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덮친 코로나19가 아메리카계 미국인(흑인)에게 더 가혹한 것으로 드러났다. 코로나19 감염률은 물론 팬데믹으로 인한 실업률까지 흑인이 백인보다 높게 나타났다고 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우선 흑인의 코로나19 감염률이 미국 내 다른 인종보다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국립보건통계센터에 따르면 전체 미국 인구 가운데 흑인은 12.5%에 불과하지만, 코로나19에 감염돼 목숨을 잃은 흑인은 전체 사망자의 23%에 달했다. 다인종 국가인 미국에서 코로나19가 유독 흑인에게 가혹한 전염병이 된 것이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흑인이 인구 밀집도가 높은 지역에 많이 거주하고, 고혈압과 당뇨 같은 기저질환을 앓을 확률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의료보험 가입률이나 의료시설 접근율 등이 낮은 점도 백인보다 흑인이 코로나19에 취약한 이유로 꼽았다. 무엇보다 흑인은 실내에서는 할 수 없는 직업에 일할 가능성이 커 바이러스에 더 쉽게 노출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재택근무가 늘어나고 있지만, 흑인은 애초에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직업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코로나19가 창궐했던 지난 3~4월 350만명의 흑인이 일자리를 잃었다. 지난 5월 흑인 고용이 증가하기는 했지만, 백인이나 히스패닉계보다 현저히 적었다. 당시 흑인 실업률은 16.8%로 미국의 경기 호황이 최고점을 찍었던 지난해 8월(5.4%)보다 3배나 급증했다. 같은 기간 백인 실업률은 12.4%를 기록했다. 코로나19가 미국 전역을 덮쳤지만, 충격과 피해 규모는 흑인에게 더 가혹하게 나타난 것이다.
발레리 윌슨 이코노미스트는 "전염병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는 인종 집단 전체에 고르게 영향을 미쳤다"면서도 "흑인을 고용한 고용주들이 수천 개의 일자리를 줄였다"고 지적했다.
미국 경제가 호황을 누렸던 때도 인종차별은 여전했다. 미국 전체 실업률이 두 자릿수를 기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흑인에게는 낯선 일이 아니다. 흑인 실업률은 1974년 9월부터 1994년 11월까지 10%를 넘었는데, 이후 잠잠해졌다가 금융위기가 불어닥친 2008년 7월부터 2015년 2월까지 또다시 10%를 넘어섰다. 2015년 2월은 미국 경기가 회복해 호황기에 접어들었지만, 경기 회복에 대한 수혜가 흑인에게는 다소 늦게 전해지는 것이다.
아울러 주택 보유율에서도 흑인과 백인 간의 차별이 드러났다. 미국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흑인의 44%가 주택을 소유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보다 4%p 감소한 것이다. 반면 같은 기간 백인의 주택 보유율은 74%로 2007년에 비해 1%p 하락하는 데 그쳤다.
금융자본 접근성도 흑인들이 백인보다 취약하다. JP모건에 따르면 지난해 흑인 거주 지역의 소규모 사업장의 95%가 2주도 버틸 수 없는 현금을 보유할 정도로 재무구조가 취약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백인 거주 지역에 있는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30%만이 비슷한 수준의 부실한 현금 구조로 되어 있었다.
또한 흑인 중위계층 순자산은 2016년 연방준비제도(FRB) 통계 기준 1만7600달러였지만, 백인은 중위계층 순자산이 17만1000달러로 10배 가량 많았다.
미국 아메리카대의 브래들리 하디 이코노미스트는 "코로나19는 경제적·의료적으로 흑인에게 더 큰 타격을 입혔다"며 "의료 서비스 접근성 부족과 저임금으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에 흑인에게 장기간 노출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조지 플로이드 사망 관련 시위는 흑인 사회의 광범위한 불안정을 반영한 것"이라며 "흑인들은 사법 집행기관에 대해 안정감을 느끼지 않는다. 집에서도, 건강에서도, 고용에서도 안정감을 느낄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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