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보훈지청장 정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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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은 일본으로부터 빼앗긴 주권을 되찾은 것이고 광복절은 그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광복 68주년을 계기로 온 국민들과 같이 광복의 의미와 함께 우리의 미래를 공유하고 싶다.
이론적, 체계적 정리를 통하기보다 감정적, 정서적인 방법이 더 좋을 것 같다. 성급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분명 광복(절)은 우리 선조들의 훌륭한 항일투쟁으로 얻어낸 결과이다.
그러나 그 보다 중요한 것은 피눈물 나는 투쟁을 다시는 하지 않도록 하는 것, 즉 다시는 광복이란 것을 겪지 않도록 하는 것 -우리의 주권을 다시는 빼앗겨서는 안 된다- 이다.
이것이 결론이다. 되돌아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잘못된 과거를 정확히 알아야 또다시 아픈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을 것이기에 당시를 잠깐 개관해 본다.
1863년 대원군집정 이후 쇄국정책(다른 나라와 관계를 맺지 않고 문호를 굳게 닫아 서로 통상하지 않는 정책)을 고수하여오던 조선은 1876년(고종 13) 일제(일본)의 강압에 눌려 강화도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개항을 맞이하였고, 제국주의 열강에 의한 군사․경제ㆍ정치적 압력에 직면하게 된다.
개항 초기 조선을 둘러싸고 청나라와 세력 각축전을 벌이던 일제는 1894년 청일전쟁을 도발, 승리함으로써 청나라의 세력을 배제하고 조선에서 보다 우월한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은 일제세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다. 조선이 일본을 배척하고 러시아와 우호 정책을 표방하게 되자, 일제로서는 러시아의 세력을 축출하기 위하여 러일 전쟁도발과 동시에 1904년 2월, 조선에 군대를 파견하였으며 이러한 군사력을 등에 업고 조선정부를 위협하여 ‘한일의정서’를 체결한다.
이로써 한국은 일제에게 군사적 목적을 포함한 모든 편의의 제공을 강요당하였으며 많은 토지와 인력도 징발 당하였다.
나아가 한국민의 항일투쟁을 탄압할 목적에서 ‘치안 담당’을 구실로 1904년 7월부터는 군사경찰제도를 일방적으로 시행하여 감시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된 일본의 침략야욕은 결국 1910년 8월 일본의 강압 아래 대한제국의 통치권을 일본에 넘기는 것을 규정한 한일강제병합으로 이어져 36년간 일제의 식민통치라는 결과를 낳는다.
역사 깊은 곳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은 주변 열강들과의 이해 다툼 속에서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주권을 잃게 된 것이다.
문제는 당시 외세로 불린 주변국들이 청나라는 중국으로, 소련이라는 국명을 거친 러시아 그리고 일본.. 모두 여전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과거역사를 정확히 알아야 하고 다시는 그런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 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 하여야 하는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최근 일본 정권은 과거 제국주의를 부활시키려는 위험한 행동들을 보이고 있다. 무엇이 위험한 짓이고 그 위험한 짓에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우리 정치권은 물론 전 국민이 지혜를 모아서 대처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후세에게 또 다른 아픔을 물려주게 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만 한다. 역사교육의 정상화와 전 국민 대통합이 꼭 필요한 시점이다. 한순간의 방심으로 국가와 국민들의 안위가 흔들리는 그런 우를 또다시 범하지 말아야 한다.
이번 광복절에 꼭 되새겨야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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