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JP 데스크 칼럼] 기억은 의무다 — 용산에서 만난 증언의 윤리

80여 년이 지났다. 그러나 인간성에 대한 폭력은 여전히 과거형이 아니다.

홀로코스트 이후에도 세계는 조용히, 때로는 노골적으로 같은 잔인함을 반복해왔다. 아프리카에서, 중동에서, 미국의 거리에서, 국경을 넘어 북녘 땅에서도 인간의 존엄은 여전히 시험대에 오른다.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다만 장소를 바꿔 나타날 뿐이다. 

“죽은 자와 산 자를 위해 우리는 증언해야 한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위젤의 이 말은 문장이 아니라 명령에 가깝다. 기억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는 뜻에서다. 

그 의무는 뜻밖의 공간에서 다시 울렸다. 서울 용산, 민주화운동기념관. 한때 남영동 대공분실이었던 이곳은 고문과 침묵, 국가 폭력의 기억을 품은 장소다. 그 공간에, 나치의 박해 속에서 그림으로 생존을 기록한 한 화가의 작품들이 걸렸다.
죽음의 승리〉1944년 4월 18일 펠릭스 누스바움 기억 미래를 위하여 전시 3월15일까지 민주화운동기념관 용산 촬영AJP 유나현
<죽음의 승리〉(1944년 4월 18일) 펠릭스 누스바움, <기억, 미래를 위하여> 전시 3월15일까지 민주화운동기념관, 용산 (촬영:AJP 유나현)
독일계 유대인 화가 펠릭스 누스바움(1904~1944).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죽음의 승리〉(1944년 4월 18일)는 문명이 무너진 폐허 위에서 해골들이 춤추는 장면을 그린다. 서구 예술과 과학, 이성이 자랑하던 모든 성취는 잿더미가 되고, 인간은 사라진다. 하늘에 떠 있는 연들만이 미묘한 감정의 흔적을 남긴다. 순수와 절망 사이에 정지된 얼굴들이다. 

누스바움은 숨어 지내며 이 그림을 그렸다. 그는 이미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사라지더라도, 내 그림만은 사라지게 두지 말라. 사람들에게 보여달라.” 

그의 바람은 80여 년을 돌아 서울에서 실현됐다.

주한독일대사관과 주한이스라엘대사관이 공동 주최한 이번 전시는 누스바움의 작품을 단순한 역사 자료가 아닌 ‘증언’으로 제시한다. 기억은 기록으로 끝나지 않고, 오늘의 윤리로 이어져야 한다는 메시지다. 
관람객이 펙릭스 누스바움 작품 죽음의 승리 서울 전시를 감상하고 있다 AJP 유나현 2026 127
관람객이 펙릭스 누스바움 작품 <죽음의 승리> 서울 전시를 감상하고 있다 (AJP 유나현) 2026. 1.27
유대인 신분증을 든 자화상〉(1943)에서 그는 가슴에 다윗의 별을 달고 관람객을 똑바로 응시한다. 신분증에는 ‘유대인’이라는 붉은 글자가 선명하지만, 출생지인 오스나브뤼크는 의도적으로 흐려져 있다. 국적과 집, 법적 정체성이 지워진 자리에서 그는 여전히 화가의 모자를 쓰고 있다. 예술가로서의 자아를 끝까지 붙들려는 조용한 저항이다. 
유대인 신분증을 든 자화상 1943 펠릭스 누스바움 작품 기억 미래를 위하여 전시 용산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 2026 315까지 유나현 촬영
<유대인 신분증을 든 자화상> (1943, 펠릭스 누스바움 작품 <기억, 미래를 위하여> 전시 용산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 2026 3.15까지 (유나현 촬영)
1944년 1월 5일에 완성된 〈저주받은 자들〉에서는 그 저항마저 체념에 가까워진다. 숨어 기다리는 사람들, 얼어붙은 표정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 앞에서 멈춰 선 시간. 누스바움은 자신을 그들 사이에 배치하며 개인의 서사를 집단의 운명 속에 겹쳐 놓는다. 

개막식에서 게오르그 슈미트 주한독일대사는 숫자로 환원되는 기억의 위험을 경고했다.
“600만 명이라는 숫자는 인간의 상상을 넘어섭니다. 우리는 숫자가 아니라 개인을 통해 이 비극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펠릭스 누스바움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는 독일 기본법의 첫 문장, “인간의 존엄은 침해될 수 없다”는 선언이 나치 범죄에 대한 직접적인 응답이었다고 덧붙였다. 통제되지 않은 민족주의와 배제의 정치가 어디로 향하는지를 독일은 뼈아프게 배웠다는 고백이기도 했다. 

라파엘 하르파즈 주한이스라엘대사는 홀로코스트를 과거형으로 다루는 태도 자체를 경계했다.
“홀로코스트는 끝난 비극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반유대주의는 새로운 기술과 플랫폼을 타고 증폭되고 있습니다. 기억은 책임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행사가 열린 장소의 역사 역시 메시지를 더욱 또렷하게 했다.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이곳은 국가 폭력의 상처가 남아 있는 공간이지만, 이제는 그 기억을 기록하고 성찰함으로써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배우는 장소가 됐다”고 말했다. 기억의 장소가 침묵의 장소로 남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의 조건이라는 뜻이다. 
기억 미래를 위하여 전시회 2026 315까지 용산 민주화운동기념관 유나현 촬영
<기억, 미래를 위하여> 전시회 2026 3.15까지 용산 민주화운동기념관 (유나현 촬영)
이번 전시는 예술 작품과 함께 아우슈비츠의 기록도 보여준다. 1944년 5~6월 촬영된 수감자들의 신분 사진과 지문 채취 장면을 담은 ‘아우슈비츠 앨범’. SS 대원 에른스트 호프만 또는 베른하르트 발터가 촬영한 것으로 알려진 이 193장의 사진은 말 없는 증언이다. 설명보다 침묵이 더 많은 것을 말하는 순간이 있다. 

하르파즈 대사는 전시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이렇게 정리했다.
“정체성 때문에 누군가를 증오하는 순간, 침묵하지 않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침묵은 언제나 가해자의 편이 됩니다.” 

기억은 과거를 애도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현재를 감시하는 윤리이며, 미래를 선택하는 기준이다. 용산에서 울린 이 조용한 전시는 묻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잊지 않기로 선택할 것인가. 그리고 어디까지 증인이 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전시 〈기억, 미래를 위하여〉는 3월 15일까지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 열린다.
증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그 자리에 서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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