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종 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학부 교수]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한국의 이재명 대통령은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지만 놀라울 만큼 닮은 점이 많다. 두 사람 모두 허약한 야당 속에서 강력한 행정 권력을 행사하고 열성 지지층에 힘입어 당권을 장악하고 있다. 두 대통령 모두 형사 혐의로 사법 리스크에 직면했으나, 당선 이후 재판은 대체로 중단되었다. 대선 과정에서 암살 위기를 겪었고 검사들과 대결했으며, 집권 후에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법 권력을 압박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을 엘리트와 기득권에 맞서는 서민의 대변자로 내세운다. 여러 면에서 이들은 놀랍도록 비슷한 특성을 가진 정치적 ‘도플갱어’다.
물론 중요한 차이도 존재한다. 트럼프는 부유한 가정 출신으로 부모 재산에 힘입어 사업가로 이름을 날렸다. 반면 이 대통령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스스로의 노력으로 변호사가 되었다. 공화당 소속인 트럼프는 작은 정부와 자유시장이라는 보수 이념을 내세운다. 반면 이재명은 더불어민주당 출신으로 큰 정부와 복지 확대를 지향하는 진보적 정책을 추진한다. 하지만 그런 이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권력, 통치, 소통 방식에 있어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무엇보다 두 대통령은 선출 권력이 임명 권력보다 우위에 있다고 믿는다. 이재명 대통령은 6월 취임 이후 여러 차례 임명직 공무원과 판검사 등은 국민의 위임을 받은 선출 권력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는 “권력에도 서열이 분명히 있다”고 말하며 선출 권력이 다른 모든 기관 위에 있다고 못 박았다.
이 대통령은 이런 논리를 사법부에도 적용한다. 사법부 구조는 사법부가 만드는 것이 아니며 입법부가 만든 틀 안에서 운영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집권 민주당은 사법부가 계엄령 선포 시도로 탄핵, 투옥된 윤석열 전 대통령의 편이라고 주장하며 사법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검찰이 권한을 남용해 왔다며 검찰청을 폐지해 검사들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려 한다.
트럼프 역시 오래전부터 비슷한 주장을 펼쳐왔다. 그는 1기 때부터 관료, 정보기관, 연방 공무원들이 자신을 방해하는 ‘딥스테이트(Deep State)’를 이루고 있다고 주장했다. FBI, 법무부 등 연방 기관의 수사가 정치적 음모에 기반했다고 주장해왔다. 2기 집권 후에는 고위 관료를 대량으로 해임하고, 정부 기관을 폐쇄 혹은 축소하며, 자신의 변호인단 출신 인사들을 요직에 임명하는 방식으로 딥스테이트에 대한 공격을 강화했다.
서울과 워싱턴에서의 이러한 움직임은 정책 집행을 수월하게 만들 수 있지만, 비판론자들은 심각한 위험을 경고한다. 행정부에 권력이 집중되면 민주주의의 기초인 삼권분립과 견제·균형 체제가 약화되어 권위주의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여당이 국회를 장악하고 야당이 취약할수록 그 위험은 커진다.
서울에서는 집권 여당과 우호 정당들이 국회의 약 3분의 2를 차지하며 엄청난 입법 권력을 행사한다.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시도 실패 이후 국민의힘은 지지율이 약 24%까지 떨어졌고, 여당은 40%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워싱턴에서는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면서 트럼프는 거의 제약 없이 자신의 의제를 밀어붙이고 있다.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이던 노동 계층이 공화당으로 이동하면서 야당의 목소리는 더욱 희미해졌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사회 기득권 세력과 엘리트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이다. 두 사람 모두 경제, 교육, 문화 등 기존 제도권을 신뢰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트럼프는 엘리트 대학들을 향해 연방 보조금 삭감을 위협하며 공격해왔다. 이 대통령은 명문대 자체를 공격하지는 않았지만 비명문대 출신 인재를 적극 등용하며 기존 엘리트의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또 서울대의 과도한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9개의 지방 국립대를 서울대급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두 지도자는 전통적 군부 엘리트와도 거리를 둔다. 한국에서는 이 대통령이 예비역 장성 출신이 아닌 인물을 국방장관에 임명했다. 합참의장은 기존의 육군이 아니라 공군 출신이다. 미국에서도 트럼프는 정통 장군 대신 주방위군 출신이자 방송 해설가 출신 인사를 국방장관으로 임명했다.
소통 방식에서도 두 사람은 유사하다. 직설적이고 전투적인 화법을 선호하며, 기존 언론을 우회해 직접 대중과 소통하려 한다. 트럼프는 CNN이나 뉴욕타임스를 “국민의 적”이라 비난하며 트위터(현 X)와 이후 자신의 플랫폼인 트루스 소셜을 선호한다. 이 대통령도 보수 성향의 레거시 언론을 피하고 자신의 의제에 우호적인 독립 매체나 사회관계망 채널을 활용한다. 두 사람 모두 로라 루머(Laura Loomer)나 김어준 같은 영향력 있는 온라인 인물들을 팔로우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키워준다. 이를 통해 주류 언론은 배제되고 확인되지 않은 가짜 뉴스나 음모론이 득세한다.
이러한 유사성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두 사람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성장했고, 이념도 다르다. 그럼에도 통치 방식은 점점 더 닮아간다.
한 가지 설명은 제도적 요인일 수 있다. 미국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한국의 민주주의 체제가 자연스럽게 미국 정치의 특징을 닮아간다는 것이다. 다른 설명은 세계적인 추세다. 양극화, 민족주의, 포퓰리즘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각국 지도자들이 비슷한 통치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원인이 무엇이든 두 사람의 유사성은 두드러진다. 이들은 전통적 제도를 흔들고, 행정 권력을 강화하며, 대중적 충성심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소통하며 서로를 배워가는 모습이다. 두 도플갱어가 서로에게서 계속 배워간다면, 부디 나쁜 점이 아니라 좋은 점을 배우기를 바랄 뿐이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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