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대체 통행로 있어도 경작 부적합하면 주위토지통행권 인정"

사진아주경제DB
[사진=아주경제DB]

토지 주변에 다른 길이 있더라도 농업 경작에 부적합하면 주위토지통행권을 인정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통행권 인정 여부를 판단할 때 단순히 통로 유무만이 아니라 토지 이용 목적과 실제 경작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A씨가 이웃 토지 소유주 B씨를 상대로 낸 통행방해금지 및 주위토지통행권 확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20년 경기 광주시 토지(1041㎡)를 경매로 취득해 수박과 두릅 등을 재배해왔다. 문제는 해당 토지가 사방이 다른 토지에 둘러싸인 맹지였다는 점이다. A씨는 그동안 B씨 소유 토지(640㎡)를 통해 땅을 드나들었지만, B씨가 2021년 8월 자신의 토지 경계에 펜스를 설치하면서 출입이 막혔다.

A씨는 “대체 통행로가 없다”며 B씨를 상대로 펜스 철거와 통행방해금지를 청구했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대체 통행로의 존재와 실효성이다. 과거 판례는 주위토지통행권을 ‘출입이 전혀 불가능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인정해왔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단순히 길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권리를 부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토지의 실제 이용 목적, 경작 편의성, 비용 부담이 모두 판단 요소가 된 셈이다.

1심 재판부는 A씨 주장을 받아들였다. 당시 재판부는 “B씨 토지를 통하지 않으면 도로 출입이 불가능하거나 과다한 비용이 든다”며 폭 1m, 길이 35m 구간에 주위토지통행권을 인정했다.

하지만 2심 판단은 달랐다. 광주시가 하천 둑길을 조성하고 야산 경로를 통해 A씨 토지로 갈 수 있다는 이유로 1심을 뒤집고 A씨 청구를 기각했다. 2심 재판부는 “경사지나 배수로 구간을 피해 통행이 가능하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주위토지통행권은 출입이 전혀 불가능한 경우뿐 아니라 과도한 비용이 드는 경우에도 인정된다”며 2심 판결을 파기했다. 이어 “기존 통로가 있더라도 농작물 운반 등 실제 토지 이용에 부적합하면 통행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구체적 사정을 근거로 들었다. 둑길 끝 지점에서 A씨 토지까지 야산을 통과해야 하는데, 경사가 심하고 배수로로 파인 구간이 많아 농기계와 농산물 운반이 사실상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소유자의 3개 필지를 추가로 지나야 하는 점도 고려됐다. 반면 A씨가 요구한 B씨 토지 경계 통로는 피해가 가장 적고 거리도 짧다고 봤다.

특히 농기계·농자재 운반 가능성을 명시하며 “농지의 경우 단순한 보행 가능성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아울러 “원심이 주위토지통행권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향후 하급심은 대체 통로의 거리·비용뿐 아니라 경작 여건까지 종합적으로 따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