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AI 스타트업은 장기 연구개발(R&D)보다 투자 요구에 맞춘 단기 실적과 매출 압박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안정적인 매출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산업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혁신은 뒷전으로 밀리고, 데이터 부족과 인재 이탈로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는 실정이다.
이정수 플리토 대표는 21일 오후 광화문 HJ비즈니스센터에서 열린 AI 스타트업·VC 현장 간담회에서 “상장을 했지만, 다른 AI 기업들로부터 상장 문의가 오면 해외 기업에 매각을 권한다”며 “그만큼 상장 후 장기적인 R&D 투자보다는 상장사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실적 압박이 크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상장 후 AI 기업은 오히려 투자 제약을 받는다. 기관 투자자 입장에서도 상장 뒤 큰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고, 벤처투자(VC) 자체에서도 사실상 상장사에 투자하기 쉽지 않다. 증권사 역시 펀드를 통해 AI 기업에 투자하는 사례가 많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나스닥 시장에서는 AI 기업들이 상장 후 글로벌 투자자들의 투자를 받는다”며 “반면 한국은 기관들이 상장 뒤 매각하고 회사가 안정되면 다시 들어오겠다는 분위기다. 작년 일부 기관 투자자들은 플리토 주식을 전량 매각했다”고 전했다.
그는 “상장 후에는 실적 달성 등 제약 조건을 지키지 않으면 퇴출될 수 있다"며 "AI 기업들이 할 수 없이 패션, 화장품 등 다른 산업과 연계해 우선적으로 매출을 내려고 하지만 정작 스타트업에 맞게 혁신은 못이루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최근 스타트업들은 모두 AI를 테마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어 AI 투자 활성화를 위한 생태계 조성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신진오 와이앤아처 대표는 “스타트업에 AI를 붙이는 것은 이제 기본값”이라며, 예비·초기 창업자들도 AI를 활용한 사업 계획을 갖고 온다고 강조했다. “스타트업은 혁신이 본질이기 때문에 AI 활용은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AI 스타트업이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확보, 인재 유지, 투자 유연성, 정부 AI 인프라 조성 등 필수 조건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나왔다.
정지하 트립비토즈 대표는 “AI가 진화하려면 양질의 데이터를 확보해야 한다. 데이터가 없는 AI 산업은 성장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플리토 이정수 대표도 “인재가 한국에서 많이 나가고, 데이터 문제도 분명하다. 스타트업이 성장해 좋은 기업을 만든 뒤 다시 이들을 데려오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정적 매출을 위해 다른 산업과 연계하는 전략을 쓰기도 하지만, 장기적인 혁신과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황태일 글로랑 대표는 투자 관점에서 AI 기업 평가 지표의 필요성을 짚었다. 그는 “기존 지표만으로는 AI 서비스를 정확히 평가하기 어렵다. 국가 차원에서 AI 투자 지표를 마련하고 유연성을 확보해야 투자 활성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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