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더 강력해진 트럼프 스톰'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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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
입력 2025-01-19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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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사진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사진=로이터연합뉴스]


'충격과 공포'의 행정명령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20일(현지시간) 백악관 주인으로 8년 만에 돌아온다. 2025년, 아니 향후 4년간 국제 정세에서 최대 변수는 다름 아닌 바로 트럼프다. 그는 취임 첫날부터 미국 내 불법 이민자 대규모 추방과 국경 통제 등 자신의 대선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측근들이 미리 작성한 약 100건의 행정명령에 서명할 예정이다. 행정명령은 굳이 의회를 통하지 않고도 즉각 효력을 낸다. 다수의 바이든 행정부 정책을 즉시 폐기하고 에너지, AI, 가상자산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규제 완화를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며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거머쥐겠다는 의도이다.  AP통신은 첫날 발효할 행정명령은 “충격과 공포(shock & awe)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퇴임을 보름 앞두고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근해의 광대한 지역에서 석유 시추 금지를 영구적으로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격분한 트럼프는 자신의 SNS(트루스소셜)에 취임 직후 바이든의 행정명령을 즉각 취소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의 스타일은 1기 때보다 훨씬 거칠고 공격적일 것으로 보인다. '세계의 경찰'이라는 미국의 역할은 이미 오래전 사라졌다. 트럼프는 이른바 신(新)고립주의 외교 기조를 통해 더욱 철저하게 자국의 이익을 중심으로 움직일 태세이다. 그의 열렬한 지지자들에게 트럼프는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미국을 구하기 위해 다시 돌아온 영웅이다. 최근 그는 덴마크가 미국의 그린란드 편입을 방해하면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또 파나마 운하 운영권을 다시 미국으로 가져오기 위해 필요하면 무력도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도발적인 발언은 단순히 '말폭풍'이 아니다. 주요 외신들은 미국 외교가 새로운 형태의 팽창주의로 전환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트럼프의 무기는 '관세' 


TV 출연자를 '캐스팅'히듯 발탁한 트럼프 2기 내각은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주의를 신봉하는 ‘예스맨’ 일색이다. 1기 때와 달리 경제와 외교 안보 분야에서 대통령의 폭주에 제동을 걸거나 직언할 인물이 없다고 미 주요 언론은 평가하고 있다. 트럼프는 자신이 관세를 언급하면 상대국들이 벌벌 떨거나 저자세를 취한다고 했다. 경제나 통상뿐 아니라 다른 문제 해결에도 관세를 최대 무기로 내세우고 있다. 이른바 '트럼프 스톰'이 거세게 몰려오면서 전 세계가 불안에 떨고 있다.  

트럼프는 선거 유세기간 줄곧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수입품에 대해  무조건 10~20%의 관세를 더 부과하고, 중국에는 60% 이상 고율 관세 부과를 공언했다. 이른바 '보편 관세'를 통해 국내외 기업의 생산기지를 미국으로 회귀시키고 감세 정책에 따른 세손도 보충하고자 하는 것이 트럼프의 의도이다. 딜레마는 고율 관세가 물가 인상으로 이어져 미국 경제의 최대 과제인 인플레이션 완화를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보호무역을 확산시켜 세계 경제의 성장이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의 보편 관세 도입 계획은 자유 무역을 신봉하는 일부 공화당 의원들도 반대하고 있다.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핵심 선거 공약인 '보편 관세' 도입을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지난 14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취임 첫날 외국으로부터 관세를 걷을 별도의 정부 기관인 대외수입청(External Revenue Service)을 설립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선거에서 공화당은 상·하원을 모두 장악했다. 그리하여 감세와 불법 이민자 추방 등 트럼프의 주요 공약 이행이 순조롭게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보편 관세'는 다르다. 이달 초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가 모든 나라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한다는 방침은 유지하되 모든 수입품이 아닌 국가 경제 안보에 필수적인 특정 수입품에만 관세를 매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는 이를 '가짜뉴스'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러한 '보편 관세 후퇴론'이 나오는 데는 통상 질서 교란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뿐 아니라 다른 이유들이 있다. 현재 공화당이 하원에서 218대215로 앞서 있지만 트럼프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 하원에서 반란표가 일부만 나와도 입법화가 어려워 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트럼프를 그나마 견제할 수 있는 곳은 미국 의회뿐이다. 또 다른 변수는 트럼프 취임 전부터 재점화될 조짐을 보이는 미국 인플레이션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보편 관세'는 트럼프 2기 경제팀의 최대 고민거리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13일 블룸버그는 소식통들을 인용해 트럼프 경제팀이 관세를 매월 2~5%씩 올리는 방안을 포함해 여러 선택지를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중국 강경 매파들  

트럼프는 미국의 외교안보 투톱으로 국무장관에 쿠바계 이민자 아들인 마코 루비오 플로리다주 상원의원(54),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육군 특수부대 그린베레 출신인 마이크 왈츠 하원의원(50)을 지명했다. 둘 다 의회에서 손꼽히는 대중국 강경 매파로 알려져 있다. 루비오 지명자는 5년 전 '하나의 중국' 원칙을 건드려 중국 입국까지 금지된 인물이다. 그는 15일 상원 외교위 인사청문회에서 중국이 "억압, 거짓말, 속임수, 해킹, 도둑질을 통해 미국의 희생 속에서 글로벌 초강국 지위에 올랐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2기 초강경 대중외교 정책 기조를 엿볼 수 있는 발언이다. 통상정책도 마찬가지이다.

통상정책의 핵심 인물은 백악관 무역.제조업 선임 고문으로 지명된 대중국 강경론자이자 '관세 신봉자'인 피터 나바로와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로 지명된 제이미슨 그리어이다. 두 사람은 트럼프 1기에서 중국에 대한 고율 관세를 진두지휘한 인물로 중국과의 2차 무역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중국사회과학원은 미국이 대중국 관세를 60%까지 높이면 중국의 대미 수출이 40% 감소하고 국내총생산(GDP)가 2.5% 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산 수입품에 고율 관세가 부과되면 우리나라 상품들이 미국에서 중국 제품을 대체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그러나 미국은 우리나라에도 양국 간 무역 불균형 해소를 명분으로 관세 폭탄을 투하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중국이 핵심 광물 수출 금지 조치 등 초강력 맞대응을 한다면 대외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신세가 될 수 있다. 우린  트럼프 1기 때보다 더 파괴적인 무역전쟁에 대비해야 한다.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한 현재의 자유무역 체제는 트럼프의 맹공으로 사실상 붕괴될  전망이다. 취임 전부터 트럼프는 동맹국도 가리지 않고 무차별 공세를 펼치고 있다. 그는 마약과 범죄자들이 캐나다와 멕시코 국경을 통해 미국으로 유입된다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멕시코와 캐나다산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다. 집권 1기 때 체결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을 뒤집을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현재 3국은 USMCA 협정으로 거의 모든 상품이 무관세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 플로리다주 트럼프 당선자 자택까지 찾아온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에게 "요구사항 이행이 불가능하면 미국의 51번째 주기 되라"며 외교적으로 굴욕적인 발언을 했다. 트럼프의 흔들기에 적절하게 대응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온 트뤼도는 결국 사임을 선택했다. 캐나다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이자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다. 

관세폭탄이 현실화되면 경제적으로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한 캐나다와 맥시코는 마땅한 대응책이 없어 고민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지난해 10월 멕시코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에 당선된 클라우디아 셰인 바움 대통령은 지난 12일 취임 100일 기념식에서 트럼프 행정부와 대화하고 협력하되 "절대 종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멕시코는 대(對)미국 상품 수출 1위국이다. 이 두 나라에 고율 관세 부과가 현실화된다면 양국에서 현지 생산 공장을 가동 중인 다수의 우리 기업들도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강 건너 불 구경 할 때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입장에서 전 세계에서 8번째로 무역수지 적자가 큰 국가이다.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해 한·미 자유무역협정 (FTA) 개정을 요구하거나 바이든 행정부가 이미 결정한 반도체 지원법 (칩스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보조금 축소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만약 미국이 한국산 제품에 2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결정하면 한·미 FTA는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과 같은 운명에 놓이게 된다. 또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 대중 수출 통제 동참 압박, 북미 직접 대화 시도 등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이 거세지면 비상계엄 선포로 촉발된 탄핵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나라는 심각한 경제·안보 위기에 처할 수 있다.  

북미 대제국 

트럼프는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 동맹과 주변국을 협박하거나 조롱하는 발언으로 외교적인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민주당과 많은 경제 외교 전문가들은 국제법과 동맹관계를 고려하지 않는 트럼프식 접근은 국제사회의 신뢰를 저해하고, 동맹국과의 협력으로 다져온 미국의 외교적 입지를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특히 지난 수십 년간 중국이 공을 들여온 중남미에서 많은 국가들이 친중으로 돌아설 위험도 크다. 그러나 트럼프의 '말폭탄'을 그냥 헛소리로 치부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트럼프가 캐나다와 그린란드까지 아우르는 북미 대제국의 꿈을 애기하면 그를 추종하는 미국 내 극우 민족주의자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그들 입장에서 경제적·안보적으로 트럼프의 주장은 상당히 일리가 있다. 지리적으로 그린란드는 중국·러시아와 군사적 패권을 다투는 미국에 최고의 전략적 거점이 될 수 있다. 또  석유와 가스뿐 아니라 희토류와 같은 중요한 자원이 엄청나게 매장되어 있다. 기후변화로 그린란드의 80%를 덮은 빙하가 빠르게 녹으면서 북극해 항로 개척이 현실화하고 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이 항로는 글로벌 물류망에서 점점 더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도 이 항로가 개설되면 세계 물류의 중심국가로 도약할 수 있다. 

1990년대까지 미국이 통제하던 파나마 운하는 지금 중국이 서반구로 진출하는 핵심 루트가 되었다. 운하를 다시 내놓으라는 트럼프의 요구는 파나마 입장에서 GDP의 25%를 차지하는 선박 통행료와 관광 수입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그린란드와 파나마 운하를 미국의 영향권 안에 둬야 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하는 트럼프는 급기야 군사력 동원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이렇게 급변하는 국제적 환경에서 대한민국이 팽창주의로 흘러가고 있는 미국 우선주의의 칼날을 피하려면 급선무가 있다. 여야가 당리당략을 떠나 똘똘 뭉쳐 국난을 극복하고 우리 경제·안보의 방파제를 탄탄하게 쌓는 것이다.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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