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와 함께 사라질 아까운 법안들]②"제2의 김용균 막아라"… '노회찬법'은 3년째 계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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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기자
입력 2020-03-0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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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쇳물 쓰지 마라.
광염(狂焰)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도 말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것이며
못을 만들지도 말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모두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적 얼굴 찰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 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새끼 얼굴 한번 만져 보자 하게.


철강 공장에서 일하다 용광로에 빠져 숨진 청년에 대해 한 네티즌이 작성한 가슴 저미는 조시(弔詩)이다.

2010년 9월 7일 환영철강에서 일하던 김모(29)씨가 청소를 하기 위해 용광로를 올라갔다 안타깝게 1600도가 넘는 쇳물에 빠져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김씨는 용광로가 제대로 닫히지 않으면 조업 손실이 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용광로 턱에 있는 고정 철판에 올라가 고철을 끄집어 내리다 안타까운 사고를 당했다.

1600도의 용광로에 빠졌기 때문에 김씨는 시신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한채 가족들의 곁을 떠나게 됐다.

이 사고는 발생 당시에는 언론의 집중을 받지 못했지만, 이를 다룬 기사에 한 누리꾼이 '그 쇳물 쓰지마라'라는 제목의 시를 댓글로 달면서 관심을 모았다.

이후 청년을 죽음으로 몰고간 구조적인 원인에 대한 비판도 쏟아졌다. 시민단체들은 용광로에 안전 펜스와 같은 최소한의 위험 방지 시설만 있었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이같이 재조명을 받는 사건은 소수, 사실상 큰 재해가 발생해도 책임은 고스란히 사고를 당한 근로자에게 전가되고 실제 사업주나 관련 공무원들이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에 중대재해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일명 '노회찬법'이 2017년 4월 14일 발의됐지만 여전히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 '김용균'부터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까지

지난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작업하던 노동자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이른바 '김용균씨 사망사건'이다.

김씨가 숨지기 전에도 이같은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김씨 사고 이전 8년 동안 12번의 산재 사고, 28번의 안전 시정요구가 있었지만 경영진이 이를 묵살한 것.

경찰은 태안화력본부장 등 관계자 11명을 업무상과실치라 혐의로 검찰에 넘겼지만, 태안화력발전소를 운영하는 원청인 한국서부발전 사장과 한국발전기술 사장에게는 혐의가 없다는 결과만 돌아왔다.

2016년 5월 발생한 구의역 김군 사망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당시 서울메트로의 하청업체인 은성피에스디(PSD) 소속 비정규직 수리공 19살 김군이 스크린도어를 수리하기 위해 홀로 출동했다 열차와 스크린 도어 사이에 끼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

당시 서울시 구의역 사고 진상규명위원회가 작성한 사고 조사 보고서를 보면, 구의역 사건은 원청인 서울메트로가 비용 절감을 위해 4~6명의 하청업체 직원에게 48개 역을 담당하게 해 사실상 1인 근무 시스템을 만든 것.

이같은 사고는 김군이 사고를 당하기 전인 2013년 성수역과 2015년 강남역에서도 반복됐지만 서울교통공사는 하청업체의 책임으로 일관했다.

특히 서울교통공사의 이같은 인식은 지하철 내 스크린에서 나온 광고에도 나타났는데, 김군의 사망을 '개인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로 표현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아울러 책임을 져야하는 이정원 전 서울메트로 대표와 은성PSD의 대표는 각각 벌금 1천만원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이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사실상 중대재해 가능성을 알고도 시설에 대한 안전설비를 갖추지 않았지만, 이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부주의함'으로 노동자에게 돌아온 것이다.
 

2016년 5월 28일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숨진 김군의 3주기를 하루 앞둔 27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구의역 스크린도어에 추모의 문구가 붙어있다.[사진=연합뉴스]


◆ 중대기업 처벌법 일명 '노회찬법'은 3년째 계류 중

이같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2017년 4월 노회찬 의원은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을 발의했다. 앞서 태안화력발전소, 서울 메트로, 환영철강 등 피해자들은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시스템 자체를 바꾸자는 취지다.

대형재해는 대체로 기업의 위험관리시스템 부재 등에서 오는 경우가 많지만 현행법으로는 안전관리 주체인 경영자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운 상황이다.

노 의원은 당시 “현대 사회에서 재해사고는 성과를 위해 사람의 안전을 소홀히 하는 기업의 조직문화와 제도가 낳은 결과”라며, “세월호 참사와 같은 중대 재해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기업의 안전관리의무를 명확히 규정하고, 이를 위반한 때에는 경영자와 기업에게 무거운 책임을 지도록 하는 입법이 필수적”이라고 입법 취지를 밝힌 바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공중이용시설 및 공중교통수단을 소유. 운영, 관리하는 경우, 사업장 및 시설을 이용하는 시민·노동자 등 모든 사람에 대한 위험방지의무 ▲사업장에서 취급하거나 생산·판매·유통 중인 원료나 제조물로 인해 시민·노동자 등 모든 사람이 위해를 입지 않도록 할 위험방지의무를 부과 등의 내용이 담겼다.

특히 사업주 및 경영자가 이러한 의무를 어겨 인명사고가 일어나거나, 상해가 일어나면 형사처벌 대상이 되고, 경영자가 명시적·묵시적으로 위험 방지 의무를 소홀히 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확인되면 해당 기업의 전년도 수입액의 10분의 1 범위 내에서 벌금을 가중하는 등의 내용도 담겼다.

하지만 이 법은 발의된 지 3년에 다다르는 동안 소관 상임위 문턱도 넘지 못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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