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여, 우리 조국과 국민을 보살피소서/주여, 저의 가족과 벗들을 지켜주시옵소서/그리고 주여, 저에게 조국을 위해 일할 용기와 힘을 주시옵소서.
1972년 10월 22일, 일본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일기장을 펼쳤다. 그는 “앞으로 길고 고된 날들이 계속되겠지”라고 쓰며 하느님께 용기를 달라고 기도했다. 닷새 전, 그해 10월 17일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돌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회는 해산됐고, 헌법의 일부 기능도 정지됐다. 그렇게 민주주의의 숨이 멎었다.

출판사 한길사가 최근 발간한 <김대중 망명일기>에는 10·17 비상계엄령 선포에 대항해 죽음을 각오하고 유신운동에 맞서 싸웠던 민주주의자 김대중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의 육신은 조국을 떠나있었으나,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조국을 지켰다. 그는 미국과 일본에 “한국의 민주화가 반공과 안정을 원하는 미국과 일본의 이익에 부합한다”며 정책 전환을 촉구한다. 또한 공산주의도 확고히 반대했다. 일부 주변 인사들의 중국 방문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다.
또한 이 책에는 인간 김대중의 모습도 담겨 있다. 특히 매일매일 작성한 일기 곳곳에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그가 조국과 국민, 가족과 벗을 위해 바치는 절절한 기도문을 비롯해 폭주하는 독재정권에 맞서 싸울 지혜와 용기를 갈구하는 기도문들을 볼 수 있다.

떠나있었으나, 누구보다 치열하게 조국 지켰다
<김대중 망명일기>는 김대중 대통령이 1972년 8월 3일부터 1973년 5월 11일까지 자필로 쓴 일기 223편을 엮은 것이다. 이희호 여사 서거 후 동교동 자택의 서재에서 유품을 정리하다가 나온 6권의 작은 수첩에 작성된 것들이다.비상계엄 당시 일본과 미국은 한국 상황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국민 다수는 유신에 반대하는 목소리조차 못 내던 상황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나는 조국과 나의 사랑하는 동포를 위해서 싸우다 쓰러진 패자는 될망정 독재와 불의 속에 영화를 누리는 승자의 길은 택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다짐하며 독재정권에 맞서는 고독한 싸움을 이어간다.

그는 자신의 투쟁이 가족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국민을 먼저 생각한다. “이런 일을 하면 나의 신변이 위험해지겠지만 나나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 나에게 그토록 성원을 보내준 국민을 배신할 수는 없지 않은가. 떳떳하게 소신껏 나의 경애하는 국민을 위해 살다 죽을 뿐이다. 일의 성패는 천주님께 맡길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들(가족)에게도 점차 무서운 박해가 가해지겠지.” (1972년 10월 19일 일기)
그는 “주여, 저의 매일이 더욱 국민을 위해 보람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등의 기도를 통해 용기를 얻으며 인터뷰, 성명, 연설 등을 통해 '박정희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정권 연장욕의 소산'이라는 소신을 밝히는 걸 멈추지 않았다.

자기 승화…국가 발전 정책 고민
박명림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장(연세대 교수·정치학)은 “김대중에게 망명은 피정을 의미했다”고 한다. “망명지라는 새 세계로 온전한 마음으로 들어와, 홀로 머물렀다가, 다른 사람이 되어 나가는 일종의 귀소를 위한 자기 승화의 과정이었는지 모른다."실제 김대중 대통령은 힘겨운 시간 속에서도 집권 시 국정운영 방향 등을 고민한다. “일단 집권하면 대중의 생활을 향상시키고 국가의 발전을 성취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 정책은 국제, 국내의 정확한 정보와 과장 없는 숫자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입각하여 아주 실제성이 있어야 한다. 만일 여기에서 실패하면 정치가의 말로가 시작되는 것이며 민중은 이반할 것이다.” (1973년 4월 4일 일기)

‘박정희 정권은 독재정권이다’라고 쓴 미국 상원 외교위 보고서가 발표되는 등 미국에서의 활동은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한국에서는 지금 국민들 사이에 "모든 것이 김대중이 말한 대로다. 그는 영웅이요. 선각자였다"는 말이 파다하다고 한다. 천주님께서 나에게 큰일을 맡기시고자 그리고 우리 국민의 소리를 세계 자유인민들에게 알리게 하시고자 특별한 배려를 한 것이 아닐까.” (1973년 1월 10일 일기)
<김대중 망명일기>는 윤석열 정권의 내란시도, 분단체제가 계속되고 있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 깊은 울림을 준다. 1973년 2월 8일, 그는 이러한 일기를 남긴다. “박정희씨와 나의 싸움은 기필코 나의 승리다. 그가 민중을 배반 유린하고 내가 그들을 경애 봉사하는데 어찌 정의와 하늘이 나를 버릴 것인가. (중략)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성취하여 우리 국민도 세계 어느 곳을 가나 자랑스럽게 고국의 이름을 내세울 수 있도록 할 것이다. 5000만(당시 남북한 인구를 합한 숫자)이면 영국, 독일과 겨루는 대국이다. 위대한 코리아를 만들자!” (1973년 2월 8일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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