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공기업 정상화 대책은 공공기관 스스로 부채와 과다한 복리후생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는 정부의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빚이 많은 LH공사, 한국전력 등 12곳과 과도한 복지혜택 논란을 빚은 한국마사회, 인천공항공사 등 20곳이 이번 정상화 대책의 첫 번째 희생양으로 자리 잡았다.
중점관리 대상에 포함된 공공기관은 내년까지 사업 축소, 자산 매각, 복지 감축 등 개선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기관장 교체가 불가피하다.
지방공기업 부채 감축 차원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이 경영성과가 낮은 지방공기업 사장을 구체적 기준에 따라 실제로 해임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낙하산 등 임원 인사 개선안과 민영화는 이번 대책에서 빠져 정부의 책임 회피에 대한 논란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공공기관 부채 상당부분이 역대 정부의 무리한 국책사업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공공기관의 거센 반발도 예상된다.
◆ 공공기관 사회적 불신에 칼 빼든 정부
정부의 이번 대책은 공공기관 원전 납품비리, 고용세습 등 방만경영 사례가 지속되며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증가하면서 시작됐다.
부채가 과다한 기관에 대해 성과급 지급 등 도덕적 해이를 시정해야 한다는 것이 국민적 공감대인 만큼 청와대와 정부가 직접 나서서 공공기관 기강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국회 역시 이번 국정감사에서 공공기관 방만경영과 관리·감독 소홀을 지적하고 강도 높은 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특히 부채 과다 기관 성과급 지급, 단체협약에 따른 과도한 복리후생 등을 지목하며 체질개선을 요구했다.
지난달 14일 현오석 부총리가 공공기관장 조찬간담회에서 밝힌 강도 높은 개혁 주문도 이 같은 방만경영에 대해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정부의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달 18일 시정연설에서 공공기관 예산낭비, 방만경영 근절과 이를 시정하기 위한 대책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국가부채보다 많은 공공부채
현재 공공기관 부채는 국가 부채(443조원)보다 많은 566조원에 달해 재정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일부 기관이 고용세습 제도를 두는 등 모럴해저드가 위험수위에 달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정부가 집중적으로 부채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나선 기관은 빚이 412조3000억원에 달하는 LH공사, 수자원공사, 철도공사, 도로공사, 한전(한수원 등 발전자회사 포함) 등 12곳이다.
정부는 이들 기관에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상 기관별 부채증가율 당초 전망 대비 30% 축소 △모든 사업 원점 재검토 △부채 가중사업 근본적 개편방안 마련 등이 담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내년 1월 말까지 부채 감축계획을 제출토록 했다.
현 부총리는 "박근혜 정부 임기 중 이를 지속적으로 추진함으로써 대규모 부채와 고질화된 방만경영 고리를 끊겠다"며 "국민의 눈높이에 맞고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공공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낙하산 인사 해결책 전무…공공기관 반발도 거셀 듯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이 역대 정부에서 시도하지 못한 근본적 체질개선이라는 점에는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낙하산 인사와 책임 떠넘기기 공방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 역시 인사문제와 책임공방에서 적잖은 진통이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단기적인 대책 같다. 국민들은 근본적인 개혁을 원한다. 낙하산 인사 문제나 공공기관의 청년고용 문제 등이 언급되지 않아 아쉽다"며 "낙하산을 막고 전문성을 가진 임원을 뽑는 것을 장기과제로 정착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 역시 "공공기관 문제의 키워드는 부채, 방만, 낙하산"이라며 "이번 대책에서는 셋 중 하나가 빠진 게 아쉽다"고 지적했다.
한편 지금까지 공공기관 부채나 방만경영의 대부분이 임직원 잘못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견해도 제기됐다.
최창규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 사업과 정치적 공약, 공공요금 동결에 의해 부채가 누적돼 왔다"며 "정책적으로 공공기관 부채를 이용해 정부의 무분별한 공약을 시행하는 것을 제도적·정치적으로 막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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