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우 구테흐스(Antonio Guterres)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6월 열린 '코로나19가 식량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는 정책 브리핑'에서 “전 세계가 식량 비상사태에 직면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11월 9~10일 온라인 생중계로 열린 '2020 지속가능 농업 개발을 위한 글로벌 ODA 포럼’에서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코로나19 발병 이전 식량 위기에 직면한 인구는 약 1억3000만명이지만, 발병 이후 2배로 늘어났다고 한다.
코로나19와 기존의 기후 문제가 더해져 글로벌 농업 가치사슬은 식량위기를 악화시키고 있다. 이 와중에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할 이해관계자들은 곡물가격 급등을 가져올 수도 있는 각개전투에 몰두하는 중이다. 정부는 자국 내 식량부족을 우려해 식량 비축에만 급급하고, 전 세계 곡물시장의 80%를 점유한 다국적 기업은 그들이 가진 자본력으로 국제 곡물시장을 휩쓸어 버렸다.
코로나19로 현재 식량 및 식품 시스템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시점이다. 어쩌면 이 모든 건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커다란 경고이자, 다국적 기업이 지배하고 있었던 생산과 소비를 생태적인 방식의 생산과 지속 가능한 소비 체계로 전환하자고 내민 협력의 손일 수도 있겠다.
코로나19로 물류와 사람의 이동이 제한되면서 최빈국 소규모 농가는 농산물 생산과 판매에 어려움이 컸다. 판로가 막혀 버린 농가는 소득이 없어 식품을 구매하지 못하고, 빈곤과 기근에 시달리는 어려움을 겪었다. 우리나라의 화훼 농가나 친환경 급식에 농산물을 납품했던 농가의 이야기들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쉽다.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맺고 안정적인 판로를 보장하는 공정무역 거래처를 가지고 있던 협동조합의 상황들은 그나마 나았다. 그들은 작년에 거래를 약속한 공정무역 파트너에게 올해 생산한 물량을 판매해 소득을 얻을 수 있었다.
둘째로, 공정무역 단체가 공정무역 가격에 더해 소농들이 만든 협동조합에 지원하는 웃돈 개념의 소셜프리미엄(Social Premium)도 효과가 컸다. 협동조합은 소셜프리미엄을 활용해 농업 비즈니스에 투자하거나 협동조합 멤버인 농부와 농부들이 사는 지역의 복지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다.
아름다운커피가 거래하는 르완다 뷔샤자(Bwishaza)커피협동조합은 조합원과 조합원 가족들의 1년 건강보험료를 지불하는 데 이 프리미엄을 사용했다. 올해처럼 의료 안전망이 절실했던 시기엔 더 유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 외에 공정무역 파트너를 가진 협동조합들은 올해 소셜프리미엄으로 코로나19 진단 키트나 긴급 식량지원 패키지를 구매할 수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농부들은 협동조합의 인프라로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 힘을 키운다. 협동조합에서 일하는 협동조합장이나 매니저를 만나면 그들은 공정무역으로 얻은 소득과 변화가 자신들의 삶을 지탱하고 있다고 말하곤 한다. 협동조합의 지속가능성이 개인의 지속가능성과 일치함을 알고 있기에 그들은 협동조합의 리더가 되고 인프라를 키운다. 앞서 언급했던 뷔샤자(Bwishaza) 커피협동조합 매니저가 협동조합원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예방교육을 실시한 것도 같은 맥락의 활동이 될 수 있다.
물론 공정무역 생산지의 생물 다양성에 대한 노력, 최빈국 농부 외 국내 농부들과의 상생은 큰 과제로 남아 있다. 공정무역 커피와 국내산 우리밀로 만든 커피쿠키 등 이미 출시되어 있는 로컬페어트레이드(Local Fair Trade) 개념의 제품들은 해당 과제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오늘 이야기한 공정무역의 원칙과 활동이 기존 글로벌 농업 가치사슬을 대체할 전부라고 말할 순 없다. 그저 글로벌 농업 가치사슬의 지속가능성을 실현하는 길 위에 공정무역이 동반자로 함께 걷고 있는 것뿐이다. 그 길의 끝에 코로나19와 반복되는 식량위기의 종식이 있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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