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표창받은 철도영웅 故 이영복 철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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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06-2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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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당시 결사대 조직…軍 수송작전에 공헌

아주경제 윤소 기자= 6·25를 며칠 앞두고 잊어서는 안될 (지금은 작고했지만) 조치원출신 유명한 인물을 그려보기로 한다. 우리 국민이 잊어서는 안될 것은 당연 6,25전쟁이고, 당시 철도보안원이었던 故
이영복씨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생명을 아끼지 않고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마음으로 묵묵히 조국을 위해 자랑스러운분의 화제인물이 바로 이영복씨이다.

故 이영복씨의 아들인 ‘연기새마을금고 이성원 이사장’은 “해마다 6월이 오면 1980년에 68세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떠 오른다” 며 “한 가정의 가장이지만 가족보다는 나라를 생각해 야속하기도 했던 부친이 지금와 생각해보니, 자랑스러운 아버지였음을 회상(回想)해본다”면서 눈시울이 금방 붉어졌다.

조치원 출신인 이용복씨는 1950년 6·25 전쟁 당시, 조치원 선로 보안원이었던 그는 국군의 군사수송을 도와 대전역에서 출발하는 마지막 열차로 50여 선로원을 이끌고 당시 최전선 방위 라인 대구역까지 남하했다.

그는 부산피난의 주장을 고집하는 동료들을 설득해 결사대인 ‘조근반(助勤班)’을 편성해 대구역과 신설되는 동촌비행장까지 선로가설과 선로보수에 나서 군사수송작전에 기여한 큰 공헌이 있었다. 또한 1950년 9·28 아군의 북진 수복때에는 최선발 열차로 복귀해 북한군이 고의로 파괴한 조치원역 구내 보안장치를 복구하는데 전력을 다해 ‘제2연동장치’(포인트) 기능 회복을 통해 군용 부문 수송에 혁혁한 공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자랑스러운 대통령 표차을 받기도 했다.

이런 역할속에 그는 불행히도 가족과 이별을 할 수 밖에 없었고, 당시 조치원중학교 1학년이었던 이성원 이사장은 “전쟁속에 홀연히 떠난 아버지가 정말 원망스러웠다. 할아버지, 할머니, 만삭이 된 어머니와 동생들만 남겨진채, 집은 적군의 폭격으로 전소돼 짐 보따리를 메고 산골로 피난살이하며 떠돌아 다녔다”고 이성원 이사장은 목메어 말했다.

지금은 이성원씨가 아버지의 발자취를 스크랩한 신문 기사들을 들추며 조금은 편하게 말할 수 있지만 참전유공자로서 아버지의 명예를 찾기까지는 수십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는 “제가 아버지의 아들로서, 또 한 가족의 가장으로 아버지의 명예와 애국정신이 조금은 인정받기를 원했고 각고의 노력 끝에 지난 2008년 4월 8일, 고인은 세상을 떠났지만, ‘참전유공자증서’를 받은덕분에 일반묘지에서 세종시 전동면 봉대리 內 지정된 ‘국가유공자묘지’로 이장하고 보니 한편 마음이 편해젔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아법지 피를 받은탓인지 정의적인 사람임을 한눈에 읽을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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