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중국은 천안문 광장을 가득 메운 자전거 행렬로 상징됐다. 그러나 현재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중국산 전기차’다. 중국 전기차 기업들은 가성비 폭격으로 한국을 포함한 세계 자동차 시장을 빠르게 공략하고 있다. 비야디(BYD)가 올해 1월 한국 시장에 상륙하며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자, 다른 중국 전기차 기업들도 한국 진출을 위한 채비로 분주하다.
“도대체 중국은 어떻게 전기차 강국이 된 걸까?”
책 <중국 전기차가 온다>(글항아리)를 보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중국 자동차 산업의 산 증인인 저자 먀오웨이는 2010년부터 10년간 공업정보화부 장관을 역임하며 신에너지차 정책을 진두지휘했다. 그는 “신에너지차라는 새로운 트랙을 택해 과감하게 신에너지차를 국가 전략으로 확정하고 발전을 추진했다”며 "직진 차선에서 추월하려면 차선을 바꿔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레인을 바꿔 경주하다’는 책의 원제가 보여주듯, 저자는 중국이 기존 내연기관차 중심의 차로에서 벗어나 신에너지차라는 새 레인으로 이동해 승부를 본 전략이 중국 전기차의 질주로 이어졌다고 분석한다.
<중국 전기차가 온다>는 중국 당국이 전기차 산업의 판을 어떻게 깔았는지를 비롯해 중국 고위 당국자들이 신기술 경쟁을 바라보는 시각 등을 엿볼 수 있다. 전기차 시장 초기에 펼친 정부 주도 및 과감한 투자 전략이 결실을 본 만큼, 중국 당국은 앞으로 인공지능(AI) 등 주요 신기술 분야에도 이러한 성장 전략을 적용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지금도 또 다른 ‘차선 변경’을 준비하고 있다.
넉넉한 보조금 덕에 연구실서 도로 위로
중국 정부는 신에너지차 산업 육성을 위해 대규모 보조금 정책을 펼쳤다. 정부 주도로 첫발을 뗀 시장은 이후 민간 기업의 참여를 끌어내며 ‘쌍끌이 성장’ 구도를 형성했다. 현재는 자동차 기업들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며 생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저자는 이러한 신에너지차 성장 과정을 대략 3단계로 나눴다. 1단계 신에너지차 보급 (2009~2012년 말), 2단계 제품 성장기(2013~2015년 말), 3단계 고속 성장 단계(2016~2022년 말) 등이다. 2023년부터는 보조금 지급이 끝나며, 주요 연구개발 투자는 기업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중국은 신에너지차를 국가 전략에 가장 먼저 포함한 나라다. 저자는 이 책에서 구체적인 보조금 지급 규모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으나, 중국 정부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부터 신에너지차 구입에 보조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당시 올림픽 행사용 차량은 모두 신에너지차였다. 덕분에 신에너지차들은 연구실을 벗어나 도로 위를 달릴 수 있었고, 기업들은 신에너지 자동차를 판매하면서 소비자들에게 차량 품질에 대한 피드백을 얻을 수 있었다.
베이징 올림픽의 전략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특히 중국 당국은 2009년 ‘10개 도시 1000대의 차량’을 통해 신에너지차 보급에 열을 올렸다. 소비자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해 신에너지차가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었다.
현장 시찰에 근거한 전략 설정
중국 당국이 신에너지차를 꾸준히 지원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중국 특유의 정치 체제도 영향을 미쳤다. 2013년 정부 주도의 시장 육성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시장 주도로 전환할 것인가 등을 두고 갈등이 일었으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말 한마디가 갈등을 잠재웠다. 시 주석은 2014년 상하이자동차를 시찰하면서 “신에너지차 발전은 중국이 자동차 대국에서 자동차 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길이다”라고 선포했다. 이후 보조금에 대한 반대 여론은 잦아들고 중국의 신에너지차 발전은 고속 차선에 들어서게 된다.주목할 점은 중국 당국이 전략을 세울 때 현장 시찰을 중시했다는 것이다. 공업정보화부는 '친환경 및 신에너지차 산업 발전 규획(2012~2020, 이하 규획)’을 제정했는데, 당시 공업정보화부 고위급 인사들은 광둥, 저장, 상하이 등 현장을 직접 방문해 수차례 특별 조사를 실시했다. 또한 외국자동차 기업들이 기술을 선점하고 있는 하이브리드차는 신에너지차에서 제외하는 등 국가 상황에 적합한 개발 경로를 택했다.
저자는 향후 후반전은 스마트커넥티드카를 둘러쌀 것으로 전망하면서 차량용 반도체와 기초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말한다. 이를 통해 중국 당국의 향후 행보 등을 가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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