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미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에서 한국 배터리 3사의 주도권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SK온이 2조원 규모 대형 수주를 따내며 선공에 나섰고, LG에너지솔루션은 현지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양산에 나서며 시장 선점에 속도를 낸다. 삼성SDI도 내년부터 LFP 생산에 돌입해 추격전에 합류한다.
4일 업계에 따르면 SK온은 미국 플랫아이언 에너지와 1GWh 규모 ESS 공급 계약을 체결했고, 2030년까지 총 6.2GWh 프로젝트의 우선협상권도 확보했다. 계약 규모는 약 2조원으로 회사 출범 이후 최대다. SK온은 내년 하반기부터 조지아주 SKBA 공장의 일부 라인을 ESS 전용 LFP 생산라인으로 전환해 공급 역량을 강화할 방침이다.
최대진 SK온 ESS사업실장은 "이번 계약은 배터리 케미스트리와 사업 포트폴리오를 동시에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첨단 기술과 현지 생산 기반을 바탕으로 추가 고객사를 확보해 북미 ESS 시장 입지를 넓히겠다"고 말했다.
삼성SDI는 현재 ESS용으로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으나, 내년부터 LFP 생산을 본격화한다. 일부 전기차 배터리 생산라인도 ESS 전용으로 전환해 전체 공급의 20% 이상을 ESS에 할애할 계획이다. 이미 넥스트에라에너지 등 미국 주요 전력사에 NCA 배터리를 납품하고 있어, LFP 전환 이후 영향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중국 업체들은 저가 LFP를 앞세워 글로벌 ESS 시장을 장악해왔으나, 미국 내 입지는 급격히 좁아지고 있다. 지난해 세계 ESS 배터리 출하 상위 10개사 중 6곳이 중국 기업이었고 미국 내 ESS용 배터리의 80% 이상을 차지했지만, 최근 미중 협상으로 중국산 ESS 배터리에 40.9% 관세가 부과됐다.
이전 155.9%보다는 낮아졌으나 여전히 한국 기업과의 가격 격차를 메우기 어려운 수준이다. 반면 국내 배터리 3사는 현지 생산 체제로 무관세 혜택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첨단제조 생산세액공제(AMPC) 적용을 동시에 받으며 가격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ESS 시장은 재생에너지 확산과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증가로 성장세가 가파르다. 글로벌 ESS 시장 규모는 2023년 185GWh에서 2035년 1232GWh로 확대될 전망이다. 한국산 ESS용 리튬이온 배터리의 대미 수출액도 2022년 9억7000만 달러에서 지난해 21억9000만 달러로 급증했다. 반면 전기차 배터리 수출은 감소세를 보였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LFP를 앞세운 한국 3사의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것"이라며 "중국산 공백을 파고들며 미국 ESS 시장에서 존재감이 더 커질 것으로 본다"고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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