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와 장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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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10-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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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승 양방웅의 노자와 장자 이야기
나비에서 꿩으로

감우지수(鑑于止水)

노나라에 형벌로 발하나가 잘린 왕태(王駘)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에게 배우는 제자의 수가 공자에게 배우는 제자의 수와 비슷할 정도였습니다.

하루는 공자의 제자 상계(常季)가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상계: “왕태는 외발인데도, 그의 제자가 선생님에게 배우는 제자의 수와 맞먹는다고 합니다. 그는 서서 가르치지도 않고, 앉아서 토론하지도 않는데, 그에게 배우는 사람은 빈 채로 가서 배움을 가득 채우고 돌아온답니다. 혹시 말로 하지 않는 가르침, ‘불언지교(不言之敎)’라는 게 있습니까? 소리나 모습으로 드러내지 않고도 마음만으로 통하는, ‘무형이심성(无形而心成)’으로 가르치고 배울 수가 있습니까? 그런 분은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관리할까요?”

공자: “그는 의지하여 머무를 곳이 없는 곳에 머무르며, 사물과 함께 변화하지 않으며, 사물의 변화 규율을 파악하여 그 핵심을 지킨다네. 천하 만물이 모두 다르다는 관점에서 관찰해보면, 간과 쓸개도 초나라와 월나라처럼 서로 같은 점이 하나도 없어. 그러나 서로 같다는 시점에서 보면, 천하 만물 모두가 같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야. 어떤 문제이든 서로 상통하는 것으로 보는 사람은, 귀나 눈이 분별해내는 것이 무엇이든지 얽매이지 않고, 마음을 덕에서 나오는 해화(諧和)의 경지에서 노닐게 하지. 왕태는 사물을 ‘같다’고 볼 뿐이지, 무엇이 다르냐에 관심을 두지 않아. 그러니까 그에게 발 하나 떨어져나간 것은 마치 흙 한 덩어리 떨어져 나간 것에 지나지 않지.”

상계: “그는 사물을 분별하여 얻은 깨우침에서, 분별을 벗어나는 지혜를 얻고, 그런 마음으로부터 다시 분별을 초월하는 영원한 마음인 道를 터득하기위해 자기 수양에만 전념하는데, 어떻게 사람들이 모여듭니까?”

공자: “누구도 흐르는 물에는 자기를 비춰볼 수 없어. 그러나 맑고 고요한 물, 즉 정지(靜止)된 물에서는 자신을 비춰볼 수 있지(감우지수·鑑于止水). 이처럼 마음이 멈춘 사람만이, 정지하려는 사람에게, 정지하게 할 수 있는 것이야. 땅에서 기운을 받은 것 중에서는 소나무와 잣나무만이 천성이 올바르므로 겨울이나 여름이나 늘 푸르고, 하늘의 기운을 받은 사람 중에서는 순임금만이 천성이 올바르므로 본성을 잘 보전하면서 중생(衆生)을 바르게 이끌었던 것이야.
무릇 처음 부여받은 본성을 그대로 보전할 수 있으면, 일체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가 있지. 그래서 용감한 무사는 혼자서도 천군만마의 적진 속으로 돌진해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야. 명성을 추구하는 보통의 무사도 이러하거늘, 하물며 천지를 다스리고 만물을 포용하며, 자신의 몸을 임시 처소로 삼고, 귀와 눈이 분별하는 현상을 환상으로 여기고, 분별하여 얻은 지식으로부터 벗어나 지혜로운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초월하여 생사를 초월한 영원한 마음의 경지에 있는 사람이야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런 사람은 날을 잡아서 신선이 되고 속세를 떠날 것이니, 사람들이 그를 따르려는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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