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낙인 26대 서울대 총장]
[2025 대한민국 새판짜기 2] ③

탄핵심판은 두 개의 모델로 나뉜다. 미국식 민주주의 모델은 하원에서 소추하고 상원에서 의결한다. 사법부가 개입하지 않는다. 독일식 입헌주의 모델은 의회가 소추하고 연방헌법재판소가 심판한다. 하지만 미국이나 독일 모두 역사상 대통령이나 총리가 탄핵된 사례가 없다. 그만큼 탄핵제도는 예외적·비정상적 상황에 대비한 제도임을 역사가 증명한다. 그런데 78년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대통령이 세 번이나 탄핵당하였다. 안타깝고 수치스럽다. 남미나 아프리카에서도 볼 수 없는 헌정 파탄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 생각지도 못했던 대통령 탄핵이 1987년 민주화 이후에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서 정상적으로 작동한 점이 유일한 위안거리다. 그간 헌법재판소는 한국적 자유민주주의를 정립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는 점에서 산업화와 민주화에 이어 제3세계 국가에 훌륭한 수출품이라고 자부하여왔다. 정치적 소용돌이에 휩싸였던 그 헌재가 “자유민주주의를 향한 여정”에 새 장을 열었다.
노무현·박근혜 대통령 탄핵 일정을 훨씬 뛰어넘는 111일의 긴 여정이었다. 그만큼 논란도 많았다. 대행의 대행 체제에서 다시 권한대행 체제다. 국가원수의 부재 상태에서 정상적 헌정 운용은 불가능하다. 탄핵을 촉발한 것은 비상계엄 선포다. 그런 점에서 탄핵심판은 비상계엄과 그에 따른 일련의 조치가 핵심이다. 대통령의 국가긴급권 발령에 대한 사법심사 가능성과 그 한계, 두 번의 선례가 있는 대통령 탄핵이 참고 사례다. 그런데 노무현 탄핵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이고, 박근혜 탄핵의 핵심은 부정부패다. 윤석열 탄핵은 국가긴급권 발동에서 비롯되어 사안의 실체가 다르다.
무엇보다 헌법재판관들의 노고는 역사에 길이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옥에도 티가 있는 법, 진행 과정과 논증에 대하여 소추인·피소추인 또는 재판관의 입장에서 소회를 피력한다. 첫째, 필자가 재판관이었다면 인용 결정문은 쉽게 작성할 수 있겠지만 기각은 논리 전개에서 심각한 한계에 봉착했을 것이다. 오랜 심리 후 각하는 더욱더 불가능하다. 그만큼 탄핵은 인용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방증한다. 그럼에도 헌재가 일부 논점에서 보충의견이 제시되었을 뿐 개별 논점에서도 반대 의견 부재는 아쉬움을 남긴다. 앞선 두 대통령 사건에서 개별 논점에서는 사실상 반대 의견이 제시되었다. 오랜 평의 과정에서 많은 논쟁이 불붙을 터인데도 전원 일치(8:0)로 헌재의 정치적 평화와 사회적 통합 기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국무총리(인용 1:기각 5:각하 2)·방통위원장(인용 4, 기각 4) 탄핵에서는 극단적인 대립을 표출했다. 하지만 대통령 탄핵에서는 결정문 곳곳에 국회 다수파에 대해 비판을 가하면서도 온갖 억측을 뛰어넘어 극적으로 승화시켰다.
둘째, 무엇보다 쟁점을 단순화하지 못했고, 사실관계와 법리관계 판단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비상계엄 선포와 포고령 1호 발령 이외에 국회 군경 투입·중앙선관위 압수수색 시도·정관계 인사 및 법조인 위치 확인 시도 등은 각기 별개의 주요 논점이 아니라 비상계엄령과 포고령을 현실적으로 구현한 구체적 사실 확인에 불과하다. 탄핵을 촉발한 비상계엄에 모든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나머지 사항은 비상계엄에 따른 부수적인 쟁점일 뿐이다. 헌재는 설립 초기에 청구인이 주장하는 모든 쟁점에 대하여 일일이 판단하였다. 하지만 이는 불필요한 시간과 노력의 낭비이므로 이제 경합이론에 따라 당해 사안에서 꼭 필요한 핵심적인 쟁점만 판단한다. 물론 탄핵심판이 위헌법률심판과 같을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모든 쟁점을 다 판단할 필요는 없다. 또 판단하더라도 최소한에 그쳐도 그만이다. 부수사항에 대한 판단이 자칫 판단의 몸체를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실체적 요건인 비상계엄령의 법적 성격, 헌법상 요구되는 요건을 실질적으로 충족하는지 여부에 관한 논쟁이다. 헌법이 명시한 국가원수의 국가긴급권 발동은 이른바 통치행위이다. 그러나 통치행위라고 하더라도 헌법이 요구하는 실체적 요건을 갖추었는지 여부에 관한 판단은 헌재의 몫이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발령한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경제명령’에 대한 위헌확인 사건이 참조 대상이지만 이는 경제 문제에 한정된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헌재는 헌법 제76조의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라는 요건을 매우 느슨하게 판단한다. 즉 긴급한 시기에 '목적을 달할 수 없는 경우에 이를 사후적으로 수습함으로써 기존 질서를 유지·회복하기 위하여' 위기의 직접적 원인의 제거에 필수불가결한 '최소의 한도 내에서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행사'되었다고 판시한다. 이 사건에서 헌재는 통치행위와 헌법상 요건에 대한 사법심사의 조화를 도모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입장에서는 비상계엄 발령을 통치행위론에 입각하여 이를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 점 헌재가 통치행위에 대한 사법심사의 강도, 즉 엄격심사냐 완화심사냐 등에 대한 설시가 빈약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비상계엄의 실체적 발령요건인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대하여 헌재는 '객관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의 위기 상황이 계엄 선포 당시 존재하였다고 볼 수 없고' '국회의 권한 행사로 인한 국정 마비 상태나 부정선거 의혹은 정치적·제도적·사법적 수단을 통하여 해결하여야 할 문제이지 병력을 동원하여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판시할 뿐이다.
다섯째, 비상계엄령에 따라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1호가 발령되었다. 비상계엄은 경비계엄보다 제한이 훨씬 더 심각한 데도 비상계엄지역 및 계엄사령관을 적시에 발표하지 않았다. 포고령은 비상계엄령과 달리 엄격히 헌법과 법률 위배 여부에 대한 사법심사의 대상이다. 제1조는 국회의 정치활동을 금한다.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헌법 제77조 제3항). 그러나 국회의 권한에 대하여는 어떠한 제한도 불가능하므로 포고령의 위헌성은 불가역적이다. 또한 계엄은 '병력으로써' 한다. 군대가 국회에 진입하여 국회의 정상적인 기능에 제한을 가한 점은 명백하고 객관적 사실이다.
여섯째, 심리 과정에서 진행 절차의 성숙성과 실체 판단에도 여운이 남는다. 증인심문절차도 조급하게 진행되었고, 심지어 초시계까지 동원되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탄핵소추의 또 다른 몸통은 내란죄다. 내란죄의 성립 여부는 법원의 재판 결과에 따라 최종적으로 결정된다. 헌재는 심리 과정에서 소추인과의 합의에 따라 내란죄 부분은 배제하였지만 보다 더 신중하게 대응했어야 한다. 정작 헌재는 실질적으로 내란 혐의를 판단하고 사실상 이를 인정한다. 그와 관련된 구체적인 사항의 하나인 군대의 중앙선관위 진입은 명백한 사실이다. 비상계엄 발령 이유 중 하나인 소위 ‘선거부정’은 SNS에 떠도는 유언비어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이미 법원의 최종 판결로 결론이 난 사안이다. 문제는 정·관계 주요 인사 및 법관에 대한 위치 확인을 실체적 진실로 인정한다. 하지만 이는 서로의 주장이 상반되는 사항이기 때문에 굳이 판단할 필요가 없다. 개정 형사소송법의 적용 여부, 전문 법칙의 엄격한 적용 여부 등 불필요한 논쟁은 피했어야 한다. 탄핵심판은 형사재판이 아니다. 또한 대통령 측 주장에 대하여 여섯 차례에 걸쳐서 '믿기 어렵다'면서 특전사령관 등의 증언에 명확한 신뢰를 보인다. 국회도 법제사법위원회의 조사 절차를 거쳐서 좀 더 진중하게 탄핵소수사유를 정리했어야 마땅하다. 탄핵소추안의 반복 발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보충 의견은 존중되어야 한다. 심지어 1차 소추사유에서 가치외교까지 거론된 것은 두고두고 논란거리를 자초한다.
일곱째, '경고성·호소형 계엄'이라는 대통령의 주장은 철저하게 배척되었다. 헌재는 '군경을 동원해 국회 등 헌법기관을 훼손하고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해 헌법 수호 의무를 저버렸다'며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행위'라고 판시한다. 박근혜 사건에서 '국민의 신임을 배반'하였다는 표현이 다시 등장한다. 우리 헌법은 민주공화국에서 주권재민의 '국민주권주의'를 법적·이념적 기초로 한다(제1조). 그런 점에서 '국민의 신임 배반'이라는 비법적인 표현보다는 '국민주권주의 원리에 어긋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더 나아가 우리가 추구하는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임을 분명히 했으면 더 좋았겠다.
여덟째, 탄핵, 특히 대통령 탄핵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도 필요하다. 탄핵소추만 되면 무조건 직무가 정지되어야 하는지, 탄핵심판이 다른 심판과 마찬가지로 180일까지 가야 하는지 등. 헌정 불안 해소는 빠를수록 좋다. 집중심리로 90일 이내에 종결해야 한다. 탄핵 과정에서 헌법재판관 임명 문제가 법적·정치적 논란이 되었다. 고위공직자 인사에 정당의 개입은 바람직하지 않다. 헌재재판관도 독일식으로 의회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임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탄핵 초기에 국민의 지지가 80%에 이르다가 찬탄 50%대 반탄 30%대로 국론이 양극화되었다. 다행히 결정 이후 승복하는 성숙한 민주시민의식을 보여준다.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다. 이제 위대한 대한민국을 위해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탄핵으로 야기된 소모적 논란과 분열을 국민통합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탄핵의 강을 넘어 더 이상 상대방을 악마화해서는 안 된다.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용서하고 아량을 베풀자.' 대통령의 딸에서 날개 없는 추락,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공정과 상식'의 몰락은 대통령제의 숙명인가? 박근혜 수사팀의 침몰은 새옹지마(塞翁之馬) 같은 업보(業報)인가? 지금이야말로 국가원수 탄핵이라는 오욕의 역사를 청산하기 위해 권력의 균형과 절제를 구현하는 개헌의 최적기다. 헌정 파탄을 초래한 대통령의 파면과 더불어 국회 다수파의 독주에 대하여 '소수의견을 존중하고 정부와의 관계에서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결론을 도출하도록 노력하였어야 한다'는 판시는 새 헌법의 핵심 덕목이어야 한다. 대통령과 국회가 권력을 함께하는 '나눔의 미학'을 구현하는 헌법만이 대한민국을 구원할 유일한 타개책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의 대선‧개헌 동시투표 제안은 헌정 회복과 안정을 위한 나침반이다.
필자 주요 이력
▷파리2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 ▷한국공법학회 회장(2005~2007년) ▷한국법학교수회 회장(2009년 1월~2012년 12월)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2010~2013년) ▷동아시아연구중심대학협의회 의장 ▷제26대 서울대 총장(2014년 7월~2018년 7월)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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