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세미나 기사 좀 잘 써주세요"

“기자님 기사 좀 잘 써주세요.”

지난 2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촉법소년 연령 인하 정책 관련 토론회'가 끝나고 주제 발표자와 패널들과 명함을 교환했다. 이 과정에서 한 대학 교수가 명함을 건네며 이렇게 짧지만 강한 부탁을 했다.

이날 토론회를 취재한 기자는 애석하게도 본인을 포함해 아주경제 수습기자 3명이 전부였다. 공교롭게도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에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러 온 날이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헌정사 최초로 대통령 시정연설 보이콧을 예고했고, 결국 실행에 옮겼다. 기자들의 발길은 당연히 국회 본회의장에 쏠릴 수밖에 없었다.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에겐 자신들의 의견을 외부로 전달해 줄 사실상 유일한 창구는 기자들뿐이라 여겨졌다.

지난주부터 정치부 국회팀으로 배치돼 현장을 돌았다. 일정의 대부분이 국회 세미나나 포럼에 참석, 참석자들의 말을 받아 적고 이를 정제해 기사화하는 것이었다. 바쁘게 노트북으로 타이핑하는 와중에도 계속 눈에 들어오는 것은 현장을 찾은 기자 수였다. 이날도 우리 동기들 빼고는 다른 타사 기자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동안 국회에서 취재한 세미나 주제는 사실 일반인들조차 크게 관심 없는 이슈가 많았다. 템플스테이 활성화, 지방균형전략, 탈북여성 인권보호 등을 취재했지만, 최근 정치권의 화두와는 거리감이 큰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떤 세미나라도 이를 주최하고 참석한 이들은 단 한 명의 사람이라도 더 많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알아주길 바랐을 것이다. 그러니 굳이 국회라는 민의의 장을 빌려 행사를 개최했을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 소위 '유명' 정치인들에겐 기자들이 늘 따라붙는다. 이들은 기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써달라고 굳이 호소할 필요가 없다. 이미 기자들이 알아서 기사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지 못하는 초·재선 의원들이나 행사 참여자들은 그렇지 않다. 이들에게는 기자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존재로 여겨졌다. 

언론 미디어의 기능 중의 하나는 '의제 설정을 통한 공론장 형성'이라고 배웠다. 대중의 관심을 못 받는 세미나라도 언론이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길 바란다. 물론 당장 시의성이 떨어져도, 언젠가는 사회에 꼭 필요한 주제가 제법 많다.

촉법소년 연령 인하 정책 토론회 다음날인 26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기자회견을 열고 "촉법소년 연령을 만 14세에서 만 13세로 하향하겠다"고 발표했다. 국회 토론회에서는 영국, 캐나다 등 주요국이 연령을 오히려 올리는 추세라며 우리나라는 반대로 세계적 추세를 역행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를 국민들이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토론회에서 만난 교수의 바람에 부응하고자, 나름 열심히 이날 주제발표와 기사를 쓰느라 진땀을 뺐다. 하지만 결국 촉법소년 기준 연령은 낮춰졌다. 허무함은 남지만, 이날 토론회 기사를 더 많은 언론에서 기사화했으면 어땠을까. 물음표가 찍힌 날이었다.
 

[임종현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