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디의 삶은 인도의 축소판이다. 그는 1950년 인도 구자라트주 바드나가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작은 찻집을 운영하던 소상인이었고, 어머니는 가정을 지키며 생계를 보탰다. 형제자매가 많은 대가족 속에서 성장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생업과 학업을 병행해야 했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곧장 기차역으로 나가 아버지를 도와 차를 팔았고, 이러한 경험은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현실 감각을 형성했다. 훗날 그가 스스로를 ‘차이왈라’라 부르며 대중과 동일선상에 서려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삶의 기억이었다.
학창 시절의 모디는 엘리트형 수재라기보다 강한 호기심과 표현력을 가진 학생이었다. 그는 연극과 토론을 좋아했고, 학교 행사에서 역할을 맡아 대중 앞에 서는 일을 즐겼다. 이는 훗날 그의 강력한 연설 능력으로 이어졌다. 동시에 그는 일찍부터 국가와 사회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단순한 직업적 성공보다 더 큰 무언가를 추구하려는 성향이 있었다. 청년기에 접어든 그는 한동안 히말라야 일대를 떠돌며 명상과 수행의 삶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 시기는 그의 내면을 단단히 다지는 시간이었다. 세속의 성공을 향해 곧장 달려가기보다, 자신을 먼저 다스리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그의 학력은 정치학 전공으로 정리되지만, 서구 정치 엘리트들이 거쳐 온 미국이나 영국 유학 경로와는 거리가 있다. 그는 해외 유학을 통해 형성된 지도자가 아니라, 인도 내부의 경험과 전통 속에서 성장한 지도자다. 이는 그의 정치 스타일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외부 이론에 의존하기보다 현장의 감각과 역사적 맥락을 중시하는 태도, 그리고 ‘인도적 방식’에 대한 강한 신념은 이러한 배경에서 비롯된다. 그는 국제 엘리트형 지도자가 아니라 토착형 지도자이며, 바로 그 점이 인도 대중과의 강한 결속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힌두교적 세계관과 깊이 맞닿아 있다. 힌두 사상의 핵심에는 다르마, 즉 인간이 맡은 바 의무와 질서를 다하는 삶이 있다. 인간은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세계의 조화에 기여한다는 관념이다. 고대 경전 베다는 “진리는 하나이나 현자들은 그것을 여러 이름으로 부른다”고 말한다. 이는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궁극의 질서를 추구하는 인도 문명의 근간이다. 또한 바가바드 기타는 “행위의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자신의 의무를 다하라”고 가르친다. 모디의 정치적 행보를 보면, 그는 결과 이전에 행위의 정당성과 책임을 강조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그것은 계산된 정치라기보다 수행에 가까운 정치다.
그의 종교관은 개인의 신앙을 넘어 국가 운영에도 영향을 미친다. 인도는 다종교·다민족 국가이며, 단일한 가치로 통합하기 어려운 사회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그는 힌두적 정체성을 강조하면서도 국가 차원에서는 실용적 균형을 유지하려 한다. 때로는 강한 색채를 보이기도 하지만, 외교에서는 놀라울 만큼 유연하다. 미국과 협력하면서도 러시아와 관계를 유지하고, 중동과도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외교는 철저히 현실주의적이다. 이는 이상과 현실을 동시에 운용하는 이중 구조의 정치다.
그의 평화관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평화를 이상으로 말하지만, 그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고 본다. 평화는 선언이 아니라 구조이며, 그 구조를 지탱하는 국가 역량이 필수라는 인식이다. 이러한 사고는 인도의 군사력 강화, 방산 협력 확대, 해양 안보 전략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평화는 약자의 소망이 아니라 강자의 책임이라는 관점이 그의 정책 전반에 흐르고 있다.
경제 정책에서도 그는 철저한 실용주의자다. ‘메이크 인 인디아’, ‘디지털 인도’, 대규모 인프라 구축은 모두 국가를 성장의 엔진으로 작동시키려는 전략이다. 이는 한국의 산업화 경험과 일정 부분 닮아 있으나, 인도라는 거대한 민주주의 체제 속에서 이를 구현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는 국가를 하나의 유기적 시스템으로 보고, 장기적 방향을 설정한 뒤 강한 추진력으로 밀어붙인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CEPA는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현재 한·인도 교역 규모는 약 270억 달러 수준이며, 양국은 이를 2030년까지 500억 달러로 확대하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 수치는 단순한 경제 지표가 아니다. 그것은 양국이 서로를 어떤 파트너로 인식하는가에 대한 선언이다. 모디의 시각에서 한국은 단순한 교역 상대가 아니라, 기술과 산업, 그리고 미래를 함께 설계할 수 있는 전략적 동반자다.
더 나아가 그는 인도를 세계의 중심 국가로 끌어올리는 장기 비전을 갖고 있다. ‘신(新)인도’라는 구호는 단순한 경제 성장의 목표가 아니라 국가의 위상과 자존감을 회복하려는 프로젝트다. 이 비전의 상징적 사례로 자주 거론되는 것이 올림픽 유치 구상이다. 인도는 아직 하계올림픽을 개최한 경험이 없으며, 이를 국가적 프로젝트로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스포츠 행사가 아니라, 인도가 글로벌 리더 국가로 도약했음을 세계에 선언하는 상징적 사건이 될 수 있다.
또한 그는 인도를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축으로 재편하려 한다. 반도체, 배터리, 디지털 인프라, 우주항공 등 미래 산업에서 인도의 존재감을 확대하려는 전략은 단순한 경제 정책이 아니라 국가의 위치를 다시 설정하려는 시도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과의 협력은 필연적이다. 한국의 제조 역량과 인도의 인적 자원이 결합할 경우, 양국은 단순한 교역을 넘어 공동 성장의 구조로 나아갈 수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양국 협력은 제3국으로 확장될 수 있다. 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 서남아시아는 미래의 성장 공간이며, 한국과 인도는 함께 이 지역에 진출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는 단순한 경제 협력을 넘어 새로운 글로벌 질서 속에서 공동의 영향력을 형성하는 전략이다.
결국 모디의 삶과 정치, 그리고 비전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가난한 소년이 스스로를 단련해 국가 지도자가 되었듯이, 인도 역시 스스로의 힘으로 세계의 중심에 서야 한다는 신념이 그의 모든 정책을 관통한다.
불교 경전인 법구경은 “자신을 이기는 자가 가장 큰 승리자”라고 말한다. 이 말은 그의 삶을 설명하는 데 있어 하나의 상징이 된다. 그는 외부를 지배하기 이전에 자신을 다스리는 길을 택한 지도자다.
모디를 이해하는 것은 곧 인도를 이해하는 일이다. 그리고 인도를 이해하는 것은 한국의 미래를 넓히는 일이다. CEPA는 협정이 아니라 길이며, 그 길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다. 오늘의 인도는 한 인간의 의지와 문명의 축적이 결합된 결과다.
바다는 이어져 있고 문명은 연결되어 있으며, 미래는 스스로를 단련한 자와 협력하는 자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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