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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디지털미디어부 편집장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연일 마음 편히 몸 하나 가눌 곳이 없을 지경이다. 길을 걷다가, 산책을 하다가, 밥을 먹다가 '묻지마 칼날'의 표적이 될까 봐 몸서리 친다.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는 말이 새삼 피부에 와 닿는 일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신림', '분당' 지역 이름만 들어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나날의 연속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 표적이 돼 소중한 생명을 빼앗기는 '묻지마 칼부림'이 대한민국을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지역 이름을 거론하기에 앞서 도심 번화가, 지하철, 쇼핑센터, 공원, 등산로 등 삶의 곳곳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 반사회·반인륜 사건과 '묻지마 살인'으로 국민들의 분노가 식을 줄 모른다. 동시에 법의 정의와 상식이 무너진 세상에 '강력한 처벌'로 단죄해야 한다는 여론에도 힘이 실린다.
미국은 살인범, 경제사범, 아동 성폭력범 등에게 수백 년 징역형을 선고하고 있다. 중국은 한국인 마약사범도 사형을 집행한다. 신림역·분당 칼부림, 신림 공원 산길 묻지마 살인은 어떤 처벌로 응징해야 할까.
불현듯 살인한 자는 사형에 처하고, 눈 멀게 한 자는 눈을 뺀 '함무라비' 법전의 단죄가 떠오른다. 피해자의 피해와 동일한 손해를 가해자에게 강제하는 건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사형제가 있지만 시행하지 않는 우리나라는 사실상 '사형제 폐지국가'로 분류되는데, '묻지마 살인'을 자행한 범죄자에 한해서는 사형제 유지가 답이 아닐까 하는 울분마저 토하게 된다.
정부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신설한다고 한다. 사형이 집행되지 않는 현재의 상황에서 법정 최고형인 무기징역이 가석방으로 낮춰지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현행법상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피의자가 20년 이상 복역하면 가석방이 가능한데, 불특정 다수를 향한 범죄 행위와 흉악 범죄의 재발 방지를 위해 가석방하지 않는 묘책이 마련된 것이다.
피해자와 유족들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사형을 대체할 사실상 유일한 형벌로 지지하고 있다. 유명무실해진 사형제 대신, 희생자들의 아픔을 치유할 근원적 해법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라는 의미도 담긴다.
정치권에서도 '묻지마 범죄'를 단죄하기 위해 가중 처벌을 할 수 있는 법안을 내놓고 있다. 무차별 범죄자가 피해자를 숨지게 하면 사형, 무기 또는 형의 두 배까지 가중하는 법안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최근 논의되고 있는 형법에 가석방 없는 종신형 조항을 신설하고, 가석방 요건도 대폭 강화하는 법안까지 뒤따르는 상황이다.
발의된 법안 대부분은 흉악범죄자를 영구 격리하고, 보복 범죄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는 취지를 담고 있다. 여기에 정신질환자의 입원 여부를 사법기관이 결정하는 '사법입원제' 도입도 검토되고 있다. '살인예고'로 검거된 피의자에 대해서도 협박 또는 특수협박죄를 적용하고, 경우에 따라선 더 무거운 '살인예비죄' 적용도 추진된다.
다만 이 같은 움직임에도 여전히 피해자들과 유족,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된 국민들은 이번 기회에 정부든, 정치권이든 제대로 매듭을 지어주길 원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언제나 그랬듯, 인력과 인프라 부족을 핑계로 요란만 떨고 흐지부지 끝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서다.
사랑하는 가족은 물론 본인 스스로 언제든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일상의 공포가 언제쯤 사라질 수 있을까. 밤이고 낮이고 상관없이, 사람이 적든 많든 가리지 않는 '묻지마 살인 테러'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함무라비의 단죄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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