 해맸던 건 스스로 목표를 찾아내는 창의적 사고가 아니라 이미 결정된 목표에 매진하는 근면성과 집중력의 반도체적 사고방식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수뇌부는 여전히 1990년대부터 반도체 신화를 이룩했던 인물들로 채워져 있었다. 속도전의 명수들이었다. 옴니아와 갤럭시A는 그래서 실패했다. 이건희 회장 역시 반도체 신화의 주역이었다.
그러나 차이가 있었다. 등판 시기가 달랐다. 기술혁신기가 끝나고 기술진화기가 열릴 때는 다시금 하드웨어 추격전이 가능했다. 이건희 회장은 그때 수직적 부품 결합을 통한 추격전을 개시했다.
결국 삼성전자는 애플, 노키아, 모토로라, RIM(블랙배리)을 이건희 방식으로 승리했다.
이건희식이란 경영학자 짐 콜린스가 광적인 규율이라고 미화했던 톱다운식 경영 전략이다. 위기엔 분명히 승산이 있는 방식일 수 있었으며 결과도 그렇게 나왔다. 2012년 10월 26일 삼성전자는 3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매출 52조1800억원, 영업이익은 8조1200억원의 사상최대 실적을 냈다.
삼성전자는 불타는 승강장에서 살아남았다.
짐 콜린스는 ‘위대한 기업은 가 어디로 갔을까’에서 실패하는 기업의 5단계를 설명했다. 성공에서 자만심이 생겨나는 단계, 원칙없이 더 많은 욕심을 내는 단계, 위험과 위기 가능성을 부정하는 단계, 구원을 찾아 헤매는 단계, 유명무실해지거나 생명이 끝나는 단계였다.
삼성전자는 이 모든 단계를 다 겪었다. 과거 앤디 루빈의 제안을 무시했고, 스마트폰 시장을 무시한 채 피처폰 시장에 머물려고 했다.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이 직접 “스마트폰은 일부 마니아들한테만 국한된 현상”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구원을 찾아 헤매는 단계도 겪었다. 옴니아와 갤럭시A 같은 실패작들을 양산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극적으로 불타는 승강장을 벗어났다. 그 비결은 구도였다.
삼성전자는 애플의 혁신과 구글의 진화라는 흐름에서 하드웨어 제조사로서의 구도를 선점했다. 부품 산업을 수직 계열화한 삼성전자의 장점을 활용한 측면도 컸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슘페터가 말한 것 처럼 “끊임없이 몰아치는 창조적 파괴의 돌풍” 앞에서 혁신가가 되기보단 진화자가 되고자 하는 포지셔닝에서 추격전이 가능했다.
삼성전자가 지금과 같은 비대한 조직형태를 유지하는 이유다. 그건 사실 한국 경제의 구조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한국경제는 아직도 추격자란 구조적 결합과 분리보다 쫒기는 자의 자세에서 발빠르고 글로벌적 안목과 행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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