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전략은 구호로 완성되지 않는다. 검증된 현장과 반복 가능한 시스템이 있을 때 비로소 전략은 힘을 얻는다. 전북대학교에 문을 연 ‘피지컬 AI 실증 랩’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공지능을 제조업에 접목하겠다는 선언은 많았지만, 실제 공장에서 로봇이 함께 일하고 공정이 멈추지 않으며 비용과 시간이 줄어드는지를 입증한 사례는 드물었다.
이번 실증 랩은 그 간극을 메운다. 양오봉 전북대 총장은 개소식에서 “대학이 연구를 넘어 산업 현장의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실증 플랫폼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지역 거점 국립대의 역할을 교육과 논문 생산에 한정하지 않고, 국가 산업 전략의 실행 기지로 확장하겠다는 방향 제시로 읽힌다.
과기정통부가 2030년까지 전북과 경남에 각각 1조원을 투입해 한국형 AI 공장 선도 모델을 구축하겠다는 계획 속에서, 전북대 실증 랩은 첫 ‘몸을 가진 AI’의 시험장이 됐다. 개소식에 참석한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한국이 가장 잘하는 제조업에 AI를 적용해 생산성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하는 길이 국가의 미래”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말이 아닌 현장 성과로 경쟁력을 증명하겠다는 정책 방향이 분명하다.
전북대 김순태 교수의 설명은 이 실험의 기술적 핵심을 짚는다. 엔비디아의 범용 소프트웨어를 적용한다고 생산성이 자동으로 높아지지는 않는다. 제조는 언어가 아니라 손발의 합이다. 볼트 하나, 용접 각도 하나가 품질과 비용을 가른다. 로봇이 서로 소통하고 공정의 ‘암묵지’를 이해할 때 비로소 AI는 현장에서 작동한다.
실증 결과는 숫자로 이를 입증한다. 자동차 부품 기업들의 공정에 피지컬 AI를 적용한 결과, 사전 검증 단계임에도 생산량 최대 11.4% 증가, 처리 시간 10% 단축, 제조 원가 최대 80% 절감이라는 성과가 나왔다. 이는 ‘미래 가능성’의 언어가 아니라 현재의 경쟁력이다.
전북대 실증 랩의 의미는 단순한 지역 거점 조성에 그치지 않는다. 수도권 중심의 연구·실증 구조에서 벗어나, 제조 현장이 있는 곳에 AI 실험실을 둔 선택 자체가 전략이다. 이는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추상적 구호를 넘어, 산업 정책의 실용성을 보여준다. 제조 데이터는 책상 위가 아니라 공장에서 나온다. 전북대 실증 랩은 그 데이터를 모으고, 검증하고, 표준으로 축적하는 공간이다.
현대차, SK텔레콤, 네이버클라우드, 리벨리온 등 국내 기업들이 참여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외산 솔루션을 배척하자는 감정적 접근이 아니라, 국산 기술이 현장에서 통하는지 검증할 프로토콜과 데이터 표준을 만들자는 문제 제기는 상식적이다. 제조 AI의 승부는 ‘모델의 크기’가 아니라 현장 적합성에서 갈린다.
장영재 KAIST 교수의 말처럼, 이제 공장은 하나의 로봇이 되고 있다. 제품과 시장, 제조 레시피가 바뀌어도 멈추지 않고 학습하며 실행하는 AI, 과거 데이터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적응할 수 있는 AI가 제조 AI의 핵심이다. 전북대 실증 랩은 그 출발점이다. 로봇을 파는 나라에서 공장을 파는 나라로 가기 위한 첫 설계도라 할 만하다.
기본과 원칙은 분명하다. 한국이 가장 잘하는 제조업에 AI를 결합해 산업 생산력을 높이고 비용을 낮추는 것, 그것이 국가 경쟁력이다. 양오봉 총장이 제시한 ‘현장형 대학’의 방향성과 배경훈 장관이 강조한 ‘제조 중심 AI 전환’ 전략이 만나는 지점에서 전북대 피지컬 AI 실증 랩은 의미를 갖는다. 이제 남은 과제는 지속성과 확장성이다. 일회성 시범에 그칠 것인지, 국가 표준과 산업 생태계로 이어질 것인지가 관건이다. 국가 전략은 실증에서 시작해 제도로 완성된다. 전북대의 실험이 한국 제조 AI의 기준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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