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미 무역협상 결렬로 50%에 달하는 초고율 관세 압박을 받는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행정부가 8년 만의 최대 규모 세제 개편을 단행하며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이에 삼성, LG 등 국내 기업들을 비롯해 현지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들의 수혜가 예상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모디 행정부는 지난 16일(현지시간) 부가가치세 성격의 상품·서비스세(GST)의 대대적인 개편을 발표했다. 2017년 도입된 GST는 기존에 5%, 12%, 18%, 28% 등 네 구간으로 복잡하게 적용돼 왔다. 이번 개편으로 28% 세율이 폐지되고 가전·포장식품 등 12% 구간에 속하던 상당수 품목은 5%로 낮아질 전망이다.
따라서 이번 세제 개편으로 인해 생필품·전자제품 가격 인하 효과가 기대되는 가운데 삼성전자·LG전자·네슬레 등 글로벌 기업들이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로이터는 내다봤다.
소형차에 적용되는 28% 세율은 18%로 인하하는 방안이 거론됐다. 소형차는 휘발유 1200cc, 디젤 1500cc 미만에 길이 4m 이하인 차량을 의미한다. 로이터는 마루티스즈키, 현대차 인도법인과 타타모터스 등도 수혜가 예상된다고 전했다.
배기량이 큰 차량은 새로운 특별세율 40%를 적용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다만 한 소식통은 43~50%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40% 외에 추가 부담금을 부과할지 여부를 조율 중이라고 전했다. 배기량이 큰 차량은 현재 28% GST와 최대 22%의 추가세가 붙어 총 세율이 약 50%에 달한다. 이와 함께 건강·생명보험 보험료에 붙는 18% 세율도 5% 또는 0%까지 낮추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소식통은 로이터에 연방 재무장관이 의장을 맡고 각 주 대표들이 참여하는 GST위원회가 10월까지 최종 세율을 확정한 뒤 전국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번 조치로 소비 진작이 기대되지만 세수 감소는 불가피하다. 인도 정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회계연도 GST 총세수 2500억 달러(약 346조원) 가운데 16%가 이번 감세 대상인 세율 28%, 12% 품목에서 나왔다.
IDFC퍼스트뱅크는 이번 조치가 인도 국내총생산(GDP)을 향후 1년간 0.6% 끌어올릴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연간 200억 달러(약 27조7000억원)의 세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이번 감세가 모디 총리의 지지율 유지에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모디 총리가 이끄는 집권 인도국민당(BJP)은 이번 개편을 두고 소셜미디어(SNS) 엑스(옛 트위터)에 “세금 인하와 더 많은 절약이라는 더 밝은 선물이 모든 인도인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인도 싱크탱크 옵서버연구재단(ORF)의 라시드 키드와이 연구원은 이번 조치가 현재 약세인 주식시장 투자심리를 개선하고 오는 11월 동부 비하르주에서 중요한 주 선거를 앞둔 모디 총리에게 정치적 이익을 가져다줄 것으로 전망했다.
키드와이 연구원은 “소득세 인하가 소득세를 내는 전체 인구의 3∼4%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과 달리 GST 인하는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모디 총리가 미국의 정책으로 인해 큰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조치는 대미 무역 협상 결렬과 맞물려 있다. 인도는 미국과 다섯 차례 협상을 벌였지만, 미국산 농산물·유제품 관세 인하와 러시아산 석유 수입 문제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에 미국은 이달 초 인도에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했고 오는 27일부터 러시아산 석유 수입에 대해 추가 25% 관세를 매길 예정이다. 합산 50%의 관세율은 미국 교역 상대국 중 최고 수준이다.
이런 가운데 오는 25∼29일 예정됐던 미국 무역 협상단의 인도 뉴델리 방문이 취소되면서 단기간 내 협상 타결 가능성이 사라졌다. 이에 따라 27일부터 인도는 사실상 50% 관세 적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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