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다 진한 '동행'...부산경남 경마, 스포츠 넘어 문화로

  • 2025 부경 연도대표 시상식...'300승 신화' 이종훈 마주 등 영예

  • 성적보다 빛난 21년 의리, 김진영 마주와 '메이저킹'의 아름다운 동행

연도대표시상식 단체사진사진렛츠런파크 부산경남
연도대표시상식 단체사진[사진=렛츠런파크 부산경남]


부산경남 경마가 2025년 한 해를 마무리하며 승리의 환호와 생명에 대한 존중이 어우러진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한쪽에서는 올 한 해 최고의 성과를 낸 주역들을 축하하는 박수가 이어졌고, 다른 한쪽에서는 화려한 조명을 내려놓은 은퇴 경주마와 끝까지 삶을 함께하는 마주의 이야기가 전해지며 경마의 본질적 가치를 되새기게 했다.

한국마사회 렛츠런파크 부산경남은 지난 20일 ‘2025 부산경남 경마 연도대표 시상식’을 열고, 한 해 동안 경마 발전에 기여한 관계자들을 한자리에 초청했다고 21일 밝혔다.

이번 시상식에서 가장 눈에 띈 변화는 경마의 핵심 주체인 마주의 역할과 공로를 공식적으로 조명하기 위해 ‘최우수 마주’ 부문이 새롭게 신설됐다는 점이다.


초대 수상의 영예는 이종훈 마주에게 돌아갔다. 이종훈 마주는 올해 한국 경마 역사상 최초로 통산 300승이라는 전인미답의 기록을 세우며 국내 최다 승수 마주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경주마는 깨지기 쉬운 크리스털과 같다”는 평소 지론처럼, 말 한 마리 한 마리에 대한 세심한 관리와 헌신으로 꾸준한 성과를 만들어 온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기록의 무게만큼이나 말에 대한 책임감이 이번 수상의 배경으로 꼽힌다.

부문별 시상에서도 한 해의 성과가 고르게 조명됐다. 최우수 조교사에는 시즌 최다 승수를 기록한 라이스 조교사가 선정됐고, 최우수 기수상은 부경 경마 다승 1위를 지켜온 서승운 기수가 차지했다.

공정한 경기 운영과 매너를 인정받는 페어플레이 기수상은 다나카 기수에게 돌아갔으며, 손경민·남정혁 기수는 생애 첫 승 부문에서 이름을 올리며 한국 경마의 미래를 예고했다.

 기록이 멈춘 자리에서 이어진 동행...김진영 마주와 메이저킹
김진영 마주의 경주마 캡틴에브리싱사진렛츠런파크 부산경남
김진영 마주의 경주마 캡틴에브리싱[사진=렛츠런파크 부산경남]


시상식이 기록과 성과를 축하하는 자리였다면, 경주로 밖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가 경마인들 사이에서 잔잔한 울림을 전하고 있다. 부산경남 마주협회 초대 회장을 지낸 원로 마주 김진영 씨와 그의 애마 메이저킹의 인연이다.

메이저킹은 2013년 국내 최우수 3세마로 선정되며 한국 경마의 기대주로 주목받았다. 농림축산식품부장관배(G2) 우승을 비롯해 삼관 시리즈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해외 원정과 종마 활동까지 이어졌다. 다만 이후의 도전은 기대만큼의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고, 은퇴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잊힐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

그러나 김진영 마주의 선택은 달랐다. 그는 메이저킹의 은퇴를 결정하며 직접 여러 목장을 둘러본 끝에 넓은 초지와 안정적인 환경을 갖춘 호포승마스쿨을 새로운 보금자리로 정했다.

김 마주는 “메이저킹은 제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자 자식 같은 존재”라며, 성적과 결과와는 무관하게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 마주의 도리라고 말해왔다.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그는 부인과 함께 정기적으로 목장을 찾아 메이저킹의 상태를 살핀다. 휴대전화에는 2013년 시상식 당시 메이저킹과 함께 찍은 사진이 여전히 남아 있고, 우승 날짜가 새겨진 계좌번호를 기념처럼 간직하며 만나는 이들에게 당시의 기억을 전하곤 한다. 그의 삶에서 경마는 승부를 넘어 오랜 동행의 기록이었다.

목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메이저킹은 멀리서 들려오는 김진영 마주의 발소리만으로도 그를 알아보고 반응한다. 현재 메이저킹은 다른 은퇴마들과 함께 규칙적인 운동과 관리를 받으며 안정적인 노후를 보내고 있다.

메이저킹의 건강 상태를 살핀 서유진 수의사는 “안정된 환경과 지속적인 관심이 노령마의 컨디션 유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대표적인 사례”라고 평가했다.

올해 시상식에서 이종훈 마주가 보여준 기록의 성취와 김진영 마주가 보여준 은퇴마에 대한 책임감은 한국 경마가 지향해야 할 두 가지 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최고 기록을 경신하는 스포츠 정신과, 경주가 끝난 뒤에도 생명을 책임지는 문화의 결합이다.

해외 경마 선진국에서는 뛰어난 성과를 남긴 말들이 개인 초지를 갖춘 목장에서 여생을 보내는 ‘명예로운 은퇴(Pension)’ 문화가 비교적 정착돼 있다.

김진영 마주와 메이저킹의 이야기는 이러한 문화가 한국 경마에서도 자연스럽게 뿌리내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엄영석 부산경남지역본부장은 “이번 시상식은 승자만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부경 경마를 함께 만들어온 모든 주역의 헌신을 격려하는 자리”라며 “앞으로도 마주들이 자부심을 느끼고, 말들이 존중받는 선진적인 경마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쓰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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