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칼럼-하이브리드角] 생활형 검찰…여의도 ‘킹덤’의 금융 좀비 소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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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논설위원
입력 2020-08-12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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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미애 장관 취임후 생활형 검찰로 변혁

  • 서민경제 흉악범죄, 주가 조작 작전세력은 '좀비'

  • 박순철 남부지검장, 증권범죄 합수부 기능 되살려야



서울 여의도 동쪽은 대한민국 증권의 중심, 증권타운이다. 하루에 어마어마한 돈이 오간다. 코로나19가 덮친 와중인 올해 2분기 한국 주식시장의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22조8000억여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부동산에서 증권시장으로 돈이 대이동하는 하반기에는 이 기록을 넘어설 전망이다.

그런데 이 주식시장에 서민들의 피와 살을 뜯어 먹고 식인 바이러스를 전염시키는 좀비들이 창궐하고 있다. 전 세계 K-드라마 한류를 불러오며, 현재 3편이 제작 중인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과 비슷하다.

‘세력’, ‘꾼’으로 불리는 여의도 킹덤의 좀비들은 주식시장 중소형 종목을 테마주로 물어 버린다. 좀비 바이러스에 걸린 그 테마주는 곧바로 개미, 소액투자자들에게 전염된다. 바이러스는 걷잡을 수 없이 퍼져 그 주식은 결국 급추락하거나 상장폐지되는 최후를 맞게 된다. 작전세력은 이미 주식을 팔고 빠져나왔고, 뒤늦게 뛰어들어 일확천금을 노리던 ‘동학개미’들만 처참한 피해를 입게 된다.
 

[킹덤 포스터. 왼쪽 앞부터 배두나, 주지훈, 류승룡. 사진=넷플릭스 캡처]


묻지마 주식투자가 이뤄지는 장세에서 여의도 좀비들은 물 만난 물고기다. 주식시장에서 작전이라고 통칭되는 주가조작(법적용어는 시세조종)은 주식 정보(재료 혹은 루머)와 맥락을 같이한다.

1970년대 일부 석간신문 증권 담당 기자들의 작전은 언론 비사(祕史)의 부끄러움이다. 오전에 특정 회사를 취재해 기사(재료)를 쓰고 그 회사 주식을 산 뒤 오후에 신문이 나오고 주식이 오르면 팔았다고 한다. 이 범죄는 증권부 기자들에게 ‘반면교사’의 교훈으로 내려온다.

2000년대 초반 새롬기술, 골드뱅크 등 실적 없는 회사의 실체 없는 루머 때문에 50~100배가량 뛰었던 주식에 투자하는 이들의 비극적인 말로를 지켜봤다. 하지만 되풀이되는 폭등장세에서 투자자들에게 이 학습효과는 무의미하다.

최근 4차산업혁명 시대, 최첨단 IT 기술과 SNS 등으로, 작전에 이용되는 채널이 매우 다양해졌다. 사설 증권방송, 단체톡방, 증권 사이트 등이 넘쳐난다.

불특정 다수 상대 유료 투자 조언을 하는 ‘유사투자자문업체’로 금융위원회에 신고(6월 말 현재 1847개)한 곳은 그나마 낫다. 요즘에는 유튜브에 ‘급등주 잡기', '족집게 추천’ 등의 동영상을 올리거나 카카오톡, 텔레그램 등 메신저에 ‘주식 리딩방’을 만들어 종목을 찍어주는 불법 행위도 많다. 운영자는 스스로를 리더, 애널리스트로 부르며 특정 종목의 주식을 매매하도록 추천한다.

처음에는 맛보기 무료 정보를 제공하다 월 수십만원을 내면 정식 가입을 시켜준다. 더 고급 정보를 다룬다는 VIP방은 월 수백만원에 달한다. 이들이 무차별적으로 보내는 광고 문자 메시지는 개인투자자들을 혹하게 한다. “극비 정보 입수, 3일 300% 수익 보장”, “딱 5분만 00종목 공개” 등.

이런 사설업체들은 외면하면 그만이지만, SNS를 통해 돌고 도는 이른바 ‘회사 내부정보’는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무차별 광고, 피라미드식 다단계 회원 모집을 통해 피해자 수와 금액 규모는 날로 커진다. 수만 명, 수조원대 금융범죄가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다.

이런 여의도 킹덤의 좀비 소탕 최종 책임자는 검찰이다. 드라마 킹덤의 주인공 세자 이창(주지훈 분) 같은 검찰 조직이 있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은 여의도 작전세력의 저승사자로 불렸다. 금융을 잘 아는 검사들이 금융위원회·국세청·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예금보험공사 등의 전문가들과 함께 협업, 철퇴를 내리쳤기 때문에 ‘작전 좀비’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합수단은 지난 2013년 5월 서울중앙지검에 설치됐다가 이듬해 2월 여의도를 관할하는 서울남부지검으로 자리를 옮겼다. 6년 7개월 동안 합수단은 증권범죄 전문 수사조직으로 맹위를 떨치며 총 965명을 기소하고 346명을 구속시켰다.
 

[12일 과천 청사로 출근하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합수단은 올해 초 문을 닫았다. 추미애 장관이 검찰 직제개편을 하면서 검찰 공식 조직에 없다는 이유로 그랬지만 정치적 의심을 받았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신라젠, 옵티머스 등 권력 핵심부 관련 의혹 수사 때문이다. 

이와 별개로 추 장관은 취임 이후 꾸준히 검찰의 과도한 권력을 축소하고 정치검찰의 발호를 막기 위한 제도 개선을 해왔다. 특히 인사를 통해 특수부, 공안부 등 전통적인 권력지향형 정치검사들의 요람을 와해시켰다. 민생과 서민 상대 법률서비스를 강조하며 '상대적 음지'였던 형사부, 공판부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그야말로 권력지향형 정치검찰을 시민 우선 ‘생활형 검찰’로 개혁하고 있다. 옳은 방향이다.

주가조작은 전형적인 서민 대상 흉악경제범죄로, 검찰의 형사업무다(고위 정관계 커넥션이 있는 경우에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맡을 예정). 증권범죄는 평범한 국민들이 알뜰살뜰 모은 돈을 정상적으로 투자하는 경제활동을 비웃는다. 서민들의 지갑을 터는 여의도 킹덤의 좀비들을 소탕하는 증권범죄 전문 수사는 생활형 검찰의 주요 과제여야 한다.
 

[박순철 서울남부지검장. 사진=연합뉴스]


검사장급 인사로 11일 취임한 박순철 서울남부지검장은 후속 실무 인사를 통해 증권범죄 수사에 집중해야 한다. 남부지검이 금융범죄 중점 검찰청, 본연의 모습을 되찾길 바란다. 박 지검장은  지난 2010년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 행위의 규제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미공개 중요정보이용행위의 이해>라는 책도 낸 금융전문가다.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행위는 작전의 일종인 내부자 거래를 말한다.

추미애 장관도 생활형 검찰의 주요 업무인 금융 범죄 관련 조직 재정비와 인사를 시급히 해야 한다. 여의도 좀비들이 작전에서 치고 빠지면, 서민 좀비들은 우리를 노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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