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사이 1873년 야구를 도입한 일본은 조선 침략을 본격화하며 전국에 일본인 야구팀을 만들어 즐겼다.
그리고 1910년 일본의 침략으로 일제강점기가 시작됐다. 일본의 지배를 받지만 야구 실력은 뒤지지 않았다. 1920년 창단한 직업야구팀(지바우라협회)에는 다수 한국인이 주전으로 뛰었다. 1924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와 경기를 펼친 대일본동경구락부에는 이영민이 참가했다. 박현명은 1938년 10월 오사카(한신) 타이거스와 계약했다. 이후 일본 프로야구 최초로 무안타 무득점 경기를 한 이팔룡 등이 활약했다.
이후 전국중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청룡기), 전국지구대표중등야구쟁패전(황금사자기), 재일동포학생야구단 모국방문경기대회(봉황기) 등이 시작됐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실업야구는 1960년대, 프로야구(KBO리그)는 1982년 시작됐다. 올해로 41주년이다.
광복 78주년 행사가 지난 8월 15일 열렸다. 한국 야구가 더 이상 일본 영향을 받지 않은 지도 7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41년 연속으로 진행되는 KBO리그에서는 여전히 일본식 표현이 사용되고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일단 야구(野球)라는 표현 자체가 일본에서 시작됐다. 포지션을 지칭하는 1루수, 유격수, 중견수, 야수, 외야수 등도 모두 일본식이다.
대표적인 일본식 표현으로는 4구(四球), 데드볼(死球), 러닝 홈런, 키스톤 콤비, 키스톤 플레이, 직구, 병살, 나이터, 랑데부 홈런, 중간계투진, 변화구, 라이너, 토스 배팅, 이지 플라이, 홈인, 프리 배팅, 나이스 볼, 백넘버, 코너 워크, 인 코너, 인 코스, 니어볼, 방어율, 하프 스윙, 삼진, 사이클링 히트, 버스터, 홈 베이스 등이 있다.
이러한 표현은 현재도 많이 쓰이지만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흔적이 보인다. 4구는 '볼넷'으로, 데드볼은 '몸에 맞는 공', 러닝 홈런은 '장내 홈런', 직구는 '패스트 볼', 병살은 '더블 플레이', 나이터는 '나이트 게임', 일본어와 프랑스어가 섞인 랑데부 홈런은 '연속타자 홈런'으로, 중간계투진은 '불펜'으로, 변화구는 '브레이킹 볼'로, 라이너는 '라인 드라이브'로 각각 바꿔 쓴다. 방어율은 '평균 자책점' 등을 함께 사용한다.
경기장 내에서 코치진과 선수들은 수없이 많은 사인(신호)을 주고받는다. 사인은 야구 전술에 없어서는 안 되는 소통 도구지만 이 '사인'이란 단어 역시 일본에서 유래됐다. 미국 야구가 일본에 전파됐을 때 일본인들은 자신들 만의 용어를 만들어 사용했다. 한국에는 그 용어가 그대로 들어왔다. 이 역시도 수신호 등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해설에서도 용어 사용 논란은 계속됐다. 1980년대 한국 야구 해설은 고인이 된 하일성씨와 허구연씨로 나뉜다. 하씨는 야구 규칙을 외우다시피 하며 전문성을 갖췄다. 허씨는 일본식 표현 대신 미국식 용어를 자주 사용했다. 이에 대한 질타도 있었다. 사실 두 해설자는 배경이 다르다. 하씨는 일본 영향을, 허씨는 미국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에 대해 허씨는 "공사판에서 일본말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의식적인 노력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야구장에서는 일본식 용어가 많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KBO리그에는 2005년 말부터 활동한 야구용어위원회가 있다. 2006년 4월에는 야구 용어 개선안을 내놨다.
당시 개정된 용어는 뜬공(플라이 볼), 짜내기(스퀴즈 플레이), 뒷그물(백스톱), 안전모(헬멧) 등이다. 몇몇 용어는 호응을 얻어 함께 사용되지만 흐지부지 사라진 것이 많다.
KBO리그에서는 2010년대까지 전광판 표기와 기록지를 일본식으로 했다. 전광판은 2012년 3월 6일 국제 기준인 'B(볼)-S(스트라이크)-O(아웃)'로 변경했다. 지난 30년간은 일본식인 'S-B-O'를 사용했다.
한자로 도배된 야구 기록지는 2016년 교체됐다. 이전까지 한자를 모르는 사람은 읽을 수도, 기록을 할 수도 없었다.
2014년 8월 조해연 원로자문위원이 87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했다. 고인은 1928년 경북 문경시에서 태어나 해군 헌병감실 야구단 감독을 지냈고 대한야구협회 기록원을 거쳤다. 이후 KBO 운영부장과 규칙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고인은 생전 야구 용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을 했고 '우리말 야구용어 풀이'라는 책을 펴냈다.
고인은 머리글에 '지난 일제강점기에 우리는 선택의 여지 없이 일본 야구를 배웠고 건국 후에도 부득이하게 이 흐름을 이어왔다. 그래서 용어에도 일본 냄새가 짙게 배어 있다. 이 대목이 오랫동안 우리의 양식과 자긍심을 짓눌러 온 문제의 핵심이다. (중략) 어떻든 이 용어집이 결함 없는 완벽한 내용이 되기 위해서는 야구계와 언론계의 사정없는 시정 요구와 질타를 받아야 할 것으로 믿는다. 다시 한번 깊은 관심을 기울여 주기 바란다'고 했다.
하지만 고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2016년까지 활발하던 우리말 순화 소식 또한 2020년대인 현재는 뜸해졌다. 매년 시즌 개막에 맞춰 발간하는 KBO리그 정기 간행물에도 이와 같은 내용은 포함돼 있지 않다. 한국야구는 120년, 프로야구는 50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제라도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서양식 공놀이에 짙게 배어든 일본색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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