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전세보증금 의무신탁'으로 전세제도 개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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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중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
입력 2023-06-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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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광중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


전세사기는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전세보증금을 모두 잃은 피해자들을 수없이 남겼다. 관련 특별법이 시행됐지만 피해 구제에 턱없이 부족하다. 한편 2021~2022년 급등한 전세가격이 최근 급격히 하락하면서 깡통전세 대란도 다가오고 있다. 

전세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는 사기적 범행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임대인 경제 사정 악화와 주택∙전세가격 하락 등에 의해서도 발생한다. 사기적 범행이 없더라도 전세보증금을 임대인에게 맡기고 다시 임대인한테서 받아야 하는 상황, 그 반환을 해당 주택으로만 담보하는 상황에서는 계속 같은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전세사기 피해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여러 대책이 제시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것은 이와 같은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한계 때문이다. 전세사기와 깡통전세 피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은 전세보증금을 임대인 리스크에서 절연해야 가능하다. 

그 유력한 방법이 ‘전세보증금 의무신탁’ 제도다.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전세계약을 체결하면 임차인은 임대인과 합의한 전세보증금을 임대인이 지정한 금융회사(수탁자)에 신탁한다. 임대인은 이 신탁의 수익권자가 된다. 금융회사는 특정금전신탁상품과 유사한 방식으로 수익권자인 임대인의 지시에 따라 전세보증금을 운용하고 그 수익을 임대인에게 지급한다. 단, 그 운용은 정기예금, MMF, 국공채 매입 등 원금 보장형 상품으로 제한한다.

신탁 기간은 전세계약 기간과 동일하게 하여 전세기간 중에는 임차인이 이를 돌려받지 못하고 기간이 만료되면 금융회사가 임차인에게 반환한다. 전세기간을 갱신하면 그에 따라 보증금 신탁 기간도 갱신된다. 반전세에서 미지급 차임이 있으면 금융회사는 보증금에서 미지급액을 공제하여 수익권자인 임대인에게 지급하고 나머지 보증금을 임차인에게 반환한다. 

이와 같은 ‘전세보증금 의무신탁’ 제도는 전세제도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현 전세제도를 유지하되 전세보증금을 관리하는 주체가 임대인에서 금융회사로 달라지는 것이다. 임대인에게 많은 채무가 있더라도 그 채권자들이 강제로 집행할 수 있는 것은 임대인이 가진 수익권일 뿐 신탁된 전세보증금은 대상이 될 수 없다. 임대주택이 매매나 경매·공매로 넘어가더라도 임차인에 대한 보증금 반환을 담보하는 것은 임대주택이 아니라 금융회사이므로 임차인은 온전히 보증금을 반환받을 수 있다. 소유자가 달라지면 새로운 소유자가 기존 임대인의 지위와 수익권자 지위를 승계해 신탁을 존속하게 함으로써 원래 약정된 전세기간까지 임차인은 계속 거주할 수 있다.

이 제도하에서는 임차인에 대한 보증금 반환이 금융회사에 의해 담보되므로 임차인에게 우선변제권을 인정할 필요가 없다. 임차인의 우선변제권이 없으므로 임대인은 임대주택에 근저당권 등을 설정하여 다른 곳에서 돈을 차용할 수 있다. 임대인이 임대주택을 온전히 담보물로 활용하더라도 임차인은 전세보증금을 반환 받는 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 거액의 담보대출이 이뤄진 주택을 임차하더라도 임차인은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전세보증금 상한 제한도 필요하지 않다. 선순위 담보권이 설정된 주택도 우량한 임차주택이 될 수 있다. 임차인에 대해 보증금 반환은 보장되면서도, 현 제도에서 담보대출이 된 주택을 매입하는 투자도 그대로 가능하다.

임차인이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하는 유일한 위험은 금융회사 도산이다. 그러나 이는 임차인이 전세보증금을 그대로 가지고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발생하는 위험이다. 그마저도 전세보증금 신탁을 받을 수 있는 금융회사의 자격을 제한하고 건전성 관리를 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임대인이 임차인에 대해 직접적으로 임차보증금 반환 책임을 부담하지 않고 임차인의 우선변제권에 의한 담보가치 감소가 없으므로 기존 전세제도와 달리 주택의 담보가치가 그대로 유지된다. 임대인이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데 장애를 초래하지 않는다. 기존 전세제도가 가진 사금융의 기능은 금융기관의 주택담보대출로 대체하는 것이다.

신탁된 보증금은 임대인의 지시에 따라 운용되고 임대인이 그 수익을 모두 갖게 된다. 지금 제도에서 임대인이 임차인에게서 받은 보증금을 특정금전신탁상품에 투자하는 것과 유사하다. 임대인은 주택을 이용한 금융이 가능하면서도, 전세보증금 운용을 통한 수익도 얻게 되므로 월세보다 전세를 이용하려는 유인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렇게 전세제도를 개혁하면 전세사기, 깡통전세를 비롯한 임차인 피해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다. 임대인 재산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되지도 않는다. 전세의 주거사다리 역할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그럼에도 지금의 전세제도가 오랜 기간 유지되어 온 만큼 반발이 만만치 않을 수 있다. 이는 신탁해야 하는 보증금 비율을 단계적으로 높여가고 그 적용 대상도 다주택 임대인부터 시작해서 점차 늘려가는 등 단계적 전환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전세 공급 물량 축소 가능성은 임대인의 운용 수익에 대한 과세를 시장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2016년 일부 은행이 보증금 ‘에스크로’ 상품을 출시했으나 수수료가 적은 은행의 소극적 영업과 중개사들의 소극적 태도로 이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보증금 신탁제도 이용 의무를 부과하지 않은 제도적 한계에서 비롯된 것에 불과하다. 보증금 신탁이 의무화되면 금융회사는 수십조 원 규모의 특정금전신탁상품을 판매하는 것과 마찬가지 수익을 얻게 되므로 오히려 금융회사가 더 적극적일 수 있다.

이와 유사한 제도는 이미 독일에서 시행되고 있다. 독일 민법(BGB)은 주택임대차에서 보증금(Kaution) 수수에 관한 특별 규정을 두고 있다. 임대인은 임차인에게서 수령한 보증금을 본인 고유 재산과는 분리하여 금융기관에 저축성 예금으로 예치해야 한다. 그 결과 보증금은 임대인의 고유 재산과 분리된 독립 재산이 되고, 임대인의 채권자들이 보증금에 대해 압류할 수 없도록 하였다. 

유사한 면이 있는 ‘임차보증금 에스크로’ 제도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잠시 언급했다가 전세제도 폐지 논란을 일으키며 철회하였다. 그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제도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보증금 반환은 보장하되 전세제도는 계속 유지하는 것도 가능하다. 장관이 섣부르게 언급함으로써 우리 전세제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하고 사그라든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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