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 칼럼] 미래를 읽는 손정의, 미래를 만드는 이재용

사진챗 GPT 생성
[사진=챗 GPT 생성]

지난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이재명 대통령을 만나 “인간 지능의 1만 배에 달하는 초인공지능(ASI) 시대가 눈앞”이라고 말했다. 손 회장은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같은 화두를 던져왔다. “AI는 산업이 아니라 문명 전환”이라는 메시지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역시 “미래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자의 것”이라며 초격차 기술 인프라 구축의 필수성을 강조해 왔다. 기술문명의 방향이 바뀌고 있는 지금, 두 경제계 거물의 발언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한국에 던지는 전략적 질문이다. 한국은 어떤 미래 역량을 준비할 것인가.

· 손정의가 보여준 미래 감각 

필자는 기업가정신 연구에서 ‘예지력(Foresight)’을 가장 중요한 축으로 제시해왔다. 기업가는 단순히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가올 미래를 현재의 결단으로 당겨오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손정의는 이 능력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1990년대 김대중 대통령에게 한국의 디지털 인프라 구축을 제안했고, 2017년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AI가 가져올 패러다임 변화를 역설했다. 이번에는 초인공지능 시대가 국가 경쟁력을 재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점마다 제시한 키워드는 모두 시대를 앞질렀고, 결국 글로벌 흐름으로 현실화되었다.

미국 경제학자 조지 슘페터는 기업가를 “창조적 파괴의 기수”라 불렀고,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변화를 기회로 보는 자만이 미래를 창조한다”고 말했다. 손정의는 이 두 개념을 실제 산업 현장에서 구현한 대표적 인물이다.

국내 기업 생태계에서는 이러한 예지형 리더를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 기업의 대부분이 여전히 리스크 회피·미래 과소투자·단기성과 중심 구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손정의의 사례는 “기술 곡선의 변곡점”을 읽어내는 미래 감각이 기업의 체질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 이재용의 초격차 전략 

이재용 회장은 미래를 말하기보다 미래가 작동할 시스템을 구축해왔다. 지난 10여 년간 삼성전자가 만든 반도체 초격차 인프라. 공정, 장비, 소재, 설계, 파운드리까지 연결된 거대한 생태계는 세계 제조업이 따라올 수 없는 구조적 경쟁력이다.

이는 단일 기업의 역량을 넘어 국가 기술주권과 직결되는 자산이다.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릴 때마다 “한국이 버틸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바로 이 생태계라는 평가도 나온다. 필자가 박사논문에서 제시한 기업가정신의 두 축은 예지력(Foresight)과 실행의 지속성(Persistence of Execution)이다. 손정의가 전자라면, 이재용은 철저히 후자에 강점을 가진다.

국내 기업 가운데 수십조의 장기 투자를 끊임없이 유지하며 기술자·과학자 중심 구조를 만든 곳은 삼성이 독보적이다. 해외 사례를 보면, 일본 도요타의 TPS, GE의 장기 R&D투자, 독일 보쉬의 기술 내재화 등이 ‘지속적 실행’의 대표 사례다. 이재용의 초격차 전략은 이들 기업을 능가하는 규모와 속도를 보여준다.

· 에디슨·잡스·베이조스가 남긴 문명적 유산 

기술문명 전환기의 기업가들은 시대를 나누는 선을 그렸다. 에디슨은 전기 문명을 열어 인류 생활방식을 바꿨고, 잡스와 게이츠는 디지털 문명을 만들며 개인의 삶과 일터를 새롭게 규정했다. 베이조스는 플랫폼 문명을 구축해 소비·물류·데이터 체계를 재편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단 한 가지다. 산업을 본 것이 아니라 문명을 보았다. 오늘 손정의와 이재용이 서 있는 자리도 이 지점이다. 손정의는 AI 문명의 지도를 그리는 사람이며, 이재용은 그 지도를 실현할 산업기반을 구축하는 사람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문명 전환기에는 새로운 도구보다 새로운 사고방식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사고방식을 가장 잘 구현하는 기업가로 손정의와 이재용을 들고 싶다.

· 토인비의 경고와 한국 기업의 과제 

한국 기업의 다수는 여전히 리스크 최소화, 단기 실적, 확장 중심 성장이라는 오래된 체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초인공지능 시대는 완전히 다른 경쟁력을 요구한다. 미래 변화의 본질을 읽는 예지력, 초격차를 가능케 하는 장기 투자, 실패 후 빠르게 회복하는 조직 회복탄력성, 국경을 넘어 문제를 해결하는 글로벌 감각. 이 네 가지가 없으면 AI 문명 시대에 생존하기 어렵다.

역사철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문명은 외부의 충격이 아니라 내부의 창조적 대응 부족으로 무너진다”고 말했다. 지금 한국 기업은 외부 충격보다 내부 대응력의 한계를 더 두려워해야 할 시점이다. AI 시대의 승부는 ‘기술을 보유한 나라’가 아니라 ‘기술을 문명화하는 기업가정신을 가진 나라’가 승리한다.

· 손정의의 눈과 이재용의 손을 결합해야 한다 

손정의는 “초인공지능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고 말하며 미래의 거대한 변곡점을 읽어낸다. 이재용은 “기술 인프라의 초격차가 국가 생존”이라고 강조하며 미래를 실현할 구조를 만든다. 한 사람은 미래를 읽고, 다른 한 사람은 미래를 만들어낸다. 이 조합은 단순한 미담이 아니라 한국 경제가 가져야 할 새로운 전략적 프레임이다. 예지력과 실행력, 즉 미래를 읽는 눈과 미래를 만드는 손이 결합될 때 한국은 AI 문명 시대의 리더가 될 수 있다.

초인공지능 시대를 앞둔 지금, 한국 기업과 리더의 과제는 분명하다.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과 미래를 실현하는 능력을 동시에 갖춘 한국형 기업가정신의 재정립이다. 이것이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남겨야 할 가장 중요한 유산이자, 대한민국이 AI 문명에서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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