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당 이활의 생애-29]대구폭동 발발, 영천까지 번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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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7-07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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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주경제신문-한국무역협회 공동기획 (29)

  • 제2장 재계활동 - (24) 송호정(松湖亭)의 소실(燒失)

목당 이활 한국무역협회 명예회장[일러스트=김효곤 기자 hyogoncap@]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목당가(牧堂家)는 아버지 석와(石窩) 이인석(李璘錫)이 자식들을 분가시킬 때 일정한 재산을 분배해 주고 있어서 4형제는 모두 자기 사재를 쌓아가고 있었다.

둘째인 홍(泓)은 일찍이 춘천에 본거지를 두고 독자적으로 제재소를 경영해 오다가 해방을 맞아 지방 유지들의 천거로 뜻하지 않게 강원도 산업부장이 되어 관계에 몸을 담고 있었고, 넷째인 호(澔)는 지검(地檢) 검사로 혜화동에 거처를 잡고 있었으며, 시골 송호정(松湖亭)엔 셋째 담(潭)의 가족이 아버지 석와 내외를 모시고 있었고, 목당(牧堂) 이활(李活)은 해방 후로 계속 바쁜 몸이 되어 시골집을 거의 찾지 못했다.

10·1 대구폭동(大邱暴動) 사건은 10월 1일 폭동으로 번진 것을 말하지만 실제 대구회의에서의 좌익계의 소란이 벌어진 것은 9월 24일 철도 파업 소동의 연장이었던 것으로, 목당은 무역협회 일에 쫓기면서도 늘상 고향의 노부모 생각에 편안한 날이 없었다.

1946년 9월 24일 서울에서 철도 노조 파업이 일어나더니 대구로 번져 철도 파업과 동시에 40여개 공장 노동자들이 동정 파업에 들어갔다. 그들은 대구역 앞의 공회당과 호텔 등에 집결하여 적기가(赤旗歌, 북한의 혁명가요)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며 기세를 올리고 무장경찰대와 대치하고 있었다. 궁금한 목당에게 전하는 호의 이야기는 사태의 악화를 두려워하는 말투임에도 시골집에야 무슨 일이 있겠느냐고 했다.

그러던 터에 10월 1일 오후 이들은 공회당과 호텔에서 가두로 뛰쳐나와 경찰대가 공포를 쏘며 이들을 해산시키려 하자, 이들은 마침내 역전 광장을 점거하고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경찰이 포위한 채 밤을 새우게 되었는데, 다음날인 2일이 되자 이들은 대규모의 연쇄 폭동을 일으켰다. 이에 경찰이 발포로써 진압하고자 하니 폭도들은 투석과 곤봉으로 대항하여 삽시간에 난동이 대구 전시가로 확산하여 곳곳에서 처절한 유혈참극이 벌어졌다.

오후 3시경, 마침내 미군이 출동하기에 이르렀고 군중은 비로소 해산하기 시작하였는데, 폭도들은 집으로 돌아가던 중 다른 폭도들과 조우하여 경찰지서를 파괴하고 경찰관을 닥치는 대로 살해하고 경찰 가족의 납치, 약탈, 파괴를 자행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폭도들은 대구 시내의 화물 및 여객자동차회사를 점거하고는 버스와 트럭을 강탈하여 인접 지방으로 파괴 공작에 나섰다.

달성군으로 몰려간 무리들은 달성경찰서를 습격, 청사에 불을 질러 서장실에 모여 있던 달성군수 등 10여명이 불에 타죽는 참극을 빚었다. 그리고 이들이 다음으로 덮친 곳이 바로 영천으로, 경찰서와 군청을 불태우고 우체국과 경찰관의 주택 및 재산을 닥치는 대로 파괴했다.

이렇게 하여 영천 집에서 할머니를 모시고 있던 병린(秉麟)은 졸지에 폭도의 습격을 만난 것이다. 병린으로선 우리야 인심 잃은 게 없으니 별일 없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이부자(李富者)집 때려 부숴라!” 라는 외침과 함께 폭도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병린은 급히 장롱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문서와 조부모의 옷가지 등만 챙겨 보따리를 싸고는 할머니를 들쳐업고 담을 뛰어넘었다. 옆집은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으로, 안사람끼리는 서로 드나들던 사이여서 그는 얼른 할머니를 이불에 싸 방안에 숨겼다. 그리고는 매호동(梅湖洞) 집 쪽으로 논밭길을 우회하여 내달렸다.

금호 노조(金湖 勞組)는 전국적으로 가장 강력한 조합으로 이름이 나 있었으며 이들은 북쪽의 지령으로 행동에 나서고 있었던 것이다.

“부자라면 무조건 때려 죽여라!” 하는 살벌한 판국에 영청 이부자라 하여 그들의 표적을 벗어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영천읍의 이부자집을 불지른 폭도들은 다시 트럭을 타고 임고면(臨皐面) 매호동(梅湖洞) 집을 향해 적기가를 부르며 몰려갔다. 멀리 사람들을 태운 트럭이 달려오는 것을 발견한 담의 부인 조(趙)씨(조애영)는 재빨리 시아버지 석와부터 뒷산으로 피신시킨 다음 장롱에서 패물을 꺼내 허리에 숨기고 옷가지들을 싸려는데 벌써 폭도들은 대문으로 밀려들고 있지 않은가.

“이부자 나오너라!” 아버지가 피신할 시간을 벌기 위해 머물러 있던 담이 안채 대청에서 소리쳤다.

“주인 여기 있다.”

그러자 폭도들은 무조건 우루루 달려들어 다짜고짜 몽둥이로 담을 내리쳤다.

“사람 잡네! 이 사람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러는기요!”

하고 부인 조씨가 남편의 몸을 덥쳐 안고 울부짖었다.

“누구 물좀 떠오너라!”

누군가가 가져온 물사발을 남편 이마에 부어넣으며,

“아이고, 물도 안 넘어가네····· 아이고 아이고····· 생사람 죽었네!”

폭도들도 조씨 부인의 통곡에 멈칫 물러섰고 이때 지휘관인 듯한 젊은이가 탄 지프가 나타났다. 둘러선 무리들 중에는 총을 맨 사람, 죽창을 든 사람도 있었다. 사방에서 불을 질러 그 큰 송호정 각 채가 모두 화염에 싸였다. 그들은 마침내 담을 부인 품에서 잡아채려 했다.

“죽은 사람 끌어다 무엇 할래요? 죽은 사람 왜 끌고 가요!”

조씨 부인은 한사코 남편을 끌어안고 놓아 주지 않았다. 이때였다. 번갯불이 번쩍하더니 우뢰소리와 함께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폭도들은 담을 끌어가려는 시도를 포기하지 않았다. 조씨 부인은 남편이 끌려가는 날에는 끝장이란 생각이 들었다.

“신발이라도 신기시오.”

하면서 부인은 더욱 다부지게 남편의 몸을 끌어안았다. 담은 몽둥이로 머리를 맞아 온몸에 선혈이 낭자했고 남편을 끌어안은 조씨 부인도 피투성이였다. 담은 아내 품에 죽은 듯이 안겨 있었다.

소나기는 줄기차게 내리고 담은 유혈이 낭자한 것으로 보아 생명이 위태하다고 생각했던지 폭도들은 돌아서더니 우루루 타고 온 차에 올라 영천읍 쪽으로 사라져 갔다.

환자를 외딴집에 숨겨 두고 조씨 부인은 큰동서인 목당의 부인 이씨와 함께 이틀이나 밭고랑에 숨어 지내다가 파견대 출동으로 사태가 수습되자 불탄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이를 계기로 이 집은 조씨 부인이 나머지 것을 대강 간추려 서울로 올라오고 말았다.

조씨 부인은 시인(詩人) 조지훈(趙芝薰)의 고모로서 배화여고 때 광주학생사건의 주동자로 활약했던 여걸이다. 목당의 와세다대학 재학 때의 친구인 조헌영(趙憲泳)의 누이동생이었던 것이 인연이 되어 담과 맺어진 조씨 부인은 아호를 은촌(隱村)이라 하는데 시조집(時調集) ‘슬픈 동경(憧憬)’과 ‘은촌 내방가사집(隱村 內房歌辭集)’ 등 시작집을 가지고 있을 정도의 이름 있는 여류시인이다.

‘은촌 내방가사집’에 실려 있는 결혼 생활 40년을 돌아보며 읊은 작품으로 그 속에는 마침 10월 폭동을 겪은 부분의 시편(詩篇)이 있어 여기 옮겨 놓아 본다.

경북일대 뒤집었다 폭동이요 민란이라
누구보다 큰피해를 이부자가 당했어라
큰집주인 찾는판에 낭군님이 나타나고
폭도들이 폭행할때 나도같이 당했어라
중구그날 아침부터 영천군수 타살한후
이부자집 습격해서 파괴하고 방화할때
부형대신 붙잡혀서 맞아죽을 변을했네
나아니면 영낙없이 황천으로 갔으리라
악몽같은 그날아침 이런욕을 보았나니
폭도에게 끌려나가 몽둥이로 매를맞고
개죽음을 당하는임 참아볼수 없는지라
이내목숨 내어놓고 가장목숨 구하려는
아녀자의 일편단심 천지신명 도우셨다
피투성이 가장머리 얼사안고 울부짖어
넘어지는 낭군님을 무릅위에 올려놓고
죽었다고 땅을치던 시월일일 십일사건
무서워라 무서워라 경북십일 폭동이라
불행이도 그날화를 이내혼자 당했으니
이씨가문 궂은일은 나혼자만 당할란가
남편목숨 건지려고 내목숨은 내던진날
요행이도 소낙비가 쏟아지고 천둥할때
폭도들이 난동하다 하나둘씩 헤어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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