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다카이치 사나에 2기 내각의 출범과 동시에 미국과 일본이 5500억 달러(약 800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중 ‘1호 프로젝트’ 3건을 전격 발표한 가운데, 일본 현지 매체들의 분석은 ‘축제’보다는 ‘냉혹한 손익 계산’에 집중되고 있다. 특히 일본 현지 매체들은 이번 합의가 일본 기업들에 결코 유리하지 않은 수익 구조를 담고 있으며, 정부의 조급증이 낳은 결과라는 우려 섞인 시각을 내놓고 있다.
19일 요미우리와 닛케이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번 ‘1차 투자 사업’이 확정되기까지 일본 정부와 민간 기업 사이에는 상당한 온도차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해 12월 양국 간 협의위원회 구성 직후부터 미국 측은 “1월 중 가시적인 성과를 내라”며 사실상 조기 발표를 강력히 요구했고, 일본 측 협상 관계자들은 이를 ‘(실무적 준비가 결여된) 미국 측의 성급함’이라고 표현했다.
반면 실제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일본 기업들은 고금리와 건설 단가 상승 등 사업 리스크를 우려해 막판까지 신중론을 유지해 왔다. 결국 지난 12일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산업상이 워싱턴DC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을 만나 금리 인하와 사업비 압축 등 미국 측의 일부 양보를 끌어낸 끝에야 겨우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부지 제공과 인허가 지원을 ‘현물 출자’로 인정받아 이 같은 압도적 수익권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일본의 자본과 기술로 미국 내 인프라를 구축해주고, 운영 수익의 대부분은 미국 정부와 현지 파트너 기업이 향유하는 구조다. 아사히신문은 기업 관계자를 인용해 “정부의 외교적 성과 발표를 위해 기업들이 향후 수십 년간 불리한 수익 구조에 묶일 수 있다”는 현장의 경계감을 전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번 발표가 한국을 향한 ‘압박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현지 분석이다. 아사히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투자가 지연되는 한국을 겨냥해 ‘고관세 부과’를 언급하며 강하게 몰아세우고 있는 상황을 일본의 이번 결정과 직접 비교해 보도했다. 아사히는 특히 한국의 경우 대미 투자 이행이 국회 승인 등의 문제로 늦어지고 있다는 점이 트럼프 행정부의 불만을 샀다고 분석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이 겪고 있는 관세 압박의 타깃이 되지 않기 위해, 설령 수익 배분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1호 프로젝트’를 조기에 출범시켜 트럼프 행정부의 ‘투자 모델 케이스’를 선점하려 했다는 분석이다. 즉, 이번 합의는 순수한 비즈니스 목적보다는 관세 면제와 동맹 유지를 위해 지불한 일종의 ‘전략적 기회비용’ 성격이 짙다는 관측이 나온다.
확정된 3개 사업은 철저하게 미국의 이익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기조에 부합한다. 소프트뱅크가 주도하고 히타치·도시바·미쓰비시전기 등이 참여하는 오하이오주 가스 화력 발전소 건설은 미국의 AI 주도권을 위한 전력망을 보강하며, 텍사스주의 원유 수출 인프라와 조지아주의 인공 다이아몬드 시설은 각각 미국의 에너지 패권과 공급망 안보를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결국 다카이치 총리가 강조한 ‘공급망 유대’의 이면에는, 거대 자본을 투입하고도 수익의 상당 부분을 양보해야 하는 일본 기업들의 고심과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파고를 넘기 위한 일본 정부의 절박한 생존 전략이 공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일본의 사례는 현재 미국과 까다로운 통상 협상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 정부와 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이 지불한 ‘전략적 양보’의 실체를 면밀히 분석하고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우리만의 정교한 협상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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