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K-경제 '올인원 전략' …쪼개면 지고 뭉쳐야 산다

  • 동시적 복합 위기의 한국 경제… 선형 로드맵을 버리자

곽재원 논설위원장
[곽재원 논설위원장]
 
  
지금 한국 경제를 둘러싼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수출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주식시장은 5000포인트 돌파를 앞두고 있다. 이와 동시에 원화 약세, 부동산 가격 재상승, 청년 고용 악화라는 경고음도 분명히 울리고 있다. 누군가는 이를 대전환기의 기회라고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침체로 가는 냉각기라고 진단한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경제는 이 둘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기회와 위기가 동시에 작동하는, 가장 어려운 국면에 놓여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지금은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과 방식의 문제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이미 상당 부분 명확해졌다. 문제는 그것을 어떤 순서로, 어떤 속도로, 어떤 방식으로 추진하느냐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기존의 정책 사고방식은 결정적인 한계에 부딪힌다.

정책 문서와 보고서에는 여전히 익숙한 도식이 반복된다. 먼저 안정을 되찾고, 그 다음 성장 동력을 확보한 뒤, 마지막으로 구조개혁에 나선다는 순서다. 안정, 도약, 구조전환으로 이어지는 시계열적 선형 로드맵은 오랫동안 교과서처럼 사용돼 왔다. 그러나 지금 이 방식은 현실을 단순화하는 수준을 넘어, 오히려 현실을 왜곡한다.

이 접근 방식은 세 가지 전제를 깔고 있다. 외부 환경이 비교적 안정적일 것, 내부의 사회적 신뢰가 유지될 것, 정책이 시간을 벌 수 있을 만큼 성장 여력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다. 지금의 한국은 이 세 조건을 모두 상실했다. 글로벌 환경은 기술, 안보, 에너지, 통화가 뒤엉킨 상시적 경쟁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한 번의 판단 지연이 수년의 격차로 이어지는 시대다. 국내적으로는 자산과 소득, 세대 간 격차가 누적되며 사회적 신뢰가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성장 잠재력은 남아 있지만, 정책이 순서를 핑계로 시간을 끌 여유는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는 안정, 내년은 도약, 그 다음은 구조개혁이라는 말은 더 이상 전략이 아니다. 사실상 미루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국민에게는 지금은 어렵지만 언젠가는 하겠다는 말로 들린다. 지금의 유권자와 시장은 이런 메시지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

지금 한국이 처한 문제는 여러 위기가 나열된 상태가 아니다. 위기들이 동시에 작동하는 복합 위기 상태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가 여러 가지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지만, 한국의 상황은 유독 더 복잡하다. 한국은 여전히 성장해야 하는 국가이면서 동시에 선진국이 겪는 구조적 문제를 이미 안고 있기 때문이다. 추격형 성장의 과제와 선진국형 구조 문제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구간에 서 있다.

환율 문제만 보더라도 그렇다. 환율은 단순한 외환시장의 문제가 아니다. 환율은 물가를 자극하고, 물가는 가계 부담을 키우며, 이는 소비와 내수를 위축시킨다. 동시에 기업의 투자 판단에도 영향을 준다. 환율 안정만 따로 떼어 관리하겠다는 발상은 현실적이지 않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주거 문제는 자산 문제를 넘어 노동 이동성과 청년 고용, 출산과 인구 구조까지 연결돼 있다. 부동산을 나중의 구조개혁 과제로 미루는 순간, 청년 정책과 노동 정책은 이미 실패로 기울기 시작한다.

AI와 첨단 산업 역시 다르지 않다. 기술은 도약의 영역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력망과 데이터, 인허가와 규제라는 구조적인 문제와 깊이 얽혀 있다. 기술 도약을 말하면서 구조전환을 뒤로 미루는 것은 현실을 오해한 접근이다.

이 모든 과제는 순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정책만 과거의 시간표에 묶여 있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 한국 경제에 필요한 것은 더 정교한 시계열 로드맵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동시다발적으로 작동하는 패키지 전략이다. 안정과 도약, 구조전환을 나누지 말고, 서로를 지탱하는 하나의 묶음으로 설계해야 한다.

그 핵심은 분명하다. 2026년 1년 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되돌릴 수 없는 성공 궤도에 올라섰다는 것을 국민이 체감하게 만드는 것이다. 완결이 아니라 방향 전환이고, 완성이 아니라 비가역성이다.

안전은 출발점이지만 더 이상 기다릴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환율, 물가, 주거, 금융에 대한 불확실성을 동시에 낮춰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기술적인 미세 조정이 아니라 정책 주체들의 집단적 신호다. 정부와 중앙은행, 연기금이 각자의 역할을 분명히 하면서 시장과 국민에게 한 방향의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이 문제를 방치하지 않겠다는 신호가 분명해야 한다.

도약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정부 문서에는 AI와 첨단 산업이라는 단어가 넘쳐나지만, 중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이 실제로 작동하는 조건이다. 전력과 데이터, 인허가와 규제, 인재 유인 구조를 한꺼번에 풀지 않으면 도약은 구호에 그친다. 도약은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시작조차 할 수 없는 현재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구조전환은 더더욱 미룰 수 없다. 청년 고용과 노동 이동성, 지역 격차, 인구 구조 문제는 이미 현재 진행형이다. 이 문제들에 대해 원칙과 방향을 지금 제시하지 않으면 정책은 곧 신뢰를 잃는다. 구조전환의 핵심은 당장 모든 제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되돌릴 수 없는 방향을 분명히 고정하는 데 있다.

여기서 관건은 국정 컨트롤이다. 이처럼 안정과 도약, 구조전환을 하나의 패키지로 동시에 밀어붙이는 정책은 어느 한 부처에 맡겨 해결할 수 있는 성격의 과제가 아니다. 기획재정부의 문제만도 아니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나 산업통상부,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 가운데 어느 한 곳의 소관으로 정리될 수도 없다. 환율과 재정, 산업과 전력, 주거와 고용, 기술과 규제가 서로 얽혀 있는 이 국면에서 필요한 것은 부처별 정책의 합이 아니라 국정 전체를 관통하는 조정과 통제다.

그래서 지금 이 시점에서는 청와대, 다시 말해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국정 컨트롤 타워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중요해진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부처 간 충돌을 조정하며, 단기 안정과 중장기 전환을 하나의 방향으로 묶는 작업은 대통령의 권한이자 책임이다. 이는 단순한 실무의 문제가 아니라 통치의 문제다.

더 나아가 이 과정은 대통령의 국정 운영 능력이 국민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전달되고, 동시에 가장 냉정하게 평가받는 과정이기도 하다. 말로 하는 개혁이 아니라, 실제로 여러 부처가 동시에 움직이고 정책의 방향이 일관되게 유지되며 국민이 체감하는 변화가 나타나는지가 대통령의 리더십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성공하면 국정 신뢰는 단기간에 회복되지만, 실패하면 어떤 설명도 변명이 되기 어렵다.

지금 한국 경제는 그런 시험대 위에 올라 있다. 안정과 도약, 구조전환을 나눠서 생각할 수 없는 이 국면에서 대통령이 직접 책임지고 국정을 묶어내지 못한다면, 그 어떤 정교한 정책도 제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지금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의 국정 운영 능력이 국가의 생존 가능성과 직결되는 순간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현실이 있다. 오는 6월 치러질 전국동시지방선거다. 이 선거는 지금 논의되고 있는 어떤 경제 정책보다도 강력한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선거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선거가 정책을 포퓰리즘으로 끌고 가는 구조적 관성이 문제다. 선거는 정책을 단기성과 중심으로 압축하고, 고통을 수반하는 결정은 뒤로 미루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자석이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정책은 일관성을 잃기 쉽다. 환율, 부동산, 요금, 재정 같은 민감한 사안은 특히 그렇다.
선거 국면에서는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는 말이 반복되고, 그 사이 문제는 누적된다. 정책의 방향은 유지된다고 말하지만, 실제 실행의 강도와 속도는 눈에 띄게 느려진다. 국민은 이 미묘한 변화를 누구보다 빨리 감지한다. 문제는 앞서 강조한 안전·도약·구조전환의 패키지 전략이 선거에 가장 취약한 유형의 정책이라는 점이다. 이 전략은 단기간에 인기 있는 선물을 나눠주는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단호함과 일관성, 그리고 일정한 사회적 부담을 전제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가 다가올수록 흔들릴 가능성도 커진다. 만약 이 패키지가 선거 국면에서 속도를 잃거나 방향을 바꾼다면, 정책은 실패하는 것뿐 아니라 되돌릴 수 없는 신뢰의 손상을 남길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선거라는 거대한 정치적 이벤트 속에서도, 단호하고 일관된 패키지 정책을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만들 것인가.

첫째, 정책을 ‘공약’이 아니라 ‘국정 원칙’의 차원으로 격상시켜야 한다. 선거용 메시지와 국정 운영 원칙을 명확히 분리하지 않으면 정책은 흔들린다. 안전·도약·구조전환 패키지는 특정 지역이나 계층을 겨냥한 선거 공약이 아니라, 국가 생존과 직결된 운영 원칙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는 선거 기간일수록 더욱 공개적으로 강조돼야 한다. 

둘째, 정책의 핵심 방향과 일정은 가능한 한 제도화해야 한다. 법과 제도, 중장기 계획, 독립적 위원회와 같은 장치는 정치 일정의 영향을 완화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모든 것을 법으로 묶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 정책의 큰 방향과 되돌릴 수 없는 기준선은 제도 속에 남겨야 한다. 그래야 선거 국면에서도 정책이 완전히 흔들리지 않는다.

셋째, 정책의 성과를 ‘미래 약속’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보여줘야 한다. 선거는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그러나 동시에 국민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정체 상태에도 불안을 느낀다. 패키지 정책이 선거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2026년 안에 눈에 보이는 변화가 일부라도 나타나야 한다. 방향이 이미 바뀌었고, 되돌릴 수 없는 궤도에 올랐다는 신호가 있어야 한다.

넷째, 대통령의 역할은 이 지점에서 더욱 중요해진다. 선거 국면에서는 부처가 스스로 움직이기 어렵다. 책임 회피와 관망이 늘어난다. 이때 정책을 붙들고 가는 유일한 주체는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정책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고, 선거와 무관하게 유지돼야 할 원칙을 직접 천명하지 않는다면, 패키지 전략은 쉽게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

결국 선거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선거가 정책을 집어삼키도록 내버려둘 것인지는 전적으로 국정 운영의 문제다. 지금 한국 경제가 처한 상황을 고려하면, 선거를 이유로 단호한 결정을 미루는 것은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국가적 위험에 가깝다.

안전과 도약, 구조전환을 동시에 추진하자는 요구는 선거를 무시하자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선거라는 현실을 직시한 상태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국정 기준을 세우자는 제안이다. 선거는 지나가지만, 경제의 방향은 그 이후 수년을 좌우한다.

지금 한국 경제는 또 한번의 시험대에 서 있다. 정책이 선거의 자석에 끌려가느냐, 아니면 선거 위에서도 방향을 지켜내느냐. 그 선택의 결과는 고스란히 국민의 삶으로 돌아올 것이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광주과기원 AI정책전략대학원 특임 교수, 가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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