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목 칼럼] 어쩌다 대구(大邱)가 이지경 …고인물 흔들 '메기'가 필요하다

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영어학과 교수
[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영어학과 교수]
 
  
도시는 늙어서 쇠퇴하는 것이 아니다.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생각이 바뀌지 않을 때 늙는다. 산업 구조가 달라졌는데도 과거의 성공 공식에 매달릴 때 뒤처진다. 세계가 인공지능과 데이터, 플랫폼과 네트워크로 움직이는데 여전히 어제의 방식으로 오늘을 운영하려 할 때 도시의 미래는 서서히 닫힌다. 지금 대구가 서 있는 자리가 바로 그 경계선인지도 모른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말은 이미 수많은 역사와 산업의 현장에서 증명되었다. 그래서 지금 대구에 필요한 것도 변화의 결단이다.
 
도시의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이름에는 역사와 정체성, 그리고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이 담긴다. 대구(大邱)라는 지명이 그러하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본래 대구의 ‘구’는 ‘丘’를 사용하였으나, 공자의 이름인 ‘구(丘)’와 한자가 같다는 이유로 ‘邱’로 바뀌었다고 한다. 성인의 이름자를 피하던 시대의 흔적이 도시 이름에 남아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언덕 ‘구’ 자를 지키는 일이 중요한가, 아니면 도시를 구하는 일이 중요한가. 그래서 나는 차라리 대구의 구 자를 ‘구할 구(救)’로 읽자는 상징적 제안을 하고 싶다. 실제 지명을 바꾸자는 뜻이 아니다. 도시를 살리겠다는 각오로 스스로를 다시 설계하자는 뜻이다. 대구는 지금 언덕의 도시가 아니라, 구해야 할 도시라는 절박함을 가져야 한다.
 
대구에서 태어난 필자는 이 도시의 빛과 그림자를 함께 보아 왔다. 재직 중인 직장의 이름에도 ‘대구’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강단에 서면 늘 같은 풍경을 본다. 총명하고 성실한 학생들이 졸업을 앞두고 찾아와 말한다. “교수님, 대구에 남고 싶지만 마땅한 직장이 없습니다.” “전공을 살릴 직업이 이곳에는 많지 않습니다.” 더 나은 직장과 더 넓은 기회를 찾아 서울과 수도권으로 떠나는 제자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는 해마다 반복되었고, 어느새 일상이 되었다. 내 자식들도 대구를 떠났다. 떠나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이 장면은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 아니다. 도시가 청년을 품지 못한다는 구조의 증거이다. 사람이 떠나는 도시는 활력을 잃고, 활력을 잃은 도시는 다시 사람을 떠나보낸다. 지역이 청년에게 직장을 주지 못하고 청년이 지역에 미래를 느끼지 못하는 순간, 쇠퇴는 통계보다 먼저 현실 속에서 시작된다. 내가 대구의 위기를 말하는 이유는 숫자 때문이 아니라, 떠나는 학생들의 얼굴을 보았기 때문이다. 대구의 문제를 단순히 일자리 숫자나 산업 통계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밑바닥에는 정치 구조와 문화 구조가 함께 놓여 있다. 특정 세력이 장기간 지역 권력을 사실상 독점하는 구조 속에서 경쟁은 약해지고 긴장은 사라졌다. 경쟁이 사라진 정치에서는 책임도 흐려진다. 막대기를 꽂아도 된다는 인식이 퍼지는 순간 시민의 선택은 형식이 되고, 정책은 관성에 기대게 된다. 변화는 늦어지고 지역은 뒤처진다. 조선시대 당쟁에서 귀양 가고 죽은 것은 사대부였지만, 그 대가를 치른 것은 백성이었다. 오늘의 정치도 다르지 않다. 경쟁 없는 이 도시에서 권력의 비용은 결국 시민의 일자리와 도시의 미래가 그 값을 치른다. 이렇게 대구는 무너져 왔다.
 
식당에 들어서면 자동으로 고개를 숙이며 “어서 오십시오!”라고 반복해서 말하는 인형이 있다. 선거철만 다가오면 지역 정치의 낡은 풍경이 꼭 그와 닮아있다. 내용도 비전도 정책도 없이, 마치 말하는 인형처럼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고, 한술 더 떠 진한 사투리로 “다리가(다른가의 사투리)!”를 반복하며 지역주의 감정만 자극한다. 시민의 삶은 뒷전이고 구호만 남은 정치, 생각은 없고 반사적 충성만 요구하는 정치, 이 썩은 구태는 이제 물러가야 한다. 대구는 원래 이런 도시가 아니었다. 한때 대구는 권력에 맞서고 비판하며 견제하던 도시였다. 정치적 긴장이 살아 있었고, 선택의 의미가 분명했던 도시였다. 지금 대구에 필요한 것도 바로 그 정신의 회복이다. 특정 진영의 승리가 아니라 경쟁의 회복, 익숙한 독점이 아니라 건강한 긴장이다. 지역을 사랑한다면 먼저 지역 정치가 경쟁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대구에 지금 메기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논에 미꾸라지만 풀어두면 금세 움직임이 둔해지고 병들기 쉽다. 그러나 메기 한 마리를 풀어놓으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미꾸라지들은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발버둥치는 그 과정에서 오히려 더 단단해진다. 정치도 마찬가지이다. 경쟁 없는 구조는 모두를 나태하게 만들지만, 경쟁이 시작되는 순간 조직은 깨어난다. 대구에 필요한 것은 안일한 독점이 아니라 긴장을 만드는 메기 효과이다. 고인 물을 흔드는 충격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대구는 메기나 미꾸라지나 그냥 같이 혼연일체되어 잠을 잤다.
 
한때 대한민국은 ‘닦고, 조이고, 기름 치는’ 제조업 정신으로 성장했다. 기계의 볼트를 조이고 설비를 돌리며 수출로 나라를 일으켰다. 대구 역시 섬유와 제조업, 근면과 성실의 상징 같은 도시였다. 그 시대 대구의 역할은 분명했고 국가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시대는 바뀌었다. 이제 세계는 공장 굴뚝의 높이가 아니라 데이터의 깊이로 경쟁한다. 첨단 산업은 출신지를 보지 않는다. 알고리즘은 고향을 묻지 않는다. 투자자는 사투리를 평가하지 않는다. 세계 시장은 오직 실력과 속도, 혁신과 결과를 본다. 대구는 과거의 성공 공식을 버려야 한다. 공장형 도시에서 플랫폼 도시로, 연고 도시에서 실력 도시로, 닫힌 도시에서 열린 도시로 바뀌어야 한다.
 
삼성은 1993년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신경영 선언’으로 스스로를 뒤집었다. 그 과감한 변화가 오늘날의 ‘글로벌 삼성’을 만들었다. 과거의 성공에 안주했다면 지금의 삼성은 단연코 없다. 기업도 변해야 살고, 도시도 변해야 산다. 대구 역시 과거의 익숙함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변화의 결단으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해야 한다. 지역에 머무르되 세계와 연결되고, 전통을 지키되 미래 산업을 선도하는 도시, 청년이 떠나는 도시가 아니라 세계 인재가 모여드는 글로벌 대구를 꿈꾼다.
 
정치 역시 예외가 아니다. 경쟁 없는 구조는 나태해지고, 긴장 없는 권력은 경직된다. 지역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은 특정 세력의 안락함이 아니라 시민 전체의 이익이다. 도시는 국가처럼 움직여야 한다. 국가는 국익을 생각하듯, 도시는 시익(市益)을 생각해야 한다. 누가 편한가가 아니라 무엇이 도시 전체에 이로운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각 도시가 자기 경쟁력을 높일 때 국가 전체의 경쟁력도 커진다. 도시 발전의 합이 곧 국가 발전이다. 지방의 성공은 중앙의 성공과 분리될 수 없다. 대구의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지 않다. 바뀌면 살아난다. 그러나 바뀌지 않으면 뒤처진다. 주역은 변화의 철학이다. 천지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만물은 변화를 통해 살아간다. 고인 것은 썩는다. 권력이 고여도 썩고, 제도가 고여도 썩고, 사고방식이 고여도 썩는다. 변화 없는 안정은 안정이 아니라 지연된 쇠퇴일 뿐이다.
 
어쩌다 대구가 지역 내 총생산 최하위권을 걱정하는 도시가 되었는가! 한때 산업화의 주역이던 도시가 왜 청년을 떠나보내는 도시가 되었는가? 이제 대구는 선택해야 한다. “우리가 남이가!”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미래다”로 나아갈 것인가. “우리가 다리가!”라는 폐쇄성에 갇힐 것인가, 아니면 실력 있는 누구에게나 열린 도시가 될 것인가? 언덕 ‘구(邱)’에 머물 것인가, 구할 ‘구(救)’로 거듭날 것인가? 지역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익숙함과 결별하는 용기부터 가져야 한다. 이번 지방선거가 고인 연못을 뒤집고 도시를 깨울, 가장 강력한 메기를 선택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대구에도 이제 지역주의에 기대는 정치인이 아니라, 전국 무대에서 경쟁력을 입증한 통합형 지도자가 필요하다. 마침 그런 인물이 있다.
 
이순신 장군은 절망적인 전황(戰況) 속에서도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라는 ‘금신전선 상유십이(今臣戰船 尙有十二)’의 장계를 올렸다. 그것은 숫자의 보고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대구의 선거에 이순신 장군이 왜 등장하느냐 하겠지만, 오늘의 대구 또한 그런 각오 없이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떠난 사람만 셀 것이 아니라 남은 사람을 보아야 한다. 사라진 산업만 한탄할 것이 아니라 새로 만들 산업을 보아야 한다. 잃어버린 기회만 탓할 것이 아니라, 아직 남아 있는 기회를 붙잡아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오늘 대구에 새 이름 하나를 붙인다. 쇠세대구 상유인물(衰世大邱 尙有人物). 쇠퇴의 길목에 선 대구에도 아직 변화를 이끌 인물이 있다. 그래서 이번 지방선거가 중요하다.
 
독수리가 40세가 되면 부리를 부수고 발톱과 깃털을 뽑아 다시 태어나 30년을 더 산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마도 필자가 기억하기로 IMF 직후에 널리 퍼진 이 공익광고, 이른바 ‘독수리의 환골탈태’ 우화이다. 그러나 이는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 지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우화는 바로 대구가 할 일, 대구가 갈 길을 보여준다. 낡은 것을 버리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메시지, 고통을 감수하지 않으면 변화도 없다는 메시지를 전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는 변화를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결국, 다른 선택에서 시작된다. 마침 대구의 시조(市鳥)도 독수리이다. 이제는 달라질 부리와 발톱, 깃털로 다시 날아야 한다. 팔공에서 비슬까지 대구의 비상(飛上)을 막아온 낡은 껍데기는 가라!

필자 주요 이력
부산대 번역학 박사 ▷미국 University of Dayton School of Law 졸업 ▷대구가톨릭대 영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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