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수능도 같이 친 '깨복쟁이 친구'였는데 믿어지지 않아요." (故 채수근 상병 친구 어머니)
"우리 아들 아닙니까." (포항보호관찰소협의회 신모씨)
경북 예천군 수해 현장에서 실종자 수색 작업 중 순직한 고(故) 채수근 상병(20)의 빈소에 고인을 애도하는 추모의 발길이 이어졌다. 고인과 가장 가까웠던 지인부터 고인의 모습에서 아들의 얼굴을 떠올리는 일반 시민들까지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빈소를 찾았다.
21일 경북 포항시 오천읍 해병대1사단 내 강당에는 채 상병의 분향소가 차려졌다. 분향소 가운데 놓여진 사진에서 짧은 머리에 군복을 입은 앳된 얼굴의 채 상병을 볼 수 있었다.
관련기사
채 상병 어머니를 마주한 남씨는 그를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채 상병의 어머니는 "찾아와주셔서 감사하다"며 연신 흐느꼈고, 남씨는 "엄마가 잘 버티셔야 한다"며 등을 쓰다듬었다. 채 상병의 어머니는 "구명조끼만 입었어도 이렇게 안됐을 텐데 우리 아들 이후로는 이런 일 없게 해야지"라며 눈물을 훔쳤다.
채 상병 어머니와 알고 지내던 사이도 아닌데 어떻게 분향소까지 찾아오게 됐냐는 본보 기자의 질문에 남씨는 "아들은 해병대 1293기로 고인과 불과 한 달 차이로 입대했다"며 "가만히 있을 수 없어 포항까지 찾아왔다"고 전했다. 해병대 자식을 둔 부모들의 조문 행렬은 남씨 이후에도 이어졌다. 채 상병의 어머니는 "해병대 자식을 둔 조문객들이 몇몇 찾아오셨다"고 했다.
"수능 직후 '노가다' 뛸 정도로 자립심 강해...'해병대 지원' 고집"
이날 오후 2시에는 채 상병의 보국훈장 서훈식이 진행됐다. 해병대 사령관이 윤석열 대통령을 대신해 유가족에게 보국훈장 광복장을 수여했다. 빈소에는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광복장은 국가안전보장에 뚜렷한 공을 세운 사람에게 수여한다"며 "재난상황에 예천군 호우 피해 복구를 위해 투입돼 실종자를 수색하는 숭고한 임무를 하다 순직됐다"는 말이 울려펴졌다.
이날 채 상병의 '깨복쟁이 친구'였다던 아들과 함께 빈소를 방문한 A씨는 "우리 아들과 같은 어린이집을 다니고 수능도 같이 봤다"며 “어릴 때는 개구졌는데 철이 들면서 너무나도 착하고 의젓했다"고 고인을 회고했다. "집이 어려운 형편도 아닌데 수능을 치자마자 '노가다'를 뛰었다. 그 정도로 자립심이 강한 아들이었다"며 연신 안타까워 했다.
A씨는 채 상병이 해병대에 자원했던 당시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불과 반 년 전이었다. A씨는 “채 상병의 어머니가 아들이 해병대에 지원했다며 너무 속상해서 고민 상담을 해왔었다"며 "그래도 부모는 결국 아들 편이라 (채 상병 어머니가) 처음에는 완강히 반대하다가 들어줬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가 27년간 소방관으로 근무하며 많은 인명을 구했다. 그런데 정작 아들은 안전 지침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이렇게 된 걸 생각하면…"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빈소에 모인 장병들과 조문객들의 묵념으로 서훈식은 마무리됐다. 5분 내외의 짧은 서훈식이 끝나자 옆에 마련된 천막에서 새어나온 채 상병의 어머니의 곡소리가 강당을 가득 메웠다. 빈소 옆에는 대통령부터 시작해, 국무총리 등 정계 인사들의 보낸 근조화환이 있었다. 그 옆에는 '익명의 시민 일동', '상병 백OO 엄마' 등 일반 시민들이 보낸 화환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문책보다 예방에 집중해야...장교 몇 명 자른다고 바뀌지 않아"
포항보호관찰소협의회에서 단체로 찾아왔다는 60대 김모씨는 "착잡하고 슬프고 눈물이 가슴에 북받쳐 오른다"며 "조문하는 내내 마음 속에서 계속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그의 말 끝에선 울먹임이 묻어났다. 포항시 오천 통장 협의회장인 이모씨도 "오늘 포항시협의회장 29명 중 15명 정도가 방문했다"며 "고인에게 애도를 표하기 위해 단체로 방문하자는 뜻이 모였다"고 전했다.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은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 대책을 세우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포항보호관찰소협의회의 신모씨는 "우리 아들도 둘 다 해병대를 전역했다"며 "태풍 '힌남노' 때도 그렇고 재해가 발생하면 제일 먼저 달려가는 게 해병대 1사단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죽음에 대해 누군가를 손가락질하기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에 집중해야 한다"며 "장교 몇 명 자른다고 해서 변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해병대 출신인 김씨도 "안전장치 교육 및 사전에 훈련된 병사들을 투입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