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이 대북 확성기 철거 작업이 완료된 지 불과 나흘 만에 전방 일부 지역에서 대남 확성기 철거에 착수했다. 이는 앞서 대남 소음방송을 중단한 데 이은 두 번째 '호응' 조치로, 냉각됐던 남북관계에 변화의 조짐이 감지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9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같은 날 오전 일부 전방 지역에서 대남 확성기 철거 작업을 시작했다. 기존에 확성기를 설치했던 약 40개 지점 중 일부는 이미 철거를 완료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전 지역에 대한 철거 여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는 것이 군 당국의 설명이다.
이번 움직임은 국방부가 지난 5일 대북 심리전 목적으로 설치했던 고정식 확성기 20여 기를 모두 철거한 데 대한 '화답'으로 풀이된다. 우리 군은 남북 간 긴장 완화를 위한 차원에서 철거 계획을 발표한 지 하루 만에 작업을 마쳤으며 관련 장비는 부대 내에 보관 중이다.
군 당국은 앞서 지난 6월 윤석열 정부 시절 북한의 대남 오물풍선 살포에 대응해 방송을 재개한 지 1년여 만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면 중단한 바 있다. 이후 북한도 약 8시간 만에 대남 소음방송을 멈추면서 우리 정부의 유화적 조치에 일정 부분 발을 맞추는 움직임을 보였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은 이러한 북한의 반응을 "이재명 정부의 능동적 조치에 대한 수동적 화답"이라고 평가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남북 간 긴장을 일정 수준에서 관리하려는 전략적 선택"이라며 북한 역시 긴장 완화에 긍정적인 입장을 시사한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북한의 철거 움직임은 한·미 연합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UFS)의 일부 훈련 조정 이후 포착돼 더욱 주목된다. 지난 7일 한국군 합참과 한미연합사령부는 오는 18일부터 28일까지 진행되는 UFS 연습 계획을 공개하며 야외기동훈련(FTX) 약 40건 중 절반가량을 다음 달로 조정했다고 밝혔다.
군은 이를 폭염으로 인한 훈련 여건 보장과 연중 균형 잡힌 연합 방위태세 유지를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지만, 일각에서는 북한의 반발을 고려한 긴장 완화 조치로 해석하고 있다. 북한은 그간 한·미 연합훈련을 '북침 전쟁 연습'이라며 강하게 비난해 왔다.
실제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달 28일 대남 담화에서 "남쪽 국경 너머에서는 침략적 성격의 대규모 합동군사연습의 연속적인 강행으로 초연이 걷힐 날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긍정적인 기류가 남북 간 대화 재개로 바로 이어지기는 다소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이재명 정부가 유화적 대북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음에도 북한이 여전히 '적대적 두 국가'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부부장은 같은 담화에서 "서울에서 어떤 정책이 수립되고 어떤 제안이 나오든 흥미가 없으며 한국과 마주 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아울러 북한은 실제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에 대해서만 반응하고 있을 뿐, 대화 채널을 복구하려는 우리 정부 시도엔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최근 동해·서해상에서 표류하다 구조된 북한 주민 6명의 송환을 위한 우리 측의 접촉 시도에도 반응하지 않았고, 인도 의사를 물은 북한 주민 시신 1구에 대해서도 아무런 회신을 주지 않았다.
양 총장은 이와 관련해 "연락 채널도 없고 대면 합의도 없다는 점에서 '선 대 선' 조치의 불확실성과 한계가 존재한다"며 "북한이 먼저 선 대 선의 선제적 조치를 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한계 봉착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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