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가을, 유럽에서는 두 명의 40대 강경 보수 성향의 여성 총리가 잇달아 등장했다. 한 명은 ‘리틀 대처’로 불리던 리즈 트러스 전 영국 총리였고, 다른 한 명은 ‘여자 무솔리니’로 주목받던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였다.
같은 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에너지 가격 급등과 인플레이션, 경기 침체 우려가 유럽을 덮친 상황에서 강경 보수 노선을 내세운 두 정상의 등장은 긴장감을 더하기에 충분했다. 포퓰리즘과 이념에 매몰되면 시장과 국제사회의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유럽의 분열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비관론도 제기됐다.
그러나 이후 두 여성 정상의 운명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트러스 전 총리는 집권 전부터 공언해온 성장 우선 기조를 고집하며 대규모 감세안을 무리하게 밀어붙였고 그 결과 파운드화 가치 급락과 국채 시장 혼란을 초래했다. 시장의 신뢰는 급격히 무너졌고 그는 취임 50일 만에 사임하며 영국 역사상 최단임 총리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그 결과 멜로니 총리는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으며 안정적인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출범한 이탈리아 제2공화국에서 세 번째로 장수한 총리가 됐고 현 추세가 이어진다면 전후 최장수 총리가 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두 강경 보수 여성 총리의 명암을 가른 결정적 요인은 이념이 아니라 경제 정책, 보다 정확히 말하면 집권 이후 실용주의를 수용했는지 여부였다. 이념은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현실과 시장을 외면한 채 고집하면 그 대가는 즉각적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작년 10월, 일본에서는 ‘여자 아베’로 불리는 강경 보수 성향의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등장했다. 이후 그는 자신의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이달 조기 총선을 치렀고 사상 최대 압승을 거두며 집권 기반을 공고히 했다.
그러나 일본 경제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230%를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인 상황에서 다카이치 총리가 예고한 확장 재정 정책은 이미 시장의 경계심을 자극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트러스 전 총리 사례를 떠올리는 시선도 나온다.
지도자의 성공 여부는 더 이상 이념의 강도나 정치적 수사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시장과 현실을 읽는 능력, 그리고 필요할 때 노선을 조정할 수 있는 실용주의가 관건이다. 트러스 전 총리와 멜로니 총리의 예는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이제 다카이치 총리의 선택, 그리고 그 결과를 시장은 냉정하게 지켜보고 있다.
이는 비단 일본 정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내홍에 빠져 있는 한국의 거대 양당 역시 같은 시험대 위에 서 있다. 과거의 계파 정치와 이념 대립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현재 한국이 처한 현실을 읽는 실용주의로 전환할 것인지. 해외 사례가 보여주듯 정치적 수사보다 중요한 것은 정책이 만들어낼 결과에 대한 책임이다. 선택은 양당 지도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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