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서 생산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 부과할 반도체 관세와 관련해 이같이 말하면서, 관세 도입 배경이 '리쇼어링(Reshoring: 제조업 회귀 전략)'이라는 점을 시사했다. 미국 내 추가 투자를 압박하는 취지로 해석되는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 현지 생산 확대를 검토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6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4월 시작한 수입산 반도체에 대한 국가 안보 영향 조사 결과를 다음주 발표할 예정이다. 자동차와 함께 우리나라 2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에 어느 수준의 관세가 매겨질지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관세율이 예상치 이상일 경우 관련 업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국무역협회(무협)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미(對美) 반도체 수출액은 106억8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2023년 49억4000만 달러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인공지능(AI) 시대 호황기가 이어지면서 반도체 수출 비중이 커졌다.
업계는 관세 부담에 더해 투자 압박 가능성까지 우려하는 분위기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관세율 발표는 시작에 불과하다"며 "결국 '미국에 투자하라'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압박을 이용해 미국 내 투자를 이끌어내려는 전략인 만큼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도 미국 현지 투자 확대를 검토하는 등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다만 현재로서는 관세율과 세부 내용이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미국에 직접 수출하는 반도체만 부과할지, 제3국을 우회해 수출되는 반도체까지 부과할지 등에 따라 업계 영향은 달라질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총 408억7000만 달러(약 57조원) 규모의 미국 내 반도체 투자를 진행 중이다. 삼성전자는 내년 가동 예정인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에 총 370억 달러(약 51조원),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 고대역폭메모리(HBM) 패키징 공장 건설에 38억7000만 달러(약 5조원)를 투자할 방침이다.
삼성은 내년부터 미국 테일러 공장에서 2㎚(1㎚=10억 분의 1m) 공정으로 테슬라의 차세대 AI6 칩을 생산한다. 이를 위해 미국 파운드리 투자를 재개한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열린 2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내년 미국 테일러 공장 가동에 대비해 생산능력 투자를 올해보다 늘릴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미국 내 빅테크 기업들도 관세 직격탄을 피하기 어렵다는 관측이다. 관세 부과에 따른 반도체 가격 인상으로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부담이 커질 수 있어서다. 빅테크들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부터 고용량·고성능 메모리 반도체 구매를 늘리고 있다. 이외 대체 기업은 미국 마이크론이 유일하다.
이 같은 상황을 우려하는 미국 빅테크의 반발로 관세 부과 이후 조정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주요국 상호관세가 15%로 조정됐기에 반도체 관세는 더 높을 수 있으나 미국 빅테크 반발이 예상된다"며 "이후 트럼프 정부가 예외 조항을 넣으면서 조정해갈 수 있다"고 예상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