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중국심서(中國心書) 2025 ⑦
인공지능 시대는 거대한 기술의 파도이다. 이 파도가 세계 경제의 판도를 뒤집는 가운데 중국의 AI 산업은 놀라운 속도로 굴기하고 있다. 미국의 오픈AI가 AI의 황제라면 중국의 딥시크(DeepSeek)는 작은 돼지처럼 보이지만 그 이빨은 호랑이의 뒤통수를 무자비하게 물어뜯는 형국이다. 2023년 설립된 스타트업인 중국의 딥시크는 불과 2년 만에 오픈AI의 o1 모델을 능가하는 R1 모델을 선보였다. 훈련 비용은 560만 달러에 불과하다. 오픈AI가 수억 달러를 쏟아부은 데 비해 딥시크는 알고리즘의 예리함으로 승부를 걸었다.
2025년 1월 중국의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세계 1위의 AI 업체 오픈AI의 아성에 도전하며 던진 충격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이는 중국 AI 산업의 잠재력과 그 배경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중국 AI 모델이 미국 다음으로 부동의 세계 2위를 차지하고 있는 근간에는 바로 '궁즉통(窮則通)'의 철학이 녹아 든 알고리즘 혁신이 있었다.
미국의 첨단 AI 반도체 공급 금지이라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은 중국은 이를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사는' 창조적 우회로로 극복해 나가고 있다. 딥시크는 미국 유학 경험이 없는 연구원들이 주축이 되어 오픈AI의 모델을 능가하는 성능을 알고리즘 업그레이드만으로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제한된 하드웨어 환경에서도 소프트웨어와 알고리즘의 파워를 극대화하여 기술적 난관을 돌파하는 중국 특유의 문제 해결 능력이 발현된 결과다. 실제로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AI 칩 업체들은 이미 엔비디아 H100의 70~80% 수준의 성능을 구현하는 데 이르렀고, 여기에 더하여 수많은 중국산 칩을 병렬 연결하여 엔비디아 칩의 성능을 내는 혁신적인 소프트웨어 기술을 개발하여 미국의 AI칩 공급 제한의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다.
중국 AI산업의 강점은 단지 기술적 우회로에만 있지 않다. 그 근저에는 국가적 차원의 전략적 지원과 독특한 산업 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첫째, 정부의 강력한 정책적 의지 및 지원이다. 중국 최고 지도부는 AI를 국가의 명운을 건 전략 산업으로 격상시키고, 파격적인 생산 보조금, 세제 혜택, 국산 제품 우선 구매 및 외산 제품 규제 등 전 방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둘째, 세계 최대의 데이터 생산 및 활용의 유연성이다. 14억 인구와 급격한 디지털 전환 속에서 중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생산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데이터 활용에 대한 규제가 서방 국가들보다 자유로운 환경을 가지고 있어 AI 모델 학습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
셋째, 기업들의 공격적인 투자와 노력이다.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등 거대 IT 기업뿐만 아니라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AI 분야에 거대한 자금을 쏟아부으며 기술 혁신을 선도하고 있다.
넷째, 대학을 중심으로 한 인재 양성 시스템이다. 일찍부터 이공계 교육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STEM 분야의 인재를 집중적으로 육성해 온 노력은 AI 시대의 핵심 경쟁력으로 직결되고 있다.
Gross Data Production의 시대
AI 시대의 진정한 힘은 더 이상 전통적인 GDP(Gross Domestic Production)가 아니라 GDP(Gross Data Production), 즉 데이터 생산능력에서 찾아야 한다. 중국은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는 전통적 GDP에서는 세계 2위지만 데이터 생산능력에서 중국은 이미 미국을 추월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지식재산(IP)으로 추출하여 인공지능을 만드는 이 새로운 전쟁에서 중국의 핵심 무기는 바로 '세계 최대의 빅데이터'이다. 반도체가 약한 중국에 이 방대한 데이터는 가장 강력하고 대체 불가능한 전략 자원이다. 중국의 힘은 이제 전통적인 제조업 기반의 GDP가 아니라 세계 최대의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Gross Data Production'에서 발현되는 AI 혁신에서 찾아야 한다.
물론 중국은 첨단 반도체 공장은 있으나 기술이 부족하다는 아킬레스건이 존재한다. 반면 미국도 세계 최고의 AI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첨단 AI 반도체 생산능력은 대만과 한국에 의존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이 미·중 AI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한국이 당당할 수 있는 것은 '천행'으로 공장과 기술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AI+제조업', 트럼프 관세를 넘어설 중국의 승부수
AI는 그 자체로는 천문학적인 개발 비용을 소모하는 '돈 먹는 하마'와 같다. 가입자 이용요금 모델만으로는 이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진정한 대박의 수익 모델은 AI가 제조업과 결합하여 제조업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AI+' 모델에서 나온다.
흥미롭게도 미국은 AI 모델은 최고지만 AI+를 접목할 강력한 제조업 기반이 40년 전에 이미 해외로 이전되어 제조업 빅데이터를 구하기 어렵다. 반면 중국은 AI 모델은 미국에 비해 약점이 있지만 제조업과 거기에서 나오는 제조업 빅데이터는 세계 최강이다.
중국은 이 AI+ 제조업 모델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30% 관세 폭탄까지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AI+를 접합한 제조업의 원가 절감과 생산성 향상으로 관세 장벽을 상쇄할 수 있다는 계산인 것이다.
중국은 AI와 로봇 기술을 활용한 '다크 팩토리(Dark Factory)', 즉 무인 공장 건설을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고 기업들은 생존 수단으로 이를 앞다투어 추진하고 있다. 샤오미가 다크 팩토리를 통해 76초당 1대씩 전기차를 생산하는 사례는 중국 제조업의 미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의 생존 전략은 미국 AI와 중국 알고리즘 파워 모델의 융합
중국의 AI+ 제조업 굴기의 최대 피해자는 한국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제조업 전 분야에서 중국과 경쟁하고 있으며 이미 원가 경쟁력에서 열위에 놓여 있다. 여기에 다크 팩토리가 등장하면 한국 제조업은 생존 자체가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다.
한국으로서는 한 기업이 수백억 달러를 투자하는 미국식 AI모델을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은 2~3세대 뒤진 AI 칩으로도 알고리즘 파워를 극대화하여 AI 성능을 끌어올리는 중국식 모델을 벤치마크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한국은 미·중 AI 전쟁의 지정학적 환경을 레버리지로 활용해야 한다. 한국은 중국 다음으로 강한 제조업 기반과 제조업 빅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미국의 최강 AI 모델에 한국 제조업의 빅데이터를 결합하여 제조업에 날개를 달고, 이 성공 모델을 기반으로 미국에 투자하고 공장을 지음으로써 중국에 밀린 한국 제조업의 생산성을 혁신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또한 이런 한·중 합작모델 공장을 미국에 지을 때 미국 역시 진정한 의미의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모델을 구축하는 상생의 길이 될 것이다.
한국은 Gross Data Production이 경쟁력인 AI 전쟁 시대에 미국과 중국이 절실히 원하는 전략 물자이자 군사 무기인 첨단 GPU와 HBM을 생산하는 반도체 생산능력과 기술을 모두 갖춘 유일한 국가이다. 미 서부 골드러시때 돈을 번 사람은 금광을 판 사람이 아니라 청바지를 판 상인이었다. 한국은 AI 골드러시 시대의 '청바지 상인'이 될 결정적인 기회를 잡은 것이다.
한국 AI의 치명적 약점 중 하나는 엔비디아의 첨단 AI 칩 확보 문제다. 해결책은 한국이 보유한 HBM 반도체를 레버리지로 활용해야 한다. 정부는 HBM을 전략 물자로 지정하고, HBM을 구매하는 GPU 회사에 매출액의 일정 비율만큼 GPU 우선 구매권을 한국에 제공하도록 하는 법 또는 행정적 명령을 만들어 엔비디아 고성능 칩 확보에 HBM을 지렛대로 활용해야 한다. 이는 칩 공급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AI 패권 전쟁의 서막에서 한국의 혜안과 용기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중국의 AI 굴기는 단순한 기술 발전이 아니라 국가 생존 전략이며, 세계 질서의 재편을 예고하는 용의 포효와 같다. 한국은 이 거대한 두 용, 미·중 사이에서 실리적이고 전략적인 '융합 모델'을 구축하고, 우리의 독보적인 자원인 제조업 빅데이터, HBM 기술 활용을 극대화하여 위기를 기회로 삼는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할 시점이다.
전병서 필자 주요 이력
▷칭화대 석사·푸단대 박사 ▷대우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반도체IT 애널리스트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겸임교수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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