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윈 알리바바 회장이 지난 5월 18일 서울 aT센터에서 열린 '알리바바 T-mall 한국관 개통식'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축사를 듣고 박수를 치고 있다. [남궁진웅 timeid@]
아주경제 최서윤 기자 = 6분. 알리바바의 마윈(馬雲·51) 회장이 일본 벤처 투자의 ‘큰손’ 손정의(孫正義·일본명 손마사요시·58) 소프트뱅크 사장의 마음을 얻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1999년 10월 31일 마윈 회장은 모건스탠리 아시아 지사 연구원인 구타(古塔)의 소개로 중국 베이징에서 손 사장을 만났다. 구타 연구원은 “어떤 사람이 만나보고 싶어 하니 그를 좀 만나봐라”는 말만 했다. 딱 두 달 전 골드만삭스로부터 500만달러(약 59억2000만원)의 투자를 받아낸 마윈 회장으로서는 또 다른 투자자와의 만남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구타 연구원의 재촉으로 결국 손 사장과 마주한 마윈 회장은 투자 유치보다는 알리바바의 목표를 소개하는 데 중점을 뒀다. 마윈 회장이 입을 연지 6분 만에 손 사장은 4000만달러(약 473억6000만원)를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마윈 회장은 20일 뒤 일본 도쿄에서 손 사장을 다시 만나 2000만달러(약 236억8000만원)를 투자받기로 했다. 알리바바는 손 사장의 투자 덕분에 2000년 ‘IT버블’ 붕괴로 불어닥친 한파를 이겨낼 수 있었다.
마윈 회장은 알리바바가 중국을 넘어 전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인터넷이 중국을 변화시키고 동시에 중국의 전자상거래가 발전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투자의 귀재' 손 사장은 6분 동안 마윈 회장의 눈빛, 말투, 몸짓에서 확신과 비전을 읽었을 것이다.
중국 정보기술(IT)업계의 공룡이 된 알리바바가 사업 초기부터 낙관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마윈 회장은 1999년 2월 20평짜리 아파트에 18명의 동료와 50만위안(당시 7000만원)의 자본금과 단돈 500위안(당시 7만원)으로 알리바바를 창업했다. 적절한 수익 모델을 찾지 못했고 수입은 없는데 운영비는 계속 들었다. 불가능한 사업을 펼친다며 마윈 회장을 헐뜯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주변인들은 알리바바가 절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는 다른 이들의 생각일 뿐이었다. 마윈 회장은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옳다는 것을 행동으로 밀고 나가면서 욕먹을 각오가 돼 있었다. 마윈 회장은 “당신이 말하는 것이 모두 맞고 다른 사람도 동의한다고 해서 결국 얻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보다는 당장 무엇을 할지 아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또 새겼다.
관얼다이(管二代·공직자 자제)도, 푸얼다이(富二代·재벌 2세)도 아닌 그는 외부 조건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더 믿었다. 이러한 점이 오히려 중국인들이 마윈에 열광하게 만들었다. 올해 베이징대 시장마케팅연구센터가 ‘주링허우(九零後·90년대생)’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존경하는 인물’에 마윈이 1위에 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희망이 있다는 것을 자신의 삶으로 증명해줬기 때문이다.
“일을 잘하고 있는지 저 자신을 자주 의심하지만 신념을 의심해본 적은 없다. 신념과 자기 자신이 같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는 마윈. 손에 아무것도 쥔 것 없이 시작한 그를 이제 미국 경제지 포천은 ‘중국 인터넷의 왕’,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중국을 변혁하기로 한 억만장자’라고 부른다. 큰 성공은 가슴 속 작은 신념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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