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지 116주년이 되는 날이다. 한 시대의 영웅을 기리는 날에, 우리는 또 다른 이름을 함께 불러야 한다. 총을 들고 적장을 쓰러뜨린 영웅만이 아니라, 이름 없이 사람을 살리고 민족을 지탱한 숨은 거목의 존재를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이름이 바로 최재형이다.
최재형 선생은 조선 말, 나라가 기울어가던 시절 연해주로 건너간 한인 사회의 중심 인물이었다. 그는 단순한 부호가 아니었다. 그는 공동체의 아버지였고, 민족의 후견인이었으며, 독립운동의 실질적 후원자였다. 러시아 연해주에서 경제적 기반을 일구며 한인 사회를 이끌었고,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독립운동에 투입했다. 굶주린 동포를 먹이고, 교육기관을 세우고,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하며, 때로는 자신의 생명까지 내놓았다. 그의 삶은 한마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가장 온전하게 구현된 사례였다.
그는 권력도, 명예도 아닌 책임을 선택한 사람이었다. 가진 자가 더 많이 나누고, 앞선 자가 더 먼저 희생해야 한다는 원칙을 삶으로 실천했다. 그의 집은 언제나 독립운동가들의 거점이었고, 그의 재산은 언제나 민족의 것이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지도자’란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최재형이라는 이름은 가장 단순하고도 명확한 답이 된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은 비극이었다. 일본군은 그를 체포해 재판조차 없이 총살했다. 그것은 법이 아닌 폭력이었고, 정의가 아닌 식민 권력의 공포였다. 더 큰 비극은 그 이후였다. 그의 시신은 버려졌고, 지금까지도 유해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인물이, 마지막에는 이름 없는 땅에 묻혀야 했다는 사실은 우리 역사의 깊은 상처다.
여기에 또 하나의 비극이 겹친다. 1937년 가을, 스탈린 정권은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 약 18만 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는 단순한 이주가 아니라 공동체의 해체였고, 기억의 단절이었다. 해방 이후에는 소련과 대한민국이 적대 관계로 이어지며 국교가 단절되었다. 그 결과 연해주 독립운동의 역사와 최재형 선생의 업적은 우리 국민의 기억 속에서 점점 희미해졌다. 역사는 존재했지만, 기억되지 못한 채 잊혀 갔다.
그러던 중 2011년, 연해주를 방문한 뜻있는 인사들이 이 사실을 다시 마주했다. 김창송 회장을 비롯한 독지가들이 최재형 선생의 삶과 업적이 이대로 묻혀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문제의식을 공유했고, 그 결과 사단법인 독립운동가 최재형기념사업회가 설립되었다.
그들은 잊힌 역사를 되살리고, 이름 없는 헌신을 다시 역사 속에 세우기 위해 묵묵히 활동해 왔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또 다른 위기가 찾아왔다. 후원자들이 점점 줄어들고, 운영비조차 위태로운 상황에 이르렀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이 소식을 들은 문영숙 이사장의 절박한 호소는,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과연 우리는 이 역사를 계속 잊어도 되는가.
그 물음 앞에서 행동이 시작되었다. 금년 1월 초, 뜻을 함께하는 이들이 모여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채 3개월이 되지 않았지만, 이 안타까운 사연에 공감한 지인들의 참여로 약 20억 원의 후원이 약정되었다. 이는 단순한 금액이 아니라, 기억을 되살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앞으로 시민들의 십시일반 모금을 통해 총 30억 원을 마련하여 기념사업회의 안정적 운영 기반을 구축할 계획이다.
이번 기금후원회는 단순한 조직이 아니라, 책임의 연대다. 해외 파트는 월드옥타(OKTA)의 박종범 회장이 맡고, 국내 파트는 정석현 수산중공업 회장이 맡아 공동회장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고문으로는 손경식 경총 회장, 김형오 전 국회의장,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참여했다. 이는 특정 개인의 사업이 아니라, 우리 사회 지도층 전체가 함께 짊어져야 할 역사적 책무임을 보여준다.
또한 학술 분야에서는 강민구 변호사, 강신장 대표, 김태유 서울대 교수, 김효준 전 BMW코리아 회장, 오종남 교수, 장세정 논설위원, 최진석 교수,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최재형 선생의 업적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알리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기업인들의 참여 역시 주목할 만하다. 강진모 회장, 고춘홍 회장, 곽재선 회장, 구자겸 회장, 구자관 회장, 김성권 회장, 김홍국 회장, 박세훈 회장, 신동우 회장, 안만식 회장, 윤동한 회장, 윤성태 회장, 이승찬 대표, 이어룡 회장, 이용한 회장, 이형환 회장, 조시영 회장, 조정일 회장, 주원석 회장, 차정훈 회장, 최권욱 회장, 최승옥 회장, 황인규 회장 등 수많은 기업인들이 뜻을 함께했다. 이들의 참여는 단순한 기부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아직 책임을 잊지 않았다는 증거다.
이제 남은 것은 더 넓은 참여다. 역사란 일부의 기억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그것은 공동체 전체의 의지로 이어질 때 비로소 살아 숨 쉰다. 최재형 선생의 삶은 특정 지역이나 특정 집단의 이야기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 전체의 뿌리다. 그 뿌리를 지키는 일은 곧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다.
기부는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다. 법인에는 손비처리가 되고 개인에게는 소득공제 혜택이 주어지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지 않기로 선택하는가가 결국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
최재형 선생의 삶은 우리에게 묻는다. 가진 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힘을 어디에 쓸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누구를 위해 살아갈 것인가. 그의 삶은 이미 답을 보여주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오늘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 그리고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기 위해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문화·자연을 사랑하는 문명의 출발점이다.
오늘,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이 날에 우리는 다시 한 번 다짐해야 한다. 총을 든 영웅만이 아니라, 사람을 살린 영웅을 기억하겠다고. 이름 없이 사라진 별을 다시 하늘에 올려놓겠다고. 그리고 그 별빛이 우리의 길을 비추도록 하겠다고.
최재형 선생은 조선 말, 나라가 기울어가던 시절 연해주로 건너간 한인 사회의 중심 인물이었다. 그는 단순한 부호가 아니었다. 그는 공동체의 아버지였고, 민족의 후견인이었으며, 독립운동의 실질적 후원자였다. 러시아 연해주에서 경제적 기반을 일구며 한인 사회를 이끌었고,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독립운동에 투입했다. 굶주린 동포를 먹이고, 교육기관을 세우고,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하며, 때로는 자신의 생명까지 내놓았다. 그의 삶은 한마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가장 온전하게 구현된 사례였다.
그는 권력도, 명예도 아닌 책임을 선택한 사람이었다. 가진 자가 더 많이 나누고, 앞선 자가 더 먼저 희생해야 한다는 원칙을 삶으로 실천했다. 그의 집은 언제나 독립운동가들의 거점이었고, 그의 재산은 언제나 민족의 것이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지도자’란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최재형이라는 이름은 가장 단순하고도 명확한 답이 된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은 비극이었다. 일본군은 그를 체포해 재판조차 없이 총살했다. 그것은 법이 아닌 폭력이었고, 정의가 아닌 식민 권력의 공포였다. 더 큰 비극은 그 이후였다. 그의 시신은 버려졌고, 지금까지도 유해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인물이, 마지막에는 이름 없는 땅에 묻혀야 했다는 사실은 우리 역사의 깊은 상처다.
그러던 중 2011년, 연해주를 방문한 뜻있는 인사들이 이 사실을 다시 마주했다. 김창송 회장을 비롯한 독지가들이 최재형 선생의 삶과 업적이 이대로 묻혀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문제의식을 공유했고, 그 결과 사단법인 독립운동가 최재형기념사업회가 설립되었다.
그들은 잊힌 역사를 되살리고, 이름 없는 헌신을 다시 역사 속에 세우기 위해 묵묵히 활동해 왔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또 다른 위기가 찾아왔다. 후원자들이 점점 줄어들고, 운영비조차 위태로운 상황에 이르렀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이 소식을 들은 문영숙 이사장의 절박한 호소는,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과연 우리는 이 역사를 계속 잊어도 되는가.
그 물음 앞에서 행동이 시작되었다. 금년 1월 초, 뜻을 함께하는 이들이 모여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채 3개월이 되지 않았지만, 이 안타까운 사연에 공감한 지인들의 참여로 약 20억 원의 후원이 약정되었다. 이는 단순한 금액이 아니라, 기억을 되살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앞으로 시민들의 십시일반 모금을 통해 총 30억 원을 마련하여 기념사업회의 안정적 운영 기반을 구축할 계획이다.
이번 기금후원회는 단순한 조직이 아니라, 책임의 연대다. 해외 파트는 월드옥타(OKTA)의 박종범 회장이 맡고, 국내 파트는 정석현 수산중공업 회장이 맡아 공동회장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고문으로는 손경식 경총 회장, 김형오 전 국회의장,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참여했다. 이는 특정 개인의 사업이 아니라, 우리 사회 지도층 전체가 함께 짊어져야 할 역사적 책무임을 보여준다.
또한 학술 분야에서는 강민구 변호사, 강신장 대표, 김태유 서울대 교수, 김효준 전 BMW코리아 회장, 오종남 교수, 장세정 논설위원, 최진석 교수,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최재형 선생의 업적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알리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기업인들의 참여 역시 주목할 만하다. 강진모 회장, 고춘홍 회장, 곽재선 회장, 구자겸 회장, 구자관 회장, 김성권 회장, 김홍국 회장, 박세훈 회장, 신동우 회장, 안만식 회장, 윤동한 회장, 윤성태 회장, 이승찬 대표, 이어룡 회장, 이용한 회장, 이형환 회장, 조시영 회장, 조정일 회장, 주원석 회장, 차정훈 회장, 최권욱 회장, 최승옥 회장, 황인규 회장 등 수많은 기업인들이 뜻을 함께했다. 이들의 참여는 단순한 기부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아직 책임을 잊지 않았다는 증거다.
이제 남은 것은 더 넓은 참여다. 역사란 일부의 기억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그것은 공동체 전체의 의지로 이어질 때 비로소 살아 숨 쉰다. 최재형 선생의 삶은 특정 지역이나 특정 집단의 이야기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 전체의 뿌리다. 그 뿌리를 지키는 일은 곧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다.
기부는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다. 법인에는 손비처리가 되고 개인에게는 소득공제 혜택이 주어지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지 않기로 선택하는가가 결국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
최재형 선생의 삶은 우리에게 묻는다. 가진 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힘을 어디에 쓸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누구를 위해 살아갈 것인가. 그의 삶은 이미 답을 보여주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오늘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 그리고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기 위해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문화·자연을 사랑하는 문명의 출발점이다.
오늘,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이 날에 우리는 다시 한 번 다짐해야 한다. 총을 든 영웅만이 아니라, 사람을 살린 영웅을 기억하겠다고. 이름 없이 사라진 별을 다시 하늘에 올려놓겠다고. 그리고 그 별빛이 우리의 길을 비추도록 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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