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분기 기준 전 세계 1억9295만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세계 최대 OTT(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의 최고경영자·창업자인 리드 헤이스팅스가 입을 열었다.
CBS는 14년 전 넷플릭스가 빨간봉투에 담긴 DVD를 미국 전역에 배송하던 시절 헤이스팅스 CEO와 인터뷰를 진행한 곳이다. 그는 그 자리에서 OTT 서비스에 대한 비전을 밝혔고, 이는 현실이 되었다.
"민첩함을 얻으려면 최고의 직원으로 팀을 꾸려야"
헤이스팅스 CEO는 규칙이 없는 기업 문화가 넷플릭스의 성공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직원이 판단을 내리지 못하게 막는 절차를 개발하지 않고 직원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면,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고 관련된 책임을 묻는 게 더 쉬워진다"며 "이것이 오늘날 넷플릭스가 민첩한 회사로 거듭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말했다.대표적인 사례가 블록버스터다. 헤이스팅스 CEO는 2000년 초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 있는 블록버스터 본사에 방문해 넷플릭스 인수를 제안했다. 당시 블록버스터는 60억 달러의 기업 규모와 전 세계 9000여개의 비디오 대여점을 보유한 콘텐츠 유통 업계의 거물이었다. 반면 넷플릭스는 겨우 100여명의 직원과 30만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스타트업에 불과했다.
당시 헤이스팅스 CEO는 존 앤티코 블록버스터 CEO 앞에서 몇 분에 걸쳐 블록버스터가 넷플릭스를 구매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앤티코 CEO는 블록버스터가 넷플릭스를 구매하는 데 얼마를 지불해야 하는지 물었고, 이에 헤이스팅스 CEO는 5000만 달러라고 답했다. 현재 넷플릭스의 기업가치 2275억 달러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헐값이다. 하지만 앤티코 CEO의 답변은 "노(No)"였다.
낙심한 헤이스팅스 CEO는 넷플릭스를 블록버스터와 어깨를 견주는 미디어 유통사로 성장시키겠다고 다짐한다. 2002년 넷플릭스의 IPO(기업공개)를 추진해서 운영자금을 확보하고 2007년 기존 DVD 우편유통을 대신할 OTT 사업에 진출한다. 이후 전 세계 190여개국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디어 공룡으로 거듭났다.
반면 블록버스터는 2010년 파산을 선언했고, 2019년 마지막 비디오 대여점이 문을 닫는 것을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주변 환경 변화에 맞춰 기존 주력 사업마저 포기하고 새 사업에 뛰어든 민첩함이 이러한 차이를 불렀다는 게 헤이스팅스 CEO의 주장이다. 그는 "블록버스터는 브랜드, 자본, 비전 등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지만, 딱 하나 절차보다 사람을 중요시 하는 '문화'가 회사에 없었다"고 말했다.
배틀로얄 같은 회사 분위기... 승리하려면 어쩔 수 없어
넷플릭스는 출근시간, 근무시간, 휴가규정, 비용규정, 보고체계, 승인절차, 계약체계 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직원들은 이렇게 비정상적인 자유와 함께 업계 최고 수준의 급여를 받는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헤이스팅스 CEO의 시험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 처해있다.이를 두고 업계에선 넷플릭스의 기업 문화가 '헝거 게임(배틀로얄)'과 같다고 말한다. 헤이스팅스 CEO는 "넷플릭스는 헝거 게임과 전혀 다르다. 이것이 완전한 협력이다. 월드컵에서 우승하려면 최고의 선수로만 팀을 구성해야 한다. 비즈니스에서 승리하려면 최고의 직원들로 회사를 구성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넷플릭스의 기업 문화가 가혹하다는 사실을 일부 시인했다. 넷플릭스는 모든 사람을 위한 직장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직원에게 높은 자유를 제공하는 넷플릭스에도 딱 하나 금지되는 것이 있다. 거짓말이다. 거짓말은 팀워크를 부수는 가장 큰 요인인 만큼 거짓된 업무보고나 행위는 넷플릭스에서 즉시 해고되는 사유다.
기술 기업에서 미디어 기업으로... 변화는 창업자도 예외 아냐
코로나 이후를 대응하기 위해 넷플릭스는 또 다시 변화를 꾀하고 있다. 기존 넷플릭스는 인터넷으로 콘텐츠를 유통하는 기술 기업이었지만, 이젠 전 세계 190여개국에서 통하는 콘텐츠를 제작·유통하는 미디어 기업으로 거듭났다.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것은 헤이스팅스도 예외가 아니다. 기술을 상징하던 헤이스팅스는 뒤로 물러나고, 테드 사란도스 최고콘텐츠책임자가 공동 CEO를 맡아 넷플릭스를 운영해 나가기로 했다. 이러한 변화에 맞춰 넷플릭스 본사도 기술 중심도시 실리콘밸리에서 콘텐츠 중심도시 할리우드(로스앤젤레스)로 이전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두고 헤이스팅스 CEO는 "넷플릭스의 영화 '로마'는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 후보에 올라 3개의 오스카상을 수상했다. 넷플릭스는 이제 콘텐츠 유통사가 아닌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주요 영화·TV 프로그램 제작사다. 그 어떤 제작사보다도 많은 오스카상과 에미상을 수상했다. 이 모든 게 사란도스 CEO의 공이다"고 후계자를 치켜세웠다.
디즈니 플러스, HBO 맥스와 같은 넷플릭스의 경쟁 서비스는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콘텐츠를 확보하며 콘텐츠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이에 넷플릭스는 자체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2018년 하반기부터 콘텐츠 생산 기능과 역할을 전 세계 지사로 확장한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실제로 CJ ENM, JTBC 등을 통해 국내 콘텐츠를 지속해서 확보하는 것도 이러한 콘텐츠 다각화 전략의 일환이다.
지역 콘텐츠는 지역과 전 세계를 목표로 제작
미디어 업계에 따르면, 넷플릭스의 글로벌 전략은 '지역을 위한 지역 콘텐츠'와 '글로벌을 위한 지역 콘텐츠'라는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된다.지역을 위한 지역 콘텐츠는 넷플릭스가 진출한 특정 국가에 특화된 프로그램이다. 한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예능 콘텐츠를 확보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넷플릭스는 지사의 콘텐츠 확보 관련 권한과 현지 콘텐츠 업체와 공조를 지속해서 강화하고 있다.
글로벌을 위한 지역 콘텐츠는 현지 유명 콘텐츠 제작자와 공조해 전 세계적으로 흥행할 수 있는 오리지널 영화를 촬영하는 것이다. 국내에선 봉준호 감독과 협력해 옥자를 촬영한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칸과 오스카를 동시에 석권하면서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영화 전략도 한층 힘을 얻고 있다.
경쟁사가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콘텐츠를 빼감에 따라 넷플릭스에게 오리지널 영화 제작은 매우 중요한 사업 전략이 됐다. 때문에 스콧 스튜버 넷플릭스 최고영화제작자(head of film)는 테드 사란도스 공동 CEO에게 오리지널 영화 제작에 관한 사항을 바로 보고한다.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영화 제작을 위해 영국 런던, 캐나다 토론토, 스페인 마드리드, 미국 뉴욕 등에 관련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콘텐츠 제작에 나섰다. 해당 스튜디오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오리지널 영화 제작 중단에도 불구하고 현지 영화 수급을 위한 거점으로써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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