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3년 만에 다시 치뤄진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후보가 제21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대일 외교의 향방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인 올해, 새로 탄생한 진보 정권 하의 한일 관계는 어떤 모습일까. 일본에서 40년 이상 한국 정치와 한일 관계, 남북 관계 등 한반도 지역 연구에 정진해 온 한일 관계 전문가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65) 도쿄대 특임연구원(전 교수)에게 서면 인터뷰를 통해 전망을 물었다. 다음은 기미야 특임연구원과의 일문일답.
아주경제: 이재명 대통령은 당선 직후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국가 간 신뢰와 현실을 고려해 현행 방침을 유지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선거 기간 중 발표한 외교·안보 정책문서에서도 일본을 중요한 협력 파트너로 명시하며 실용적인 외교 자세를 강조했다. 이 대통령의 대일 외교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기미야 특임연구원: 기본적으로는 윤석열 외교를 계승하는 것이 기본이 될 것이라 본다. 물론 진보 진영에서는 (윤 정권의 외교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 비판이 있다. 예를 들어 남북 관계를 필요 이상으로 긴장시켰다거나 중·러와의 관계 악화를 불러왔다는 점, 또한 일본과의 관계에서도 일방적으로 양보했다는 등의 지적이 있다. 그러나 2018년 당시 문재인 정권의 외교는 이후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가속과 북한판 ‘두 개의 코리아 정책’, 미·중 대립의 심화 및 구조화 등 주변 정세 변화로 인해 현실적 기반을 상실했다고 본다. 때문에 윤석열 정권이 보여준 외교 전환은 지도자의 교체로 인한 것이라기보다는 전략 환경의 큰 변화에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러한 전략 환경 속에서 이념이나 가치관보다 경제적 이익을 중심으로 한 국익 기반의 실용 외교를 내세우고 있는 만큼, 윤석열 외교와의 연속성을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주경제: 이시바 총리는 4일, 이재명 대통령의 당선 축하와 함께 올해가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과거 이 대통령의 일본에 대한 비판적 발언에 대해서도 “한국 내에도 다양한 여론이 있다”, “이 대통령은 일본을 좋아한다고도 말했다”고 이해를 표했다. 역사 인식 면에 있어 유연하다고 평가받는 이시바 총리와 이 대통령 사이에서 올해 어떠한 형태로든 관계 진전을 기대할 수 있을까.
기미야 특임연구원: 올해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이다. 아마도 6월(22일 한일 수교일)에 주한일본대사관 기념 행사에 이재명 대통령도 어떤 형태로든 참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비록 상반기에는 한국 내 정치 혼란으로 한일 정부 간 제대로 된 행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하반기에는 60주년을 기념하는 가시적인 조치가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이미 한일 간 상호 입국 심사 간소화 조치 등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상징적인 의미에서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 계기 ‘한일 공동선언’과 같은 것을 검토해 봐도 좋지 않을까.
구체적으로는 ① 역사 문제에 있어서는 적어도 지금까지 양국 정부 간에 축적된 성과를 확인하고, ② 1998년 한일 파트너십 선언 당시와는 달리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미중 관계 변화 등 새로운 전략 환경에 대응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③ 정부 간·재계 간 관계뿐 아니라 지방 정부 간 관계, 시민사회 간 교류, 사회·문화 관계로 확대된 풍부해진 한일 관계를 확인하는 것, 이러한 세 가지 축을 담은 공동선언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주경제: 이재명 대통령은 합리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지닌 정치인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한국 내 정치 상황에 따라 일본에 대한 태도를 쉽게 바꿀 가능성도 거론된다. 실제로 일본 내에서는 이같은 우려가 강하다.
기미야 특임연구원: 역사 문제를 상대적으로 중시하는 진보 진영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 정부와 사회의 역사 인식에 대해 불만을 가질 수 있다. 특히 윤석열 정권이 일방적으로 양보하면서까지 강제징용 판결 문제의 해결을 모색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기업들은 재단 기금에 전혀 기부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한국이 컵에 절반의 물을 채웠지만 일본은 나머지 절반을 채워주지 않았다”는 불만이 사회 전반, 특히 진보 진영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같은 불만을 달래기 위해 자발적인 형태로 일본 기업이나 경제 단체 등이 출자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일본 정부도 한일 관계가 일본 외교뿐만 아니라 한국 외교에 있어서도 중요하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강조해야 한다. 한국 경제에 있어 일본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것을 수치로 제시하면서 이재명 정권의 ‘실용 외교’에 어필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고 본다.
아주경제: 이재명 대통령은 일본에서 ‘반일’ 이미지가 강하다. 실제 일본 젊은 세대를 만나보면 한류를 통한 한일 교류가 이처럼 활발해진 가운데 ‘반일’ 이미지 대통령이 당선된 데 대해 불안해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기미야 특임연구원: 먼저, 한국 정권을 ‘친일’, ‘반일’이라고 하는 ‘편리하고 단순한’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것은 이제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 이같은 프레임으로 한국을 바라보면 마치 한국을 다 아는 것처럼 느껴진다. 매우 안이한 접근이라고 본다. 이제는 보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필요가 있다.
둘째,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 한일관계가 좋아지고, 진보 정권이 들어서면 한일관계가 나빠진다’는 말은 과연 진실일까. 물론 최근의 문재인 정권과 윤석열 정권의 사례만을 놓고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셋째, 당연하지만 일본은 한국의 정권을 선택할 수가 없다. 이번 일련의 사태를 겪은 후 한국 보수 정당이 제대로 재건된다는 전제 하에서 말하면, 현재 한국은 양당제 하에서 정권 교체가 이미 일반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의 정권 교체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한국 국민이 선택한 어떤 정권과도 확고한 외교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시각에서 지혜를 모으고 고민해 가야 한다. 일본은 미국의 정권 교체에 대해서는 이와 같은 자세로 임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왜 한국에 대해서만 그렇게 하지 않는 걸까. 못할 이유가 없다. 만약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일본의 ‘응석’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넷째,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정권에 대해 일본에서는 ‘반일’, ‘반미’, ‘친중’ ‘친북’이라는 프레임이 있었다. 물론 문재인 후보는 선거운동 기간 때부터 2015년 말에 이뤄진 위안부 합의를 비판한 바 있다. 다만 이는 보수 진영을 포함해 모든 후보들이 했던 일이다. 그리고 문 정권은 실제 그 합의를 파기하지는 않았다.
다섯째, 한국 정치는 지금 양극화 문제로 보수는 진보를 헐뜯고, 진보는 보수를 헐뜯고 있다. 그런데 이같은 한국 내 정치 갈등을 일본에서까지 확대·재생산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일까. 한국의 정치적 양극화에 과도하게 영향을 받지 말고, 한국의 정치, 외교, 사회, 경제 등을 차분하게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주경제: 이 대통령 및 측근의 일본 정·재계와의 인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기미야 특임연구원: 이 부분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대통령과 비슷한 세대의 한국인 가운데 일본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사람이 원래부터 그렇게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차근차근 쌓아 나갈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은 지방자치단체장 출신인 만큼 이와 관련된 네트워크가 있다면 그것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물론 성남 시장의 경우 네트워크가 그다지 넓지 않을 수도 있겠다.
아주경제: 선거운동 기간 중 이재명 후보의 연설을 직접 보시고 “나름의 정치철학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씀하신 것이 인상 깊었다.
기미야 특임연구원: “국민이 주인이고 정치인은 도구일 뿐이다”, “정당은 party이기 때문에 나뉘는 것이 당연하지만, 주인인 국민이 분열되어서는 안 된다. 정당이 국민을 분열시키려는 것은 잘못된 것”과 같은 인식은 정치학자로서 보기에도 매우 중요한 정치철학적 발언이라고 생각했다. 즉, 어떻게 통합을 이룰 것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논의를 하고 있다고 본다.
아주경제: 이재명 대통령은 최다 득표로 당선되었지만 득표율은 50%에 미치지 못했고 김문수 후보와 이준석 후보의 득표를 합하면 이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은 유권자가 약 절반에 달한다. 이러한 선거 결과가 정권 운영에 미칠 영향은.
기미야 특임연구원: 이번 선거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이라는 비정상적인 상황에 마침표를 찍는 선거였던 만큼 과반을 얻고 싶었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사법 리스크’와 ‘독재 비판 리스크’를 안고 있는데, 이 두 가지 리스크는 서로 상충된다. 즉, ‘사법 리스크’를 해소하려고 하면 ‘독재 비판 리스크’가 커지고, ‘독재 비판 리스크’를 고려하면 ‘사법 리스크’는 해소되지 않는 구조다. 이러한 점이 국민들로부터 과반 지지를 받지 못한 이유가 아닐까.
이 대통령은 두 리스크가 시너지를 내며 커지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자세를 낮춘 로우키(low key)로 사법에 과도하게 개입하지 않도록 하여 ‘독재 비판 리스크’를 억제하고, 동시에 ‘사법 리스크’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사법기관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물론 한국의 경우 사법부가 정치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측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큰 표 차로 승리한 대통령에게 사법부 스스로가 사법 리스크를 더욱 증폭시키는 일은 하지도, 할 수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65) 일본 도쿄대 특임연구원
1996년부터 도쿄대 종합문화연구과에서 정치학 및 한반도 지역문화 교육・연구에 몸담았으며 도쿄대 한국학 연구센터 설립・운영에 공헌했다. 2025년 3월 퇴임 후 현재는 동 연구센터 특임연구원으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연구 성과로『박정희 정부의 선택 : 1960년대 수출지향형 공업화와 냉전 체제』,『한일 관계사』(오히라 마사요시 상 수상)를 비롯한 다수의 저서가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