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법안에 반대하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최근 '실용주의'를 강조하며 수용 가능성을 내비쳤고 여야 모두 법안 처리의 시급성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월 임시국회에서는 반도체특별법이 최대 핵심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은 3일 국회에서 '반도체특별법' 정책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 노사를 비롯해 산업·노동법 전문가가 대거 참여했다.
좌장을 맡은 이 대표는 반도체특별법 도입과 관련해 "특정 산업의 R&D 분야 고소득 전문가들이 동의할 경우 예외로 몰아서 일하게 해주자는 게 왜 안되냐고 하니 할 말이 없더라"며 "기본적으로 노동시간제 예외를 두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이 점을 설득하지 못하면 '그게 왜 안 되지'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을 두고 당 안팎에서는 노동계가 반대하는 반도체특별법 도입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당 지도부는 이날 들은 양측 입장을 토대로 반도체특별법과 관련한 입장을 정리할 방침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반도체 산업에만 근로시간 예외를 적용할 경우 다른 직종과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점 등을 들며 반대해왔다. 하지만 이 대표가 최근 경제 회복과 성장에 초점을 맞추며 전향적 검토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기류 변화가 감지되면서 여야 협상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반도체특별법과 관련해 "필요한 조치를 과감하고 전향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이날 토론회에서도 필요하다면 반도체 R&D 인력들을 주 52시간 적용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다만 그 방식에는 특별법에 적용할지, 근로기준법을 손질할지 등을 놓고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과 관련해 "지금도 불가피할 경우 주 52시간 규정 미준수를 허용하는 예외 제도가 있고 반도체 산업도 이를 활용하면 충분하다"며 "산업 현장에서 근로기준법 예외 제도를 활용하기 곤란한 실제적인 사유가 있다면 현행 제도를 수정·보완할 용의가 있다"고 여지를 뒀다. 국민의힘 김상훈 정책위의장은 이날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반도체특별법의 신속한 처리에 정쟁과 정파가 있을 수 없다"며 "반도체특별법을 2월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재계와 노동계가 갑론을박을 벌였다. 기업인들은 반도체 분야 노동시간 유연화에 찬성했지만, 노동계는 산업 재해 증가 우려 등을 들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반도체 산업은 기술중심 산업이다. 시간을 기준으로 연구개발을 하면 성과가 나기 쉽지 않다”고 했다. 안 전무는 “해외와 비교해도 우리의 원천기술이 취약하다.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재범 SK하이닉스 R&D 담당은 “고객이 요구한 메모리를 공급하고 평가 시 문제가 발견되면 빠르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러려면 연구원의 시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준비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손우목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위원장은 “장시간 노동이 혁신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숙련된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며 “노동 환경과 근로 조건을 개선하는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손 위원장은 “반도체 특별법에 담긴 52시간 예외는 노동자에게 심각한 위협”이라며 “장시간 노동자의 비중이 높은 나라일수록 자살률과 심혈관질환 발생이 높다는 조사가 이를 뒷받침한다”고 했다.
노동계가 반대 입장을 거듭 천명하면서 실제 법 개정까지는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민주노총)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법률안 폐기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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