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제8차 촛불집회가 열린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 100m 안국역 인근에서 시민들이 행진을 하며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아주경제 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임기단축 개헌이 대선 정국을 덮쳤다. 애초 분권형 개헌(이원집정부제), 순수 의원내각제, 4년 중임제 등 대통령 권력구조 변경에 그쳤던 개헌 논의가 차기 대통령의 임기단축 문제로 확장한 셈이다. 이로써 ‘개헌파 대 호헌판’의 진검승부의 장이 열리게 됐다.
다수의 대선 주자가 자신의 임기단축 개헌안을 적극적으로 제기한 것은 지난 1948년 7월17일 제헌헌법 제정 이래 찾아볼 수 없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표상으로 전락한 ‘87년 체제’ 타파를 위한 일종의 ‘충격요법’인 셈이다.
그러나 갈 길은 멀다. 정치권의 단골 블랙홀 이슈가 임기단축 문제까지 맞물리면서 제7공화국 헌법 개정 논의가 ‘판도라 상자’로 격상했다. 일각에선 개헌 논의가 국민의 기본권을 포함한 포괄형 개헌이 아닌 대통령 권력구조 문제에 한정된 정략적 발상이란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임기단축 개헌 전선, 고차방정식으로 격상
22일 여야에 따르면 차기 대선 주자들은 크게 ‘개헌파’와 ‘호헌파’로 나뉜다. 전자는 ‘조건 없는 개헌파’와 ‘절충형 개헌파’로 양분한다. 후자의 깃발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희정 충남지사 등 범친노(친노무현)계만 홀로 꽂고 있다. 민주당 주류가 개헌 논의를 “반문(반문재인)연대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조건 없는 개헌파’에는 제7공화국 헌법을 정계복귀 명분으로 삼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와 분권형 개헌을 주장하는 김부겸 민주당 의원이 있다. 보수진영에선 탈당이 임박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대표적이다. 친박(친박근혜)계도 분권형 개헌에 불을 지피고 있다.
’절충형 개헌파’에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를 비롯해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비박(비박근혜)계 신당 창당에 나선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남경필 경기도지사 등이 있다.
눈여겨 볼 대목은 문 전 대표를 제외하고 타 후보들이 개헌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애초 박원순·이재명 시장 등은 문 전 대표와 함께 개헌 반대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들은 이미 ‘국민 의사 반영’을 전제로 임기단축 개헌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킹메이커인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대표도 임기단축 개헌에 가세했다.

개헌 정국에 휩싸인 20대 국회[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安 “2018년 국민투표”…임기단축, 정계개편 회오리 왜?
이뿐만이 아니다. 안 전 대표는 이날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국가미래연구원·경제개혁연구소 등이 주최한 ‘보수와 진보 합동 토론회’에 참석, “개헌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고 2018년 지방선거 때 함께 투표하는 것이 실행 가능한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개헌 선 긋기→개헌 논의 가능’에서 한발 더 나아가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같은 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당 차기 당권 도전을 선언한 안철수계 문병호 전 전략홍보본부장은 이날 한 라디오에 출연, “(안 전 대표가) 대통령 임기단축을 선언하고 지지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토론회에는 문 전 대표를 비롯해 손 전 대표, 남 지사 등이 나란히 참석했다. 개헌파인 손 전 대표는 호헌파인 문 전 대표를 겨냥, “개헌을 이긴 호헌은 없다. 호헌은 기존 체제를 수호하려는 것으로 기득권·특권·패권 세력을 지키자는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남 지사도 “개헌은 대선 전에는 불가능하지만 대선 과정에서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 전 대표는 “가짜 보수 시대 끝내고 진보·보수 넘는 협력 지평 열어야 한다”면서도 개헌에 관해선 함구했다.
임기단축 개헌의 파괴력은 ‘다양한 정계개편’ 시나리오에 있다. 내치와 외치를 나누는 이원집정부제의 경우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을 외치에 두고 내치에 손학규·안철수·김종인 전 대표 등의 조합이 가능하다. 이른바 ‘반·손’ ‘반·안’ ‘반·김’ 연대다.
차기 대통령을 임기를 20대 국회의원 임기(2020년 5월 말)와 맞추는 개헌이 현실화된다면, 19대 대통령 임기는 길어야 3년이다. 차차기 주자들이 임기단축 개헌을 전면에 내걸고 20대 대선을 위해 양보하는 그림도 가능하다. ‘반문연대’의 유연한 전략적 연대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임기단축 개헌에 대해 “국민이 동의할지, 차기 대통령이 임기 후 공약을 실현할지 미지수”라며 “이제라도 대선 주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논의하는 국민적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산발적이고 정치공학적 논의에 그칠 경우 용두사미로 끝날 것”이라고 조언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19일 부산 부산진구 서면 젊음의 거리에서 '부산시민과 함께하는 시국토크'를 하면서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외치고 있다.[사진=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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