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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안산시 상록수보건소 김정란) |
1984년 11월 포천군에서 출장소로 발령받은 본 필자는 수원 직행버스를 타고 시청에서 보이는 4호선 고가 철도 앞 진흙땅에 내렸다.
당시에는 한창 도시가 조성되던 중이라 출장소 앞으로는 차가 다닐 수 없었다. 유난히 매서운 바닷바람 때문에 눈물을 찔끔 흘려가며 발령지로 걸어갔다.
시골 신출내기였던 본인이 현관문을 밀고 들어가 보니 넓은 민원실이 한눈에 들어왔다. 지금 시청 ‘북 카페’ 독서실이다.
그리고 현재 정책기획과 사무실인 3층 사회과로 배치를 받고, 까치발로 창문 밖을 내다보니 저 멀리 바다가 보였다. 전 근무지였던 포천에서는 산정호수가 자연정화 캠페인 장소였는데 출장소에는 사리 포구가 그러했다. 바다는 시퍼렇게 넘실거렸고, 어선은 저돌적이며 꽤 크게 보였다. 포구에는 횟집들이 즐비했는데 캠페인이 끝나고 먹는 새우튀김은 달콤하고 고소하였다.
새마을 대청소는 그 시기의 번화가로 불린 원곡동 ‘라성 호텔’ 주변이었다.
청소가 끝나고 마시는 모닝커피는 달걀노른자만 동동 떠 있었는데, 그 맛은 일품이었다. 당시의 직원들은 거의 퇴직하였고, 몇 분은 국장과 구청장, 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보람도 있었지만 고단함이 더 많았을 그분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본인도 신도시의 위생 점검을 위해 식사를 걸러가며 밤 10에나 퇴근하곤 했다. 그때가 32년 공직근무 기간 중 민원 서류가 가장 많았고, 가장 날씬한 때가 아니었나 회상한다.
본인은 시의 ‘안산시민의 노래’가 대중가수 ‘정○라’ 씨를 통하여 홍보되던 시기에 ‘안산시청여직원 한마음 합창단’의 지휘자였다.
30여 명이 보라색 투피스를 똑같이 맞춰 입고 시청의 노란 은행나무 아래에서 합창할 때에는, 보라와 노랑이 어울려 더 화려했다.
그 덕에 지휘자는 선녀가 된 것처럼 춤을 춘다. 그러나 혼성 합창단이 아니었던 것이 안타깝지만, 아마도 그 시절은 남녀가 유별한 마지막 시대가 아니었나 싶다. 월례 조회 때에도 그 노래를 지휘하였으며, 부서에서는 행사 때마다 본인을 지휘자로 모셔가 내 콧대는 하늘로 향했다.
합창 연습 장소는 늘 시청 뒷마당의 은행나무 아래였다. 그 나무를 볼 때마다 어느 민원인께서 애틋하게 우리 집 나무였다고 한 말이 기억난다. 이유는 신길동 풍전부락에 있었던 것을 신도시 개발로 더는 키울 수 없게 되자, 1981년 11월에 출장소에 기증되어 옮겨왔기 때문이다.
수령은 1880년대부터이니 130살이 넘었다. 이젠 고향은 잊고 이 자리에서 적어도 오백년 동안 장수하기를 위로한다.
또한, 뒷마당에서는 시 승격 축하쇼 생방송이 진행되었고, 4층 강당에서도 공연이 개최됐다.
현재 정보통신과 자리인 그 장소는 예식장처럼 넓었으며, 햇살이 가득했다. 2층 대회의실에서 시행되었던 ‘KBS 전국노래자랑’ 예선전에는 몇몇 직원도 참가해 웃음과 재미를 더하였다.
1994년 당시 경기도 옹진군 대부도가 시에 편입됐고, 1997년에는 IMF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반월,시화산업단지에 있는 공장들도 속속 문을 닫았던 시절, 시청 뒷산은 가장의 도피처가 됐다.
이런 세월을 보내고 시는 본청과 직속 기관, 사업소, 2개 구청, 25개 동으로 행정조직이 확대됐고 진흙땅만 밟고 다닌 길에는 수많은 차와 전철이 대신하고 있으며, 수인선 협궤열차가 지나간 자리에는 새로운 수인선 전철 공사가 한창이다.
본관만 달랑 있었던 출장소에는 민원동, 의회, 보건소 건물이 세워져 있고, 정문에는 물꽃같은 분수와 향나무가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바다가 있었던 곳에는 초고층 아파트와 호수공원이 들어서 있고, 들과 산에는 쇼핑몰, 문화광장, 문화예술의 전당, 종합운동장, 화랑유원지 그리고 단원미술전시관으로 채워져 있으니 뿌듯하다.
신도시 초기에 건물마다 장사가 안돼 한숨을 지었지만, 아파트와 상업단지가 빼곡히 있어 힘든 과거를 잊게 해준다.
새마을 대청소의 단골 장소였던 연립단지촌 원곡동에도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있고 산업단지는 다시 한번 한강의 기적을 꿈꾸고 있다. 공단과 도시를 이어주는 안산역에는 다문화 물결이 일렁거려 감동의 연속이다.
또한, 안산 구경(九景) 관광, 바다향기 테마파크, 시화 조력발전소, MTV 사업, 반달 섬 프로젝트 등은 주요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이렇게 작은 농어촌마을에 도시를 안겨준 사리 바다와 고향을 떠나 신도시의 기틀이 되어준노란 은행나무에 깊은 감사를 보내며, 내 생애 최고의 청춘이 있었고, 지금은 풍요가 밀려오는 천 년 고을「고려 초기, 安山縣(현)」안산에서 가장 멋있는 삶을 이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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