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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당시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이라는 직함으로 언론 앞에 섰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우리나라 기업재단의 효시는 지난 1939년 설립한 '경방육영회'와 '양영재단'이다. 이들은 장학재단의 성격이 강했고, 1960년대 이후부터 '사회공헌' 활동이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에스오일과학문화재단, BMW 미래재단 등 해외기업·자본이 중심이 된 재단들도 설립되고 있다.
현재 국내 주요 대기업들 대부분은 장학·문화재단을 운영 중이다. 재단의 원래 목적은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데 있다. 학생에게는 장학금을, 시민들에게는 문화·복지 혜택을 줘 사회의 각 주체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도록 하자는 것이다.
기업재단은 본래 취지에 맞게 운영되고 있을까?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해 11월 내놓은 '2014년 기업재단 사회공헌활동 실태'에 따르면 조사 대상 66개 기업재단의 사업비 지출액은 총 3조3379억원으로, 전년 대비 4.26% 증가했다. 이들의 평균 사업비 지출액은 506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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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효곤 기자 hyogoncap@
의료 부문 지원도 엄연한 사회공헌 활동이다. 그렇지만 기업들이 '메세나'를 외치며 굳이 재단을 만드는 이유는 정부가 '문화융성'을 강조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술계의 한 중진 작가는 "기업재단의 중요 임무 중 하나는 문화·예술의 문턱을 낮춰 더 많은 국민들이 이를 향유하게 하고, 열악한 환경에 처한 예술인들에게 더 좋은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며 병원 사업에만 몰두하는 재단들의 운영 행태를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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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효곤 기자 hyogoncap@
◆ 겉으론 '공익 추구' 속으론 '편법 승계'
기업들이 공익재단 운영 이유로 가장 먼저 내세우는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다. 지난해 경영권 분쟁을 겪었던 롯데그룹은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통감하며 신동빈 회장의 사재 출연으로 롯데문화재단을 설립했다.
그룹 회장의 관심사가 재단 활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클래식 애호가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은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금호영재콘서트'를 통해 피아니스트 조성진,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 등을 발굴했고, 악기 대여 사업을 통해 국내 클래식 유망주들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긍정적인 사회공헌 활동에도 불구하고, 기업재단은 상속과 세제 혜택 등에 악용된다는 점에서 논란의 불씨를 안고 있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통합 삼성물산 출범 이후 강화된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에 삼성SDI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취득한 삼성물산 주식 500만주를 매각했다. 이 중 200만주는 삼성생명공익재단에 팔았고, 130만5000주는 이재용 부회장의 몫이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삼성물산 지분은 4.73%에서 2.09%로 줄어든 데 비해, 이 부회장의 지분은 16.4%에서 17.22%로 늘어난 결과를 가져왔다. 삼성은 당시 "순환출자 해소 과정에서 대규모 주식매각에 따른 시장 부담 최소화와 소액주주 피해 방지 차원에서 이 부회장이 주식을 매입했고, 보유 현금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수익 확보 차원에서 삼성생명공익재단 역시 주식을 매입했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공익법인이 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인 삼성물산의 주식을 취득하는 것은 이 부회장의 지배권 승계를 위한 편법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피하기엔 역부족이었고, 공익법인의 경우 출연재산 매각대금은 3년 이내에 공익목적사업을 위해서만 사용하도록 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8조 제2항 제4호를 위반한 것이라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 기업재단은 '세제 혜택' 위한 계열사 지분 보유용?
문제는 또 있다. 국내 대기업 그룹이 설립한 공익재단이 핵심 계열사 지분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증여세 등 세금을 회피해 사실상 상속증여의 수단으로 작용할 여지가 크다.
지난해 5월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국내 30대 그룹 공익재단의 계열사 주식 보유 현황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총 22개 그룹의 34개 공익재단이 113개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각 그룹의 계열사(비상장사 포함)는 75개로 전체의 66.4%를 차지했다.
삼성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삼성물산은 △삼성복지재단 0.04% △삼성문화재단 0.06% △삼성생명공익재단 1.05% 등 공익재단의 지분이 1.15%이다. 삼성생명도 삼성문화재단이 4.68%, 삼성공익재단이 2.18%를 갖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정몽구재단은 현대글로비스 4.46%, 이노션 10%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LG그룹도 LG연암문화재단 0.33%, LG연암학원 2.13% 등으로 공익재단에까지 지분이 분포돼있다.
지난해 9월 기획재정부 국정감사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의원이 국세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삼성그룹의 경우 삼성생명공익재단, 삼성꿈장학재단, 삼성문화재단, 삼성복지재단 등이 삼성생명, 삼성SDS, 삼성전자 등 계열사 주식을 장부가 기준 4093억원어치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시가로(지난해 7월31일 종가) 5조4402억원에 이른다. 박 의원은 "상속증여세 세율이 최고 50%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부회장이 상속증여세를 한 푼도 내지 않고 5조가 넘는 계열사 지분을 확보한 것이다"고 지적했다.
정몽구 회장도 지난 2006년 현대글로비스 비자금사태 직후 1조원의 사재 출연을 약속한 뒤 현재까지 보유주식 8500억원가량을 출연했지만 이 중 약 5871억원은 정몽구재단이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도 문제로 떠올랐다.
또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 과정에서 차입금이 커지며 결국 2010년 워크아웃 절차를 밟았던 금호산업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박삼구 회장이 금호재단과 죽호학원에서 각각 400억원, 150억원을 출자해 급한 불을 껐다. 박 회장은 지난해 12월 인수대금을 모두 완납해 금호산업의 지배권을 되찾았지만, 여기에 공익재단을 끌어들여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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