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칼럼-지금·여기·당신] 코로나19 너머, 교황과 함께 꾸는 꿈


코로나19 시대, 세계에 묵직한 영향력을 미치는 리더들이 다양한 진단, 분석, 전망, 해결책을 말한다. 정치 지도자들은 팬데믹 비상에 갖가지 대책과 정책, 정치적 제스처를 통해 권력을 행사한다. 권력을 더 유지하기 위해서라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종교 역시 그 스스로 권력이기도 하고 정치경제 권력에 좌지우지되는 정치적 성격이 짙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에게 종교는 코로나19가 엄습한 지금을 견뎌 내고, 앞으로 맞게 될 코로나 이후의 시대-세계를 맞이하는데 버팀목이 될 것이다.

팬데믹 상황에 종교가 항상 그런 건 아니었다. 올해 대한민국은 신천지 같은 이단 교회, 극우 성향의 꼴보수 ‘태극기 교회’가 코로나19 악화에 큰 해악을 끼쳤다. 그 때문인지 코로나19와 '함께 하는' 성탄과 연말연시 시즌이 되니 지난 3월 TV로 본 종교 행사의 한 장면을 다시 떠올렸다.
 

[지난 3월 27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텅 빈 성베드로 광장에서 기도하고 있다. 사진=cpbc 캡처]


지난 3월 27일 순백의 사제복을 입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시국의 중심 성 베드로 대성당 앞 광장에 나타났다. 평소 수만 명의 인파로 가득했던 광장에 홀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걷는 교황의 모습, “지구와 인류를 코로나19에서 구원하소서” 기도는 절망에 빠진 지구인들에게 위안을 줬다. 가톨릭(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꽤 많은 이들이 그 장엄하고 거룩한 모습에 위로와 감동을 느꼈다.

기도를 통한 종교적 위안 뿐 아니다. 세계 각국 지도자가 각자도생, 자국민 우선 정책을 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교황은 말 그대로 전 지구적인 해법을 모색했다. 인류 모두를 위한 생태적 변환을 강조하며 가난한 나라와 사람들을 생각하라고 부자 나라 지도자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교황청은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약자와 빈국의 부채를 탕감하는 ‘희년’(jubilee·해방과 안식의 해)을 제안하기도 했다. 가난한 나라들이 코로나19를 퇴치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게 부유한 나라들이 외채를 탕감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교황이 직접 지난 4월 부활절 담화에서 “가난한 나라의 부채를 줄이거나 탕감해주고, 이기심을 버리고 연대의 정신을 살려야 한다”면서 “내전과 테러를 중단하고,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여러 민족을 위한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올 성탄을 앞두고는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적게 가진 이들을 위해 무언가 합시다. 우리 자신과 친구들을 위해 선물을 준비하지 말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선물을 준비합시다”라고 했다.

교황은 종교 지도자로서 ‘성경 말씀’만 하지 않았다. 자본주의 경제의 반성과 개혁, 위기 해결책 등을 직접 설파하고 행동했다. 가톨릭 내부를 향한 혁신도 줄기차게 이어갔다.

단적인 예가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낙태된 태아에서 추출한 세포가 사용된 것에 대한 입장이다. 바티칸 당국은 지난 21일 “낙태된 태아에서 추출한 세포를 사용한 연구를 바탕으로 개발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용인된다”고 밝혔다. 가톨릭은 낙태를 중대한 죄악으로 보고, 철저히 반대해왔다. 가톨릭교회 역사 상 낙태에 대해 이렇게 유연한 입장, 불가피한 측면을 인정한 것은 처음이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내린 큰 결단 때문이다.

일부 보수적 가톨릭 신자들은 낙태된 태아 세포를 이용한 연구에서 비롯된 백신에 대해 부도덕하다고 주장해왔다.

바티칸의 설명은 “백신 선택 시 ‘윤리적으로 비난받지 않을’ 백신이 없을 때는 생산 과정에서 낙태된 태아로부터 얻은 세포를 사용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받더라도 도덕적으로 용인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교황청은 “낙태된 태아의 세포를 사용하는 백신에 대해 도덕적 찬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의미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가톨릭 수장이면서도 바티칸시국이라는 초미니국가의 최고 지도자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국가지도자로서 보인 교황의 행동도 말과 일치한다.

그는 바티칸 내에서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그는 최근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열린 특별알현에서 바티칸 노동자들과 이들의 가족을 향해 “당신들은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다. 아무도 버려지거나 일자리를 잃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올해 초 바티칸 당국은 비용 절감을 위해 직원들의 승진 및 신규 채용, 추가 근무, 출장 등을 제한한다고 밝혔다. 교황 스스로 일찌감치 위기를 경제적으로 대비한 거다.
 

[사진=21세기북스 제공]


때마침 교황이 쓴 책이 나왔다. 자신의 전기 작가인 오스틴 아이브레이와 함께 쓴 저서 <렛 어스 드림(Let Us Dream: The Path to A Better)>이다. 책에서 교황은 위기와 절망 속에서도 더 나은 미래로 가기 위해 다시 ‘함께 꿈을 꾸자’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위험이 있는 곳에서는 언제나 해결책도 무럭무럭 자란다”는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Friedrich Hölderlin)을 인용한다.

“위험에 있을 때 우리는 행동해야 합니다. 그때 새로운 문이 열립니다”라고 말하는 교황은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시한다.

새로운 문을 여는 행동으로 ▷인간과 자연, 문화, 윤리의 통합 생태론(integral ecology) ▷단순히 빵을 나누는 것을 넘어 함께 자리할 식탁을 마련하는 연대 ▷토지(land)-주택(lodging)- 일자리(labor) 3L의 안정적 시스템 마련 ▷보편적 기본소득에 대한 연구 시작 등을 꼽는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두 교황>를 보면 프란치스코 교황이 왜 ‘가난한 사람들의 벗’으로 불리는지 알게 된다. 코로나19가 관통한 올 한 해 종교와 국가, 인종과 이념을 뛰어 넘어 모든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넓고 깊게 생각한 ‘글로벌 리더’ 교황을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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