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낙하산 대사가 아닌 국익 지킬 외교 전문가를

이병종 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학부 교수
[이병종 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학부 교수]
 

 
한국의 신임 대통령들에게 대사직은 오랫동안 측근과 선거 공신들에게 안겨줄 수 있는 이상적인 ‘선물’이었다. 다른 고위 공직과 달리 대사 임명은 까다로운 국회 인사청문회나 강도 높은 여론 검증을 거칠 필요가 없다. 이 때문에 과거 군사정권은 쿠데타나 독재를 지지한 장성들에게 대사직을 손쉽게 포상으로 안겼다. 최근에도 대통령들은 선거 과정에서 자신을 도운 정치인이나 교수들에게 대사직을 ‘선물’해 왔다.

가장 최근 사례는 이재명 대통령이 사법연수원 동기를 유엔대사로 임명한 것이다. 신임 차지훈 대사는 외교 경험이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핵심 대사직을 맡게 되었다. 차 대사 외에도 법무부 장관, 법제처장, 금융감독원장 등 이 대통령의 연수원 동기들이 대거 요직에 발탁된 바 있다. 또한 대통령의 사법 사건들을 변호했던 일부 변호사들도 정부 내 핵심 자리에 임명되면서, 정실 인사와 연고주의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차 대사가 나름대로 국제 경험을 갖추고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중 전략 경쟁이 심화되고 트럼프 대통령의 고율 관세로 촉발된 무역전쟁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세계 정세가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한 지금, 세계 최대의 국제기구인 유엔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자리에는 단순한 국제 경험이나 언어 능력 그 이상이 요구된다. 특히 한국이 현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직책을 수행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물론 정치적 대사 임명이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역시 전체 대사직의 약 3분의 1을 주요 기부자나 대통령의 측근 등 선거 공신으로 채운다. 그러나 세계 최강국인 미국은 이런 관행을 감당할 수 있다. 자유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미국 대통령과의 개인적 친분은 많은 국가에서 가치 있는 외교 자산으로 받아들여진다. 영어가 외교의 공용어이기 때문에 현지 언어를 몰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미국 대사는 의회의 엄격한 인준 절차를 거치므로 최소한의 자격 검증은 갖추게 된다.

그러나 한국과 같은 중견국에게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한국 대사들은 제한된 국력으로 인해 상대국 정부의 관심과 협조를 얻기 위해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른 강대국의 대사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해당 국가의 정치·경제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한 통찰, 그리고 외교 프로토콜에 대한 숙련도가 필수적이다. 한국어가 해외에서 널리 사용되지 않으므로 영어와 현지 언어 능력 또한 중요한 자격 요건이다.

하지만 한국에는 부적절한 정치적 낙하산 대사가 적지 않았다. 일부는 선거 과정에서 후보의 외교 공약을 도왔던 학자들로, 정책 설계에는 뛰어날지 몰라도 실제 외교 수행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현지 사회나 정치에 대한 지식 부족, 언어 능력 부족으로 인해 현지 정부로부터 환영받지 못하거나 심지어 기피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주재국 주요 인사들에게 접근조차 하지 못한 사례도 있었다.

물론 예외도 있다. 오랜 정부 및 학계 경험을 바탕으로 뛰어난 외교 능력을 보여준 교수 출신 대사들도 있었다. 이홍구 전 주영국 대사, 한승수 전 주미대사가 대표적이다. 이들의 학문적 깊이와 폭넓은 공직 경험은 이후 국무총리직으로 이어졌고, 한국의 국익 증진에 큰 기여를 했다.

반면 정치인 출신 대사들은 전반적으로 성과가 좋지 않았다. 중국이나 일본과 같이 핵심 국가에 배치되었음에도 국제 문제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일부는 자신의 향후 선거를 위한 경력 관리 차원에서 대사직을 활용한 경우도 있다. 또 어떤 대사들은 선거 지원에 대한 보상으로 임기 말 몇 년을 ‘편안하게’ 보내기 위해 해외 공관에 머물렀다는 비판도 있었다.
현재 이재명 정부에서는 또 다른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여러 이유로 주요 대사직이 장기간 공석으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런던과 파리를 포함해 약 20개 공관이 비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새 대통령 취임 직후 전임 정부가 임명한 대사들로부터 대거 사표를 받았지만, 후임 인선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적합한 후보자를 찾기 어렵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비전문가인 대통령 측근을 물색하느라 시간이 걸리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이유든, 이런 공백은 지정학·지경학적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대에 매우 위험하다.

최근 두 사건은 이런 위험을 명확히 보여준다. 하나는 캄보디아에서 다수의 한국인 피해자와 가해자가 연루된 국제 범죄 조직 사건이다. 당시 프놈펜 대사관은 대사가 공석이어서 대응이 지체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 하나는 미국 조지아주 현대·LG 공장에서 한국 노동자들이 이민 당국에 의해 구금·추방된 사건이다. 당시 애틀랜타 총영사직이 비어 있어 한국 정부의 대응이 늦고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사뿐 아니라 총영사는 해외에 있는 한국인의 안전을 보호하는 핵심 역할을 담당한다.

그렇다고 정부가 대사직을 서둘러 채워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치열해지는 국제 환경 속에서 국익을 지킬 수 있는 전문성과 자질을 갖춘 인물이다. 한국 외교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은 외교적 능력도 없으면서 ‘대통령의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요직을 차지하는 이들이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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