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의 경제 읽어주는 남자] '잠재력을 깨워라 …'두 번째 한국'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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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입력 2025-02-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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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새판짜기 2025] ⑪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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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대한민국 새판짜기] ⑪ 


저성장은 위험한 게 아니다. ‘저성장에 익숙해지는 것’이 위험한 것이다. 한국 경제는 저성장에 익숙해지고 있다. ‘1%대 성장’이라는 것 역시 놀랍지도 않다. 2020년 –0.7%, 2023년 1.4%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2025년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한국은행은 1.9%로, KDI는 1.6%로 제시했다. 물론, 지금의 정치적 리스크와 대외환경 리스크가 채 반영되기 전 단계의 전망치라는 점에서 더욱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다.
 
일본식 ‘잃어버린 10년’, 한국도 진입하는가?
전쟁 직후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가, 세계에서 경제 규모 10위권 안에 우뚝 선 나라가 되었다. 무역 규모는 세계 8위 수준이고, 1인당 GDP는 식민 지배를 했던 일본을 추월할 만큼 성장했다. 세계인은 한국의 스마트폰을 쓰고, 텔레비전과 냉장고 및 에어컨으로 일상을 함께하고 있다. 심지어 한국이 만들어 놓은 도시에 거주하며, 한국의 반도체가 없이는 최고급 AI 서비스도 불가능하다. 그동안 짧은 시간 동안 고도의 성장을 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이를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라 일컫고 있다.
 
일본이 경험했던 ‘잃어버린 30년’은 통상 제로 성장을 가리킨다. 지난 30년 동안 성장이 없었던 것이다. 1992년~2023년까지 일본의 경제성장률 30년 평균치가 0.76%다. 같은 기간 세계 경제가 평균 3.48%씩 성장한 것과 비교해 보면, 사실 뒷걸음쳐 온 것이다. 결과는 혹독했다. 독식하던 산업을 다른 국가들에 모두 빼앗기고, 30년간 임금이 정체되었다. 엔화 가치는 현저히 떨어졌다. 여행을 떠나던 부자나라 일본 국민은 어느새 여행 온 주변국 손님을 정성스레 서비스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한국도 일본식 ‘잃어버린 10년’에 진입했는가? ‘잃어버린 10년’을 제로 성장이라 정의한다면, 아직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1980년대 9.7%의 잠재성장률을 유지하다가, 1990년대 7.3%, 2000년대 5.1%, 2010년대 3.0%로 내려왔다. 2020년 초에는 잠재성장률이 그나마 2.2%를 유지하는 듯했으나, 2024년 이래 2%대마저 밑도는 1.8%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추계된다. 즉, 2%를 웃도는 실질성장률을 기대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1)한 나라 안에 존재하는 노동력 및 자본 등의 모든 생산요소가 완전고용되었다고 가정할 때, 달성할 수 있는 최대의 생산량 증가율로 물가가 그대로일 때 달성 가능한 최대의 경제성장률이다. 이를 통해 한 나라의 경제성장이 얼마나 가능한지 예측할 수 있고 정부의 적정 성장 목표 설정 등 거시경제 정책 수립 시에도 활용된다. 실질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상회하는 경우는 경기가 과열되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며, 잠재성장률보다 낮은 경우에는 경기가 침체하여 자연실업률보다 실업률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한국 잠재성장률 추정

자료  한국경제산업연구원
 주1  잠재성장률은 잠재성장률은 HP필터링 방법을 사용하여 추정
 주2  실질성장률 추이는 한국은행 국민계정 자료이고 20232028년 전망치는 IMF 자료임
자료 : 한국경제산업연구원
주1 : 잠재성장률은 HP필터링 방법을 사용하여 추정
주2 : 실질성장률 추이는 한국은행 국민계정 자료이고, 2023~2028년 전망치는 IMF 자료임.


 















두 번째 한국, 구조적 변화의 서막
새판을 짜야 한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수식어를 이어받을 수 있다. 이대로 지켜만 본다면, 좋든 싫든 수용하게 될지도 모른다. 2025년은 21세기의 4분의 1을 마감하는 의미 있는 해다. 한 해로 치면, 마치 1분기와 같다. 100년에 대한 그림을 그리는데 지나온 1분기를 회고하고, 남은 3개의 분기에 대한 철저한 계획을 세워야 하는 시점이다. 다만 그 계획은 리모델링이나 인테리어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재설계해야 한다. 구조적인 변화를 이뤄야만 한다.
 
첫째, 신산업으로의 탈바꿈이 필요하다. 즉, 산업구조를 개편해야 한다. 산업 패러다임 변화를 읽고, 미래 산업을 쟁취해야 한다. 어쩌면 공식이 간단하다. 경제성장률이 1%라는 이야기는 모든 산업의 (가중)평균 성장률이 1%라는 뜻이다. 지는 산업은 0% 혹은 마이너스 성장을 하겠지만, 미래 유망산업들은 5%, 10% 이상 성장하기도 한다. 전통산업에 대한 질서 있는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유망산업 중심으로 사업재편을 유도해야 한다. 물론, 유망산업들은 세계 열강들이 모두가 관심 갖고 눈독 들이고 있다. 광범위한 영역에서 모두 다 잘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그중에서도 한국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세분된 부문을 찾고,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특화된 기술력을 쟁취해야 한다.
 
둘째, 스타트업 지구를 조성해야 한다. 저성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유니콘 기업이 등장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스타트업을 육성해야 한다. 자라나는 싹이 없는데, 어떻게 나무를 기대하고, 어떻게 과실을 상상할 수 있는가? 혁신적인 아이디어나 기술 잠재력이 있지만, 자금력이 충분치 못한 경우가 많다. 경력이 없는 인재가 어떻게 경력을 갖추고, 매출이 없는 신생기업이 어떻게 매출을 증빙할 수 있는가? 잠재력 있는 스타트업들이 충분히 도전하고, 작은 성공을 경험하며, 때론 실패라는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유연한 펀딩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겠다. 한편, 한국의 기존 규제 환경에는 맞지 않는 미래 지향적 아이디어를 갖는 경우도 많다. 잠재력 있는 신생기업들을 선별적으로 유치하여, 유연한 펀딩과 규제 없는 환경을 제공하는 스타트업 지구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셋째, 흔들리지 않는 수출구조 개편이 필요하다. 대외 무역환경이 불안해질 때마다 한국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특히, 2025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장벽을 높이고, 중국 등의 상대국들도 맞대응하고 있는 모습이다. 미·중 간의 무역환경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양국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극단적으로 높다. 2024년 연간 수출액을 기준으로 한국의 대중 및 대미 수출의존도는 각각 19.5%, 18.7%에 달한다. 특히, 대중국 수출액의 약 79%가 중간재다. 소비재(자동차, 휴대폰 등의 완제품)가 아니라, 원자재(철강, 고무, 유리 등)와 자본재(기계, 장비, 부품 등)를 수출하는 구조다. 즉, 중국에 제조기지를 두고 부품을 수출해 완제품을 생산하여 미국 등으로 우회 수출하는 구조다.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등의 중국을 대체할 수출 대상국을 중심으로 수출의존도를 높여 나간다면, 무역구조의 안정성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중소·중견기업들의 우수제품들을 발굴해 현지에 특화된 상품으로 맞춤화하고, 현지 바이어와의 매칭을 지원해주며, 신시장을 진출할 수 있도록 하는 유망 시장 진출을 지원해주는 정책들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의 10대 수출대상국별 수출액과 비중
자료  한국무역협회
   주  2024년 연간 수출액 기준임
자료 : 한국무역협회
   주 : 2024년 연간 수출액 기준임.


















넷째, ‘자원영토’를 확장해야 한다. 한국은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지만, 세계에서 8번째로 많은 석유를 소비하고 있다. 그 밖에도 많은 원자재를 수입하는 국가다. 수출 대국이면서, 수입 대국이다. 세계는 지경학적 분절화(Geoeconomic Fragmentation)가 진행되고 있다. 지정학적 그리고 경제적인 이유로 세계화(globalization)에 역행하면서, 이념이나 비즈니스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같은 나라들끼리 블록(block)을 형성하고 있다. 적대 국가에 공동으로 경제제재(economic sanction)를 가하거나, 전략 자원 공급을 차단하는 등의 움직임이 있다. 한국은 대외 무역의존도만 높은 게 아니라, 대외 자원의존도도 높으므로, 이러한 지정학적 움직임에 매우 취약하다고 평가받는다. 기업들의 해외자원개발사업을 독려하고, 주요 신흥국들로부터 자원 개발권, 채굴권, 판매권을 확보해야만 한다. 자원 수급이 흔들리면, 경제뿐만 아니라 안보도 흔들린다. 해외로부터 안정적으로 자원을 조달받을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등의 실리적 자원외교를 강화해야 할 때다.
 
다섯째, ‘전 인구의 인재화’를 추진해야 한다. 대외적으로도 굽이굽이 산들이 놓여 있지만, 대내적으로 넘어야만 할 ‘큰 산’ 인구구조변화에 당면한 상황이다. 노동인구가 감소해도, 한명 한명의 생산성을 증대시킨다면, 총생산량이 늘어날 수 있다. 노동력이 고부가가치화되고, 인력이 인재화되어야 한다. 세계는 AI와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기술 패권전쟁에 돌입했고, 패권 국가들은 누가 더 훌륭한 기술인재를 확보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몇몇 나라들은 기술인재를 불법적으로 약탈하고도 있다. 특정 영역의 특화된 인재들을 양성하는 방향으로의 교육구조로 재편하고, 기술인재들에 더 많은 보상이 돌아가도록 하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대학 학과도 미래 산업, 미래 기술 중심으로 재편하고, 저명한 석학들과 기술인재들을 초청해 활발한 기술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육 예산과 R&D 예산은 구조 개편의 동력으로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가파른 오르막을 지나면, 필연적으로 가파른 내리막을 만나야만 하는가? 내려갈 때 내려가더라도 긴 능선을 찾아야 하지 않는가? 오르막을 지나, 다른 오르막을 찾아 나서야 하지 않는가? 세대 간, 지역 간, 이념 간의 갈등이 격화하는 상황이다. 서로 다른 대상을 공격하고 헐뜯는 싸움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놓고 싸워야 한다. 어려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단기적으로 만난 돌풍을 회피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다른 대한민국, ‘두 번째 한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고민을 집중할 때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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