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노 칼럼] 대미 통상협상은 한일전이 아니다 

이학노 동국대 명예교수국제통상학
[이학노 동국대 명예교수(국제통상학)]


미국이 협상 시한으로 제시한 8월 1일까지 사흘 남았다. 한·미 양국은 마지막 날까지 협상을 계속한다고 한다. 일본은 일주일 전 협상을 마무리했다. 철강 관세율은 50%로 유지하되 자동차와 다른 품목들에 대한 관세율을 15%로 조정하는 것이 골자이다. 우리의 처지가 묘해졌다.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협상을 타결하는 바람에 졸지에 미·일 협상 결과와 비교되는 상대평가가 되었다. 수출 경쟁자이면서 역사적인 갈등 등 불편한 한·일 관계를 잘 알고 있는 미국은 한국을 압박하는 카드를 하나 더 가지게 되었다. 일본보다 안 좋은 결과를 받아 들면 한·일전 축구에서 진 것처럼 한국 협상단은 귀국 후에 엄청난 뭇매를 맞을 것이다. 우리 협상단의 맨데이트가 '적게 주고 많이 챙겨라'였겠지만 이제 '일본보다 불리하지 않게 하라'까지 추가된 셈이니 협상단의 부담만 두 배로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벌이는 통상협상은 몇 가지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 높은 관세를 불러 협상장에 끌어들이되 1)관세를 인하해 주면서 대미 투자를 유도하여 제조업 부활을 통한 위대한 미국을 재건하고 2)재정 수입 확충을 위해 일정 수준의 관세율을 확보하고 3)상대국 시장을 개방하는 전리품도 챙기고 4)코앞의 적(enemy at the gates)인 대중국 견제 라인을 형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미국은 이 목적을 위해서 무역수지 적자 타개라는 프레임을 짜고 관세 협상을 저글링(juggling)하고 있다.
 
먼저, 대비되는 한·일 양국의 상황을 보자. 한국과 일본의 대미 수출은 그간 격차가 있었으나 최근 점근하는 추세를 보인다. 오랜 기간 일본의 대미 수출은 꾸준히 높았던 반면 한국은 최근 수년간 급증하였다.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2020년까지는 200억 달러를 넘지 못하였으나 2021~2022년 200억 달러를 넘었고 2023년 400억 달러를 상회한 뒤 2024년 500억 달러를 돌파하였다. 미국 통계로 2024년 미국의 우리나라에 대한 무역수지 적자는 660억 달러이고 수입액은 1315억 달러에 이른다. 일본은 오랜 기간 연평균 대미 무역수지 흑자 규모 600억~700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었고 2024년에는 미국 통계로 미국의 대일 수입은 1482억 달러이고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685억 달러다. 그동안 일본에 비해 절반 정도였던 한국의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공교롭게도 작년에 비슷한 규모로 증가하였다. 중요한 품목인 자동차도 비슷한 양상이다. 일본의 대미 자동차 수출은 500억 달러(비중 35.6%)이고 대미 흑자의 80%가 자동차에서 나온다. 한국도 대미 흑자의 60%가 자동차에서 나온다.
 
미국의 첫 번째 지향점인 대미 투자 부분이다. 미국이 처음에 일본에 책정한 상호관세율 25%는 대일 무역수지 적자의 수입액 비율인 50%를 2분의 1만 계산하면서 나온 결과이다. 25%를 15%로 낮추기 위해서 일본은 5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였다. 작년도 미국의 한국과 일본에 대한 무역만 보면 유사한 모습이기 때문에 한국이 관세율을 일본 수준인 15%로 맞추려면 일본 정도의 투자 약속을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미국은 일본에 대해 당초 4000억 달러의 투자를 요구했다고 한다(협상 말미에 5500억 달러로 증액되었지만). 한국에 대해서도 4000억 달러의 투자를 요구했다고 하니 2024년 무역수지를 염두에 두고 제시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미국 측의 4000억 달러 제안에 대해 한국은 일본에 비해 절반에 불과했던 그간의 대미 흑자 규모를 고려하여 그 절반인 2000억~2500억 달러 규모를 최선 안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물론 한국이 언급해 온 한·미 제조업 르네상스 파트너십, 석유 등 에너지 수입액 등도 포함되어야 한다. 일본의 대미 투자 합의의 디테일과 후속 조치에 대해 미·일 양국의 해석이 갈리듯이 이 투자패키지는 실현될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점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미국의 두 번째 지향점인 재정 수입 확충을 위한 관세율은 15% 수준으로 이보다 낮아지기 어렵다. 미국이 각국과 벌인 협상 결과를 보면 상호관세율과 자동차 관세율은 15%가 마지노선인 듯하다. 영국을 제외하고 모든 나라들이 15%+α의 관세율을 받아들였다.
 
미국의 세 번째 지향점인 일부 농산물의 시장 개방 요구를 수용하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본다. 일본은 미국 쌀의 수입 확대를 약속했고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서도 한국과 달리 30개월 이상에 대한 규제가 없다. 협상을 마친 영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일본 등이 농산물 시장을 풀었다. 현재 협상대상국 중에서는 한국이 유일한 미국산 소고기 수입 제한 국가로 남아 있다. 트럼프에게는 쌀, 소고기는 실익보다 상징적인 협상 승리의 전리품이기 때문에 우리라고 예외가 되기 어렵다. 일본처럼 미국 쌀 수입을 늘리되 다른 수출국들의 수량을 줄임으로써 수입 총량을 40만8000톤으로 유지한다면 국내 수용성을 높일 수 있다. 다른 수출국들과의 협상을 두려워할 여유는 없다. 소고기의 경우 30개월 이상의 수입을 허용하고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참고하여 유통 등 후속책을 준비하여야 한다. 미국산 소고기 월령 제한을 풀더라도 우리 소비자들의 경계 심리 등 자구책이 작동할 수도 있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중국 견제 라인 동참 여부이다. 이번 관세 협상에서 명목적인 고려사항은 아니지만 내면적으로 그리고 두고두고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일본은 4국 동맹(QUAD) 참여국으로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의 축이다. 일본과 달리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난처한 상황들이 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도 남아 있다. 세계 경찰 역할을 해 온 미국은 곳곳의 전쟁과 갈등으로 인해 국방비 부담이 커지고 위협 세력에 대한 견제 역량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미국은 수출 비중이 높은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동맹의 고리를 강하게 쥐고자 압박하고 있다. 반대 사례로 영국에 대해 10만대로 차량 숫자를 제한한다고 하면서 10%의 자동차 관세율을 매기는 데에서 보듯이 믿고 보는 우방에는 비교적 관대하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선택지는 제한되어 있다. 벼랑 끝 전술로 협상 기한을 넘겨 상호관세와 자동차 관세 25%를 그대로 받고 후일을 기약하면서 돌아오는 방법도 있다. 한·미 양국 모두 부담이 되겠지만 '을'인 한국이 더 손해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따라서 앞서 말한 대로 대미 투자 2000억~2500억 달러와 쌀, 소고기 시장 개방을 통해서 일본과 대등한 협상 결과를 얻는 것이 최선이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의 관세는 동남아 국가들보다 조금 낮은 수준인 16~17%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대미 협상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수단이 통상압력과 우방국의 고통 분담을 통한 위대한 미국 만들기(make America great again)이기 때문에 제2, 제3의 협상 요구가 이어질 것이다. 협상 결과에 따라 반미 여론이 들끓을 가능성이 있다. 대안도 마땅치 않으면서 국내 정치에 활용하려는 사람들도 나올 것이다. 협상 결과에 따라 협상단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협상의 레버리지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다면 미국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협상장에서 '노(No)'라고 배짱 있게 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협상단의 선전과 극적인 반전을 기대해 본다.

이학노 필진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경제학 박사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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